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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할 수 있어요” 행위는 배려, 시선은 편견?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09.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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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한 생명을 품은 우리 사회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고취해야 한 다. 이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공리주의 사상에 국한된 원론적 이해가 아닌, 복지국가에서 실현돼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이상적 현상으로 이해해야만 한다. 서로 다른 개인의 집합체인 사회 특성상 그 위에 사상 형태의 주관을 씌우기엔 한계가 있다. ‘어떤 현상에 대한 구체적인 사고나 생각’이라는 사상의 사전적 본질로 인해 옳고 그른 명제 형태로의 수렴이 어렵기 때문이다. 주관적 견해는 자칫 편향성을 띠기 마련이기에 일반화의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적으로 공리주의를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우리 사회는 약자를 모두 포용한 조직 속에서 그들의 동등한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

바람직한 사회를 위해선 어느 하나 소외되지 않도록 사각지대를 다듬어야 하고, 마치 이러한 이익에 대변하듯 둥글어진 모퉁이들은 그들 끼리 상호작용하며 선순환 속에 살아간다. 인간성이 상실되지 않은 사회 속에서 선순환을 이끄는 무형의 가치는 바로 ‘배려’다. 비장애인은 장애인을 배려하고 그들이 직면할 불편함에 대해 공감하며 이를 몸소 해결하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의 자화상이다. “우리는 약자를 보호해야 한다.” 이는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이의 도덕적 사고 속 자리한 기본값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수동적 행위는 사회 제도에 따르는 것이고, 능동적 행위 는 배려일 것이다. 사회구성원의 권익 보호를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약자 보호도 있지만, 인위적인 규제 이전에 원초적이고 도덕적인 보호는 배려로 실현된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를 실현하는 사회는 진정 아름다운 사회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배려를 취지로 한 행동이 어쩌면 배려로 다가오지 않을 때도 있다. ‘장애인이니 이 행위는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도출된 비장애인의 행위는 장애인에게 무력감을 안겨줄 수도 있음을 간과하지 않았 는가? 어느 날 어떤 사건이 발생했다고 가정해보자. 지체장애인은 상황을 해결할 사고 능력이 되지 않으니 사건과 고립시키고, 시각장애인은 현장 을 목격할 수 없으니 문제 해결에서 제외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사건 해결은 복잡하니 비장애인의 영역으로 국한함으로써 장애인을 배려한 것이라 할 수도 있지만, 이는 장애인의 가능성을 묻어버리는 편견일 수도 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 한솔(28 크리에이터) 씨는 대학교 조별과제에 참여할 수 있다는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나머지 비장애인 조원끼리 과제를 해결한 후 “하기 힘드실 것 같아 저희가 진행했다”라는 말을 건넸고, 이를 들었을 때 상당한 무력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는 편견이 자리한 이기적 배려로 이해할 수 있다. 편견과 배려, 과연 결이 맞는가?

편견이 선행된 배려는 타인을 위하는 행위가 아니다.  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회적 약자는 사회 내에서 정체성을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은 사회에 필요한 존재이길 원하고 그렇기에 행위의 주체이길 원한다. 편견이 자리 잡은 배려는 사회 공동체 위 장애인이 디딜 수 있는 위치를 상실하게 만든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것만 같은 박탈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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