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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잊힐 권리를 위해
  • 문자영 기자
  • 승인 2023.05.15 08:00
  • 호수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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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흑역사가 한두 개는 있기 마련이다. 그 흑역사가 내 손에만 있다면 다행이다. 꺼내지 않으면 나올 일이 없을 테니! 하지만 만약 흑역사의 증거가 인터넷 세상에 있다면? 인터넷망을 타고 주기적으로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이제 더 이상 손쓸 방법이 없는 걸까?

우리에게 주어진 ‘잊힐 권리’가 무엇인지 알아보자.

 

<정당한 잊힐 권리>
인터넷의 발달, 특히 개인 홈페이지나 SNS를 통해 개인이 정보를 소비함과 동시에 생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잊힐 권리의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잊힐 권리란, 자신의 정보가 적법한 목적을 위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소유자의 의사에 의해 그것을 지우고 더이상 이용되지 않도록 할 개인의 권리를 의미한다. 대개 특정 인물, 과거 사건 또는 정보에 대해 인터넷에 공개된 정보의 공개를 제한하는 것과 관련된다. 인터넷에 발행된 기사, 개인 홈페이지 글, 넓게는 SNS 게시물과 그 댓글까지도 이에 해당된다.

더 이상 세계에 인터넷망이 연결되지않은 곳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글이나 사진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데이터화된 개인정보는 종이로 정보를 전달하던 시절과 달리 시간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는다. 특히 인터넷 발행이 대부분인 오늘날의 인터넷 기사는 한 번 생성된 정보의 유통과 유효기간을 무한대에 가깝게 만들었다. 관련된 키워드, 날짜 정도만 있어도 누구나 쉽게 어디서든 과거의 기사에 접근해 정보를 발굴하고 재생산할 수 있다. 설령 나중에 공개된 정보를 회수하고 싶어도 이를 삭제할 권한은 정보를 올린 사람이 아니라 포털 사이트 혹은 언론기관에 있을 수 있다. 정보를 생성하는 것보다 삭제 및 폐기하는 것이 시간도, 비용도 더 비싸진 세상이다.

일부 국가는 잊힐 권리를 개인 정보 보호 원칙 중 하나로 정식 인정하고 입법화해 다루고 있다. 가령 유럽연합의 경우 개인정보보호법(GeneralData Protection Regulation, 이하 GDPR)을 통해잊힐 권리를 법제화했다. GDPR은 이름, 이메일 주소, IP 주소 등 다양한 데이터를 개인정보로 정의하며 ▲개인 정보에 접근하고 수정할 수 있는 권리 ▲삭제할 수 있는 권리 ▲이용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 ▲데이터를 이동시키는 권리까지 개인에게 제공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만약 데이터가 동의 없이 유출되면 영향을 받은 개인에게 보고할 것까지도 규정돼 있다. 이를 위반할 시 최대 2천만 유로(한화 약 290억) 혹은 기업 연간수익의 4% 중 더 높은 금액을 벌금으로 부과한다. 개인 정보를 다루는 대부분 조직이 GDPR을 데이터 보호법 기준으로 준수하려 노력 중이다.

 

<어머니, 글 내려주세요>
개인정보보호법 제정 및 발효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잊힐 권리에 대한 논의와 연구가 계속되고 있으나, 아직 법률로써 명시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지난 24일(월), 우리나라 정부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아동·청소년 개인정보보호법 제정안 발의를 예고하며 ‘디지털 잊힐 권리 시범 사업’(이하 지우개 서비스)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지우개 서비스는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환경에 노출돼 성장한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인 만 24세 이하를 대상으로 한다. 어렸을 때 온라인에 올린 게시물 중 삭제하고 싶은 게시물이 있다면 지우개 서비스를 통해 해당 게시물을 삭제 또는 가림 처리할 수 있도록 정부에서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이는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에 대한 통제권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디지털 세대가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아동·청소년은 어린 시절부터 온라인 활동을 활발하게 한 세대고, 다른 세대보다 상대적으로 온라인상에 많은 개인정보가 장기간 누적된 경향이 두드러진다. 정부는 지우개 서비스가 적용되는 게시물의 범위를 내년이면 제3자가 게시한 게시물까지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때 제3자는 부모까지 포함한다. 이에 부모의 자녀 사진 공유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가 논점으로 떠올랐다.

