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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948원, 폐지 줍는 노인
  • 박소현 수습기자
  • 승인 2022.10.17 08:00
  • 호수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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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거리에는 폐지를 가득 싣고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인들이 있다. 좁은 주택가 골목,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에서 이들은 본인들 키보다도 높은 리어카를 끌며 위태롭게 폐지를 줍는다. 젊은 날 치열하게 살아 온 그간의 짐을 내려놓고 편안한 노후를 보내야 할 노인들이 쉬지 못하고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부턴가 폐지 줍는 노인의 모습은 한국 사회 가난의 표상이 됐다. 2022년 기준 우리나라 65세 이상인 고령 인구는 전체 인구의 17%다. 최근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이 발표한 ‘폐지수집 노인 현황과 실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전국의 폐지수집 노인은 약 1만 5천 명에 이른다. 즉 노인 100명 중 약 1.7명이 폐지 수거를 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KBS 1TV <시사기획창> 제작진과 함께 생계형 폐지수집 노인 10명에게 GPS 추적 장치를 지급해 각자의 활동을 분석했다. 그 결과 이들의 하루 평균 이동 거리는 12.3km, 일하는 시간은 11시간 20분이었다. 평균 일당은 1만 428원인 데, 시급으로 환산하면 948원이며 이는 올해 최저임금 9,160원의 10% 수준이다. 이처럼 하루의 절반을 폐지를 주우며 고되게 일하지만 돌아오는 보상은 그에 한참 못 미친다. 그렇기에 이들에겐 10원도 소중하다. 고강도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불구하고 노인들은 생존을 위해 폐지 줍는 노동을 할 수밖에 없다. 은퇴 나이의 노인을 받아주는 곳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녕 이 노인들의 노동 가치가 그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폐지를 주워 고물상에 파는 일은 빈곤 노인들의 밥벌이인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지닌다. 길거리에 나뒹구는 쓰레기들은 이들로 인해 치워져 거리는 미화되고 자원은 재활용된다. 한국노인인력개발원은 노인들의 하루 노동시간과 노인 한 명당 하루 폐지 수거량을 이용해 폐지수집 노인의 연평균 총폐지 수집량을 조사했다. 그 양은 24만 6,023톤, 우리나라 폐지 재활용 중 약 60.3%에 달한다. 이는 사적 영역인 개인의 경제활동이 공적 영역에서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적 영역에는 그에 맞는 적절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약 5년 전부터 여러 지역 구청에서 지원사업으로 가볍고 안전한 리어카를 제작해 폐지 줍는 노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하지만 장비 수준을 개선한다고 해서 고령의 노인을 위험한 노동현장으로 내몰고 있다는 사실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통계청은 3년 뒤인 2025년이면 고령인구 비중이 20.6%로 초고령 사회로 진입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은 폐지 줍는 노동의 공적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 우선 돼야겠지만,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는 노인들을 위한 맞춤형 일자리를 마련해야 한다. 이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다.

현재 우리나라 노인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대부분이 절대 빈곤층이며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들은 스스로를 구하기 위해 자립적으로 거리에 나선 비공식 노동자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가의 지원만 바라는 의존적인 노인이 아니다. 우리 사회는 폐지 줍는 노인 1만 5천 명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이들의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따를 수 있도록, 안전이 보장된 환경에서 일할 수 있도록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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