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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사거리] <엄마손>처럼 따뜻한 그때의 기억
  • 임현진 편집국장
  • 승인 2022.12.05 08:00
  • 호수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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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대학 생활은 따뜻한 봄이 아닌 나무가 벗겨지기 시작한 가을에서야 시작됐다. 떨어진 벚꽃이 아닌 으스러지는 낙엽들 사이를 디디며 캠퍼스에 처음 발을 들였다. 포근한 날씨가 주는 봄날의 엔도르핀도 있을 법한데,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봄을 흘려보내고 제법 쌀쌀할 때쯤 제대로 된 첫 개강을 맞이했다. 역병이 감도는 세상 때문에 1학년 첫 학기를 컴퓨터 화면으로만 보내다가 9월이 돼서야 등교를 하게 된 것이다. 
학교 신문에 글을 싣는 일을 시작한 것도 스무 살 가을이었다. 강의실도 캠퍼스 지도를 보며 찾던 새내기 시절에 무슨 의욕이 앞섰는지 원서 마감 6분 전 급하게 지원 서류를 보냈었다. 언론사 합격 통보 전화가 왔고, 수화기 너머 “현진 씨 빼고 나머지 분들은 모두 다 신문방송학과인데 너무 걱정은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시작으로 학보사의 일원이 됐다. 그렇게 기자는 같은 학과 동기들의 얼굴을 보기도 전에 기자와 다른 과인 신문방송학과 사람들을 마주했다.
신문 교열 회의는 격주 월요일 저녁 6시 반이었다. 글을 다루다 보니 정해진 시간 내 마무리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읽어도 읽어도 고칠 부분이 생기는 것이 글이기에 회의는 길어졌다. 회의를 끝마치고 나오면 해는 벌써 저물어 9시를 넘겼다. 이 때문에 회의 전 저녁을 해결해야 했는데, 식당이 어디에 있는지 누구랑 먹어야 할지 허둥댔던 때였다. 교양 수업만이 대면이라 같은 과 동기들을 만나기 전이었기에 기자는 혼자 덩그러니 놓인 행정학과 학생일 뿐이었다. 
신문 편집 프로그램을 다루는 선배들을 보며 바쁘게 굴러가는 이곳에 내가 있는 것이 신기했다. 나만 신기한 것이 아니었는지 옆자리 단발머리 친구도 기자실을 눈동자로만 둘러보고 있었다. 회의가 시작되고 인원이 한 명 모자란 그때 문을 열고 급하게 들어온 친구를 끝으로 내 옆자리가 채워졌다. 느낌이라는 것이, 감이란 것이 신기하다. 멀뚱멀뚱 앉아있는 단발머리 친구, 늦게 온 친구, 그리고 기자까지 같은 소파에 앉게 됐는데, 이 소파 위 세 명은 대학 생활의 처음을 기자실에서 맞이한 새내기 20학번이었다.
말하지 않아도, 어딘가 어색하고 경직된 자세에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처음임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교열 회의가 있는 월요일이 되면 대학가 식당을 다녔다. 따뜻한 저녁을 원한 것까지 우리는 서로 잘 맞았다. 시린 볼을 움켜쥐며 뛰어간 식당은 늘 <엄마손>이었다. 정말 엄마가 만든 밥 같다며 이곳만을 찾게 됐다. 기자는 항상 국물 음식을 시켰는데, 혼자 가서 먹을 만큼 좋아하는 것이 바로 ‘된장찌개 백반’이다. 찌개는 혼자 먹기엔 많은 음식이라 생각했기에 된장찌개를 좋아하는데도 밖에선 선뜻 먹기 힘들었다. 그런 기자에게 뚝배기에 펄펄 끓어 나오는 5,000원짜리 된장찌개는 속을 따뜻하게 해줬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늘 듬뿍 담긴 바지락과 짭조름하고 따뜻한 국물은 교열 회의실까지 가는 길을 든든하게 했다. 원고료가 들어온 날엔 떡라면까지 시켜 나눠먹기도 했다. <엄마손>에서 밥을 먹다 보면 식당 아주머니께선 말 없이 공깃밥을 더 챙겨주시기도 하는, 정말 우리 학우 모두의 엄마같은 그런 곳이었다. 
새내기 수습기자들에게 <엄마손>의 저녁은 추억이 깃든 곳이다. 가격이 싸서 즐겨 갔다기 보다 익숙한 장소가 주는 편안함에 자주 방문했던 것 같다. 지금은 신문사 기자실에서 신문 편집을 하느라 바빠서 대충 배달 음식으로 해결해 자주 가지 못하고 있다. 다시 그곳을 방문한다면, 원고료도 얼마 없던 수습기자 세 명이 옹기종기 앉아있던 그때의 기억을 다시금 추억할 것이다. 편집국장 퇴임을 앞 둔 이 시점에 더욱 소중한 기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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