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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진의 Talk Talk] 펜 끝에서 핀, 아름답게 진
  • 임현진 편집국장
  • 승인 2022.12.05 08:00
  • 호수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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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낭만적이었다. 중대하고 무게 있는 위엄을 가진 것은 아니었으나 잔잔하고 지조 있는 교양이 한껏 담긴 일이라 생각했다. 묵묵히 어디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기자에게 글이었다. 어떤 생각을 하든, 어떤 감정을 느꼈든 토해내듯 글자를 쏟아내도 한계 없이 무한했다. 정답이 필요하지 않은 행위임에 편안함을 느꼈다. 영감을 얻은 일이 있으면 메모장을 켜는 버릇이 생겼다. 잠이 들기 전 근본 없는 이야기들을 마구잡이로 새기며 조용한 새벽을 소리 없이 시끄럽게 채우기도 했다.
그렇다고 낭만만을 좇아 글을 좋아한 건 아니었다. 외관이 주는 허황한 멋에 덮여 본질을 흐리진 않았다는 것이다. 글은 언제나 객관적이어야 하고, 진실해야 한다고 굳게 믿는 사람이다. 특히 언론에 있어 ‘진실’은 꼭 향유해야 할 기본 소양이라 생각했고 이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끔 신문 속 기사들은 틀 속에 갇힌 것처럼 딱딱해 보이지만, 경직이 주는 정직의 힘을 동경했고 믿었다. 글이란 소리가 없지만 울림은 늘 있다고 여겼다. 몰아치지 않아도 잔잔한 파도는 언제나 영원하듯, 영원을 약속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게 글이었다. 늘 잔잔한 울림을 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된 학보사에서의 생활은 다른 가치를 느끼게 했다. 스무 살 어른이 된 것만 같았던 기자는 대학 언론사 면접에 붙는 순간부터 글이란 실수 없이 늘 잘 해내야 하는 임무로 박혔다. 일을 하는 곳, 글을 잘 써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다. 본질은 얼추 맞다. 본질에 충실 하려 하니 의욕만 앞섰다. 그런 기자에게 처음으로 선배와 동기가 생긴 곳이 학보사였다. 기자의 속도를 이해하고 가르쳐주는 관계가 생긴 것이다. 성인의 해를 맞이하고 역병으로 끊겨버린 일상에 찾아온 소중한 온기였다. 글을 쓰는 재미로 시작된 학보사 생활에서 따뜻한 인연을 만난 것이다.
스무 살 일기장엔 편안한 요즘을 보낸다고 쓰여있다. 대학 언론사 편집을 끝내고 잠시 내다본 창밖 노을을 잊지 못한다는 글을 보며 그 순간을 다시 한번 잊지 못하게 됐다. 노을은 늘 볼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공기는 차가우면서도 색감은 따뜻한 그날의 노을이 유난히 기자에게 배경이 됐다. 대단한 사람도 아닌 내가 A3 크기의 진짜 신문을 만들다니, 그 배경을 채워주는 주황빛 저녁 햇살을 잊지 못하는 것이었다. 볼과 귀는 시렸지만 색감이 주는 착각인지 어둡도록 환한 어느 겨울 6시의 기자실은 포근했다. 
스무 살에 맞이한 언론사 생활에 약 3년이라는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어리고 서툴렀던 스무 살 수습기자로 시작해 어느 덧 이름을 걸고 칼럼을 쓰는 편집국장이 됐다. 그리고 지금, 시작이 설레고 생생했던 그때를, 지금도 흘러가고 있는 기자로서의 시간을 완전히 묻어 둘 시점이 왔다. 기자라 하기엔 미숙한 필력이었지만, 매주 매달 1,000부씩 인쇄되는 신문에 33번, 총 51건의 기사를 실었고, 지금 이 칼럼을 마지막으로 종지부를 찍으려 한다. 아직도 서툰 부분이 많지만 이런 편집국장의 자리를 믿고 따라와 준 동기와 후배들을 만나 귀한 시간으로 물들여진 채 안녕을 건넬 수 있을 것만 같다. 이 곳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함께 해준 선배들, 기자의 대학 생활을 늘 환히 지켜준 동기, 그리고 고생한 후배들까지 기자가 아닌 ‘나’의 곁에 머물러 줬음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새겨진 저의 이름은 지나가는 신문 한 페이지에서만 숨을 쉬지만, 영원히 새겨진 채로 남겨질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흔적은 영원하기에, 영원을 약속할 수 있도록 글을 새길 수 있어 기뻤습니다. 3년 동안 쓰인 흔적을 돌아보며 살아갈 힘을 얻으려 합니다. 아름답게 지고 다시 봄처럼 피어날 우리 학우님들의 미래를 늘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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