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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매듭 짓는 법
  • 이다원 기자
  • 승인 2022.12.05 08:00
  • 호수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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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마지막 실 안쪽으로 바늘을 넣는다. 두 번째, 실을 바늘에 네댓 번 감는다. 세 번째, 감은 실을 손으로 누른 채 바늘을 빼내고 실을 잘라준다.
바느질은 다 하고 나서 실이 풀리지 않게 매듭을 꼭 묶어줘야 한다. 헐렁하게 묶으면 해온 바느질이 다 풀려버리고, 너무 꽉 조이면 우그러지고 만다. 몇 날 며칠 잠도 못 자고 만들었든, 바느질 분야를 발칵 뒤집을 작품을 만들었든 간에 마지막 매듭을 잘 짓지 못하면 삐뚤빼뚤한 수제 손수건보다 못한 작품이 된다. 이 글은 2년 반에 걸친 창원대 학보사 기자 생활을 정리하는 마무리 매듭이다.
대학 생활에 학보사를 빼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면 의미의 크기를 짐작할 수 있을까. 코로나 19로 멀어진 대학 생활에 학보사에서 사람들을 처음 만났고, 기자실은 북적북적한 학교에서 잠시 숨 돌릴 곳이었다. 월요일 저녁 6시 반이 되면 알아두면 쓸모 있는 학교 소식으로 채워진 보도와 타인의 삶이 엿보이는 여론을 읽었다. 읽은 글은 다음 주 월요일 아침 단과대 입구에서 신문의 형태로 다시 만났다. 여덟 면에 가득 찬 글은 한 사람의 것은 아니었다. 2년 반 동안 누군가는 떠나보내고 새 사람을 맞이하며 많은 사람과 함께 일했다. 학교도 신문도 아무것도 몰랐던 새내기를 이끌어준 선배부터 잘 따라와 준 후배까지. 우연한 인연들은 삶의 주요 등장인물이 돼 한 페이지가 됐다. 학보사는 시작이자 쉼터였고, 보람이자 만남이었다.
표기체계를 매번 까먹어 서툴렀던 시절을, 저녁 늦게 불 꺼진 사림관과 농구장의 학우들을, 오탈자를 찾기 위해 글자 하나하나를 뜯어보던 시간을 기억한다. 신문사 소파에서 깊어진 대화, 더 좋은 신문을 위해 나눈 고민들이 생생하다. 이젠 필요 없어진 휴대폰 메모장에 가득 찬 기사 조각들이지만 쉽게 지우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삶은 바느질과 다르다. 매듭을 잘 못 지어도 걸어온 발자국은 그대로 있다. 마무리 매듭 또한 긴 생애에서 흐름의 일부일 뿐이다. 이 글에 치명적인 오탈자가 있다고 해서 학보사에서의 기억과 경험이 변질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마무리 매듭을 잘 짓고 싶어 수백 번 고민하고 한 글자 한 글자를 조심스레 써내려 간다는건 의미 있는 기억의 끝을 조금이라도 더 좋게 남기고 싶은 애정의 상징이 아닐까.
혼자 쓰고 혼자 읽었던 글이 종이에 인쇄돼 학교 곳곳에 뿌려진다는 건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끔은 부끄럽기도 했고, 어떤 사람이 읽을까, 읽고 어떤 생각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다. 신문은 일방적인 매체라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당신에게 닿기만을 바라며 일방적으로 작별 인사를 보낸다.
학보사에서 글을 쓸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 모든 분도 행복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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