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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진의 Talk Talk] 어른이 되려면
  • 임현진 편집국장
  • 승인 2022.09.05 08:00
  • 호수 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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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의 문턱을 넘는 순간부터 단순히 스무 살이라는 나이 하나만으로 어른이 된 것 같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교복을 입을 때보다 더욱 성숙 한 사고와 관용적인 시선이 자연스레 주어지는 줄로만 알았다. 미성년의 나 이는 경험에 초점을 맞춰 깨달음을 얻 는것에 그치는 일종의 학습이라 생 각했고, 어른이 되면 어린 날의 나보다 나은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지 혜로움이 자연스레 생길 것이라 믿었다. 어느 한 과일이 본연의 색깔을 내고 달콤한 과육이 가득 찰 때까지 시간이 걸리듯 온전치 못한 것이 숙성되는 과정이 기자에겐 미성년이었다. 19살이 저물던 순간의 나는 마치 수료 과정이라도 끝낸 듯 20살이 되는 해로 부터 온전한 성숙을 바랐다. 성숙의 완성도는 누구도 정의할 수 없음을 간과 한 것이다.

인격체에 있어서 이성적이고 감성적 인 판단: 즉 따뜻하지만 뚜렷한 견해, 차갑지만 진심이 담긴 위로를 유연하고 여유롭게 해내리라 생각했다. 개인적인 인간관계를 좀 더 세심히 이해하 고, 사회적인 문제를 바라볼 땐 옳은 방향의 가치관을 지닌 나이가 됐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성과 감성은 단어 자체의 의미부터 서로 유하게 섞일 수 없는, 각자 내포하는 바가 반 대인 어휘다. 같은 선상에 올려놓기엔 그만큼 복잡하고 까다로운데 갓 청소년을 벗어난 내가 감히 이해하려고 덤볐다. 19와 20 사이 너무나 작은 숫자 1뿐인데 말이다.

나이에 있어서 숫자 19와 20은 마치 2진수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간 경계가 확연하다고 착각했다. 미성숙과 성 숙 사이의 경계는 법으로 정해놓은 만 19세 전후가 아닌 사실을 인지하면서 도, 순진하게 이전의 미성년과는 달라 진 나를 기대했다. 인간의 성장은 아날로그처럼 유연하고 연속적인데 마치 경직된 틀 속에 뻐끔거리듯 디지털의 가치를 대입했다, 일정한 시점이 지났으니 어른스러움이 당연하게 주어지길 바랐던 것이다.

성인의 나이가 돼도 여전히 감정은 엉켰고 풀어내는 방법이 서툴렀다. 관계에 사소한 오점이 생겼을 땐 털어내 면 그만인데, 오점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단단한 관계 앞에 안개처럼 자리 잡아 마치 관계가 흐려진 듯 서성거려 헷갈리게 했다. 어른이 되면 무엇이든 지혜롭게 해결하리라 생각했던 어린 날의 자신이 애틋했다. 유년 시절부터 얼른 크길 바랐기에 스무 살을 맞이할 때 꽤 중대함을 느꼈나 보다. 현명한 어른, 정직하고 곧은 딸, 따뜻한 친구가 되려면 성숙해져야 한다 생각했다. 하지만 단순히 ‘성인’이라는 시점에 국한돼 끊임없는 학습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경험치인 것을 간과했다. 22의 나이 에도 아직 온전치 못한, 여전히 어린 나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질적인 성장을 이뤄내 현명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직 성장하고 있고, 잘 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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