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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에도 살인이 존재한다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12.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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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신문의 칼럼에서 ‘로봇의 돌봄 시스템’에 대해 봤다. 로봇이 대신하는 돌봄은 요양보호사 한 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쉽게 느껴진다. 로봇에게는 ‘힘들어도 참아라’ 따위의 말은 필요 없으며, 최저 임금 수준의 계약직 노동에 대한 이런저런 평가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국의 고령화가 진행될수록 더 많은 돌봄 로봇을 개발하고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매력적일 수 있다. 필자는 “우리는 왜 효도하는 로봇이 필요한가. 로봇을 효도하게 만드는 것은 정말 늙어가는 인구 때문인가”라고 글을 마무리했고, 이는 돌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돌봄’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한 사건이 있다. 작년 일어난 1999년생인 청년 A씨의 ‘부친 간병살인’이다. 사건의 전말은 다음과 같다. A씨에게는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있었다. 아버지는 약 8개월 동안 입원했고, 치료비는 2,000만 원 정도가 나온 상태였다. 지금 퇴원하면 위험하다는 의사의 말에도 청년은 아버지와 집으로 돌아왔고, 아버지는 8일 후 숨졌다. 이 청년은 ‘아픈 아버지를 방치하고 숨지게 했다’며 경찰에 기소됐고, 1심 과 2심에서 모두 살인에 대한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해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A씨는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한 A씨는 아버지가 입원한 뒤 당장 돈을 벌어야 하는 생계의 위기에 처했으며,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왔을 때 청년의 전화는 끊겼고, 월세는 밀리고 가스는 끊긴 상태였다. 청년은 쌀 사 먹을 돈이 없다며 삼촌에게 2만 원만 빌려 달라고 문자를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법원은 A씨에게 아버지를 돌봐야 할 상황에서 돌봄을 포기했다고 판단해 살인에 고의성이 있다 고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간병 살인은 안타깝지만 흔한 케이스다. 청년 간병뿐만 아니라 노인이 노인을 부양하거나 노인이 자녀를 부양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간병인들의 상황이나 처지, 수 등 집계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청년 간병인들의 경우 돈도 없고 경험도 없는 상태 에서 한 사람을 돌보기 위해 자기 미래와 삶, 꿈까지도 포기해야만 효자 혹은 효녀가 될 수 있다. 돌봄 그 자체만이 아니라 가족을 향한 사랑과 효(孝)까지 당연하게 요구하는 게 과연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일일까? 위 사례만 해도 우리나라에 복지 관련 제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용할 수 없는 의료·돌봄 서비스의 여백이 여실히 드러났다. 돌봄의 책임과 보건의 료 자체의 허점을 오직 한 가정에게만 떠맡기는 사회가 지금도 수많은 돌봄 가족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다시금 돌봄 로봇으로 돌아가보자. 로봇을 효도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효’를 강조하는 사회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돌봄 가족 혹은 돌봄의 책임을 로봇에게 맡기는 일부 계층과 고령화의 위험성이나 사회적 책임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눈 감고 로봇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의 합작이 아닐까? 국가와 사회가 돌봄 가족의 어려움에 공감하지 못하고, 의료·돌봄 서비스의 제도적 공백을 매우지 못한다면 비극은 계속해서 발생할 것이다. 고령화 시대와 돌봄 로봇이 거론되는 지금, 우리는 돌봄에 살인이 존 재하지 않도록 돌봄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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