자녀의 사진이 게시된 SNS 게시물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 같은 행위는 공유(share)와 육아(parenting)의 합성어인 ‘셰어런팅’이라고도 불린다. 셰어런팅은 아직 우리나라에서 낯선 단어지만 개인정보와 사생활에 민감한 문화를 가진 서구권에서는 이미 익숙한 용어로, 2016년 세계적인 출판사 콜린스가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기도 했다. 2021년 세이브더칠드런이 부모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부모의 84%가 자녀의 사진 혹은 영상을 주기적으로 SNS에 올린다고 답했다.

셰어런팅은 전 세계적으로 논란의 중심이다. 자식을 직접 낳고 기르는 입장인 부모를 제3자로 볼 수 없다는 의견과, 아무리 부모라지만 자식은 소유물이 아닌 만큼 마음대로 찍고 공유하는 행위는 잘못됐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선다. 셰어런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이들은 아이가 어리더라도 인권과 사생활이 마땅히 보장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사진 외에 우스꽝스러운 모습, 발가벗은 모습 등 부모의 눈에 귀엽다고 아이가 자란 후 수치심을 느낄 수 있는 사진까지 SNS에 공유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2016년 캐나다에선 13세 아동이 10년간 자신의 아기 시절 나체사진을 SNS에 올려놓은 부모를 상대로 35만 캐나다 달러(약 3억 원)의 합의금을 요구하는 소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이에 더해 셰어런팅으로 인해 자녀가 범죄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SNS를 통해 누군가의 신원을 도용하는 데 필요한 핵심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쉬워진 세상이다. 부모가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자녀의 주소, 생년월일, 재학 중인 학교 등 개인정보가 의도치 않게 노출되기 쉽다는 뜻이다. 영국의 4대 은행 중 하나인 BARCLAYS는 2030년이 되면 젊은 층을 대상으로 한 신원 사기의 3분의 2 가량이 셰어런팅으로 인해 발생할 것이라 예측했다. 자녀의 사진이 무단 도용되는 경우 부적절한 사이트에 업로드될 수 있고 해외로 퍼져나가면 삭제나 법적인 대응도 쉽지 않다. 세이브더칠드런은 SNS에 자녀 사진을 올릴 때 ▲자녀에게 설명 후 ‘싫다’고 말할 권리를 줬는지 ▲SNS 기업이 개인정보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확인했는지 ▲자녀의 평소 이동 동선이 드러나지는 않았는지 확인할 것과 함께 올린 게시물을 주기적으로 삭제할 것을 권고했다.

 

<과거를 세탁할 권리라니>
잊힐 권리는 결국 제3자 게시물과도 관련되기 때문에 ‘표현의 자유’ 개념과 종종 맞선다. 잊힐 권리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도 존재하기 때문에 잊힐 권리가 어디까지 적용돼야 하는지는 여전히 논점으로 남아있다.

