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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이 없어진 사회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05.3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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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92회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이동진 영화 평론가는 <기생충>에 대해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며 한 줄 평했다. 일부 대중들은 이동진 평론가에게 “왜 굳이 어려운 말을 쓰냐?”라며 비난했다.

다른 사례로는 ‘사흘’ 단어에 대한 논란이 있다. 2020년 8월, 광복절이 토요일이라 월요일이 대체공휴일로 지정됐다. 토요일부터 월요일까지 총 사흘의 연휴가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하냐?”라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모르는 단어, 헷갈리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보면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왜 바깥으로 화살을 돌리는 것일까?

금일, 동서쪽도 마찬가지다. 금일(今日)은 오늘을 뜻하고 동서(東西)쪽은 동쪽과 서쪽을 아울러서 이르는 말 또는 동쪽을 기준으로 동쪽과 서쪽 사이의 방위를 뜻하는 말이다. 내가 쓰지 않는다고 해서 사용하지 않는 말이 아니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찾아보면 된다. 사용자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는 부끄러움을 느끼면 행동을 고치거나 배우려고 했는데, 요즘 사람들은 부끄러움 느끼는 대신 분노한다. 사람들은 “몰라도 사는데 지장 없어”, “이런 걸로 무식하다고 하는 게 더 무식해”라며 되려 자신의 무지를 정당화하고 배움을 거부한다.

현대 사람들은 누군가에게 비판, 피드백 받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시원시원하게 자신의 할 말을 하는 것을 선망한다. 몇 년 전 유행어인 ‘인생은 마이웨이’가 이를 보여주며 현재 사회는 더 극단으로 치우쳤다. 소위 ‘사이다’, ‘참교육’ 콘텐츠가 유행하고 사람들은 그게 진리인 양 받아들인다. 유튜브, SNS의 성장으로 자극적인 내용의 영상, 글 따위들이 심의를 거치지 않은 채 날 것으로 제공되고 사람들은 그 자극을 즐긴다. 더 이상 남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당당한 삶을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무시’의 정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 지적과 비난뿐만 아니라 충고, 비판도 무시로 간주하게 됐다. 어떤 이유로든 자신의 심기를 건드리면 본때를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할 말을 잘하는 것과 무례한 것은 다르다. 충고와 잔소리는 다르지만, 진심 어린 충고를 건네는 사람에게도 ‘꼰대’, ‘선비’라며 비아냥대게 됐다. 자신의 잘못, 부끄러움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삶은 제자리걸음이 아니라 뒤로 돌아가는 꼴이 된다. 사람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며 상호작용하며 살아가야 한다. 남을 통해 배움을 얻고, 나를 성장시켜 나가야 한다. 어느 교수는 “인문학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사회학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라고 말했다. 인문학과 사회학을 경시하는 사회적 풍토가 이제는 상호작용을 거부하는 개인주의, 이기주의로 보여지고 있다.

언어는 나의 세계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누군가 사용하는 단어를 보고 “누가 그런 말을 쓰냐”라며 비웃는 건 자신의 세계에 한계를 두는 것이다. 그렇게 표현의 한계에 다다르면 세계는 좁혀져 간다. 부끄러움은 나쁜 게 아니다. 부끄러움을 느끼고, 한 걸음 나아가면 된다. 부끄러움을 느끼지않는게 더 좋지 않다. 부끄러움 없이 상대를 비난하는 게 더 부끄러운 행동이다. 그렇기에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회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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