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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아니라 범죄입니다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10.0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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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한 달 전 헤어진 연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미리 연락하면 만나주지 않을 게 뻔하니 눈에 띄지 않도록 모자를 눌러쓰고 연인의 집 주차장에 숨어 그를 기다린다. 가서 협박하는 것도 아니고 지켜보기만 하니 딱히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뒤를 몰래 따르며 그리운 옛 연인의 뒷모습을 보기도 한다. 전 애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액세서리를 사서 집 앞에 놔두고 가기도 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문자를 하루에 몇 통씩 보낸다. 과연 A씨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시 구애하는 로맨티스트일까? 아니다. 앞선 A씨의 행동들은 모두 법적으로 ‘스토킹 범죄’로 규정된 행위들이다. 스토킹이란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의도적으로 계속 따라다니며 정신적, 신체적 피해를 입히는 행동을 말한다. 상대의 의사에 반해 편지, 전자우편, 전화, 선물 등을 통해 불안을 주는 행위도 포함이다.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피해자가 스토킹 행위를 신고하더라도 경범죄 처벌법에 따라 1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전부였다. 21년 10월, 스토킹 처벌법이 시행되며 실형이 가능해졌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스토킹 처벌법 시행 이후 올해 6월까지 9달간 5,434건이 처벌됐다. 하루 평균 20건이 넘는 수치다. 이렇게 일상적인 범죄임에도 사회는 여전히 스토킹 행위를 뜨거운 사랑 정도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 달 13일(화), 신당역에서 31세 남성 전주환이 입사 동기인 28세 여성 역무원을 흉기로 살해했다. 피해자가 전주환을 두 번이나 고소했음에도 결국 살인 사건으로 연결됐다.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다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 이상훈 서울 시의원은 전주환 사건에 대해 “좋아하는데 안받아주니 폭력적으로 대응한 것”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여전히 집착과 소유욕을 애정의 일부로 인식하는 사회 분위기가 범죄행위의 심각성을 흐리고 있다. 현재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의사를 밝힌다면 공소 제기가 불가능한 반의사불벌죄다. 피해자는 보복 범죄의 위험성까지 떠안는 꼴인 것이다.

스토킹 범죄의 경우,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이상 중범죄로 연계될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 범죄의 일반적인 전조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전히 피해자와 가해자의 분리는 충분히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3월까지 스토킹 범죄로 접수된 구속영장 377건 중 32.6%는 기각됐다. 심지어 가해자에게 조치를 취하는 것이 아닌 피해자가 스마트 워치를 지니고 다녀야 하는 상황이다. 신당역 전주환 살인사건 이후 법무부는 반의사불벌죄를 폐지하는 쪽으로 스토킹 처벌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랑이 죄냐고 묻는다면 물론 아니다. 관심 가는 사람을 생각하고 함께 하는 미래를 떠올리는 일은 얼마든지 해도 좋다. 하지만 싫은 내색을 비추는데도 계속해서 연락하고, 선물을 보내고, 집 앞까지 찾아가 기다리는 일은 멈춰야 한다. ‘사랑할 자유’는 ‘평화로운 일상을 누릴 자유’보다 아래에 있어야 한다. 사랑은 두 사람 함께 온전히 감정을 나눌 때, 비로소 아름다운 감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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