먼저, 잊힐 권리가 곧 과거 세탁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잊힐 권리를 주장하며 과거에 저지른 잘못된 행동들의 증거를 없애고 책임을 회피하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 가령, 우리나라의 지우개 서비스를 통해 아동·청소년 시기의 흑역사를 지울 수 있다면, 학교폭력에 가담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본인의 요청이 있을 시 지우개 서비스로 지울 수 있을까? 범죄의 가해자에게도 잊힐 권리가 있다면 신분을 세탁하고 새 출발 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국민들의 우려에 개인정보위원회는 “학폭 영상을 지우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지우개 서비스는 우선 제3자 게시물보다는 자신이 스스로 개인정보가 포함된 게시물을 올렸을 때 해당 게시물을 지워주는 데 더 치중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자신의 폭력 영상을 스스로 게시했을 가능성은 작다. 만약 가해자가 장난으로 올린 자신의 영상을 삭제 요청하더라도 해당 게시물로 현재 어떤 피해를 보고 있는지 소명해야 하므로 실질적으로 삭제가 어렵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가해자가 제 3자 게시물을 삭제 요청하더라도, 지우개 서비스의 제3자 게시물 삭제는 개인에게 명확한 피해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만 지원될 것이므로 엄격히 걸러진다고 설명했다. 다만, 삭제요청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시범 기간을 통해 연구를 이어 나가겠다고도 덧붙였다.

두 번째는 알 권리와의 충돌이다. 알 권리는 공공 기관 혹은 민간 조직이 보유한 정보에 개인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적인 권리다. 국민들이 완전히 민주적 절차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 기득권층이 스스로 행동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도록 하는 것에 목표를두고 있다. 알 권리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인권으로 세계인권선언, 국제인권법에 명시돼 있다. 문제는 개인의 잊힐 권리와 국민의 알 권리가 정면으로 부딪친다는 데 있다. 넓은 범위의 잊힐 권리는 언론사의 기사나 자료도 삭제할 권리를 가지는데, 이는 곧 사회를 감시하는 언론의 역할과 국민의 알 권리를 저해시킬 수 있다. 이러한 우려가 커지자, 유럽연합은 GDPR 입법화 당시 언론의 기사를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역사적 기록물의 생성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도 잊힐 권리 행사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이다. 언론의 기사는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당시 시대상, 대중의 반응 등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기록물로 높은 가치를 지닌다. 과거의 기록을 삭제하는 것은 사료를 소멸시킴과 동시에 연구자, 언론인들의 이후 연구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잊힐 권리와 역사적 기록이 서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는 정확한 사실과 함께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당신도 잊히고 싶다면>
잊힐 권리를 행사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앞서 언급한 지우개 서비스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홈페이지인 ‘개인정보포털’의 ‘지우개 신청’ 게시판에서 신청할 수 있다. 아동·청소년의 적극적인 디지털 잊힐 권리 시행을 목적으로 한 서비스기 때문에 만 24세 이하 국민에 한해 만 18세 미만시기에 본인이 온라인에 게시한 개인 =정보를 포함하고 있는 글, 사진, 영상에 대해 삭제 및 접근배제 신청을 할 수 있다. 신청서에는 요청하는 게시물의 주소와 요청 사유를 상세히 기입해야 하며, 해당 게시물을 자신이 작성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료를 함께 첨부해야 한다. 증명은 신분증, 타 ID, IP주소 등으로 가능하고 증명이 미흡하다고 생각되는 경우 이용자의 주 IP 주소, 해당 게시물의 내용, 동일 ID로 다른 사이트를 이용한 전적 등으로 자기 게시물 여부를 확인한다. 접수가 완료되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과 상담 후 담당자가 일대일로 배치되고 이후 처리 과정을 지원한다. 연령대를 제한한 것에 대해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사업의 목적 자체가 아동·청소년의 개인정보 자기 결정권을 지원하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후 연령 상한에 대한 계획은 아직 없다고도 덧붙였다.

신청 연령에 속하지 않거나 기타 게시물에 피해를 보고 있어도 방법은 있다. ‘디지털 장의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장의사는 불법 촬영피해자, 개인정보유출 피해자 등 인터
넷에 원치 않게 개인 정보가 퍼져 삭제가 필요한 피해자를 돕는 데서 출발했고, 오늘날 잊힐 권리를 행사하고 싶어 하는 일반인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디지털 장의사 업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업체도 있고, 법무법인이 대행하기도 한다. 지우개 서비스와 달리 비용이 들지만, 피해를 보고 있다면 상담받고 회복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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