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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 가작 - 태풍과 우산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05.02 08:58
  • 호수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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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과 우산

신현정(국어국문학과 4학년)

 

태풍은 나에게 처음으로 상실을 알려주었다. 초등학교 1학년인 나에겐 아주 귀여운 분홍색 우산이 있었다. 그 우산을 쓰면 내 시야의 일부분에 분홍색 천이 보여서 좋았고, 우산 끝에 달린 레이스도 깜찍해서 정말 좋아했다. 그 우산을 쓰는 게 좋아서 비 오는 날까지 좋아졌었다. 그리고 그 우산은 내가 성인이 되어서도 잊지 못하는 우산이다.

“엄마, 내 줄무늬 양말이 없어졌어.” 엄마는 내 옷장의 첫 번째 서랍을 열어주며 말했다. “여기 있네” 나는 뭐든지 척척 찾아내는 엄마를 신기한 눈빛으로 보았고, 엄마는 코트를 걸치며 말했다. “딸, 오늘 비도 많이 오고, 바람도 많이 불기 때문에 학교 갈 때 조심해야 해.” 엄마는 오늘 바깥의 날씨가 태풍이라는 것을 나에게 알려주며 말했다. 나는 처음 보는 태풍의 모습에 살짝 설렜던 것 같다. 파란 하늘은 보이지도 않게 빽빽하게 메운 먹구름, 아침이지만 꼭 저녁같이 보이는 바깥 풍경, 집 안까지 은은하게 번지는 빗물 냄새, 거센 바람에 덜컹거리는 창문까지 철없던 나는 너무 신기했었다.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하며 나는 소중한 분홍색 우산을 손에 꼭 쥐고 학교에 가기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집 안에서 보았던 태풍의 모습은 쇠창살 안에 갇힌 맹수를 구경하는 기분이었다면 집 밖에 나서니 그 맹수를 맨몸으로 마주하는 것과 같았다. 용기를 내어 맹수의 앞으로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갔다. 맹수의 포효와 같은 매서운 바람에 몸이 밀리는 기분이었다. 조금씩 앞으로 가려 하니 우산이 버티질 못하고 마구 꺾였다. 평소보다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걷고 있었는데, 앞쪽에서 불던 바람이 갑자기 내 뒤편으로 불면서 우산이 완전히 뒤집혔다.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내 옷이 젖는 건 신경도 쓰지 못한 채 우산을 원상태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내었다. 우산을 접는 순간 ‘뚝’하고 부러지는 소리가 나더니 망가져 버렸다. 가장 아끼는 우산이 엉망이 되었지만, 나는 이미 학교 안에 들어왔기 때문에 망가진 우산 때문에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1교시가 끝난 뒤, 나는 콜렉트콜 전화기로 뛰어가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우산이 망가져서 집에 어떻게 가지?” 나의 물음은 정말 집에 가는 방법을 묻는 건 아니었다. 엄마가 바쁘지만, 데리러 오면 좋겠다는 마음을 눌러 담아 물은 것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런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인지, “같이 하교하는 친구랑 우산 나눠서 쓰고 와. 집에 오면 꼭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라고 말했다. 나는 반으로 돌아와서 같이 하교하는 친구에게 가서 나중에 집에 갈 때 우산을 같이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친구는 흔쾌히 같이 쓰자고 하였다. 하지만, 마지막 교시에 내가 듣던 방과 후 교실 선생님이 전체방송으로 컴퓨터 방과 후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전달할 이야기가 있으니 수업이 끝나고 모이라고 하셨다.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같은 방과 후 수업을 듣지 않기 때문에 친구에게 먼저 하교하라고 말했다. 하지만, 친구는 기다려주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교실에서 만나기로 정했고, 나는 수업이 끝난 뒤 방과후 교실로 갔다.

방과 후 선생님께서는 다음 달에 컴퓨터 자격증 시험이 있으니, 아침 일찍 나와서 연습을 해도 되고, 몇몇 학생들은 필수적으로 아침 일찍 나오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자격증 시험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다.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갈 무렵, 창밖에는 불길한 소리가 들렸다. 당장 비가 쏟아져도 이상할 것 없는 소리였다. 나는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선생님이 “이제 집에 갑시다”라고 말씀하시자마자 얼른 교실로 뛰어갔다. 하지만 교실은 텅 비어 있었고, 내 책상 위에는 ‘미안해, 나 먼저 갈게’라고 쓰인 쪽지 한 장만 있었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수업이 막 끝났을 때의 창밖은 비가 그쳐가고 있어서 등교할 때보다 젖지 않고 집에 갈 수 있었고, 혼자 교실에 남아있기 무서울 수 있었고, 빨리 집에 가야 하는 이유가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기다려주지” 돌아오지 않을 걸 아는 혼잣말을 뱉고, 나오려는 눈물을 집어넣고 혼자만의 하굣길을 준비했다. 학교 정문으로 나오자 하늘은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망가진 우산과 함께하는 하굣길이지만, 우리 집과 학교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기에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이제는 귀엽지 않은 분홍색 우산을 펼쳤다. 우산의 한 귀퉁이는 우산 살이 부러져 볼품없이 축 처져있었다. 그래도 멀쩡한 부분에 내 몸을 웅크려서 집으로 갔다. 신호등의 초록불을 기다리는 횡단보도는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지만, 비가 억수같이 왔기에 내 옷은 이미 젖을 대로 젖어있었다.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헤드라이트의 한쪽이 나간 트럭이 빠른 속도로 앞으로 오더니 내 쪽으로 물을 튀겼다. 난 그나마 멀쩡했던 머리카락까지도 전부 젖어버렸다. 그 정도가 되니 눈물이 나오는 것은 멈출 수가 없었다. 신발 속에 물이 차올라 걸을 때마다 질퍽질퍽하는 소리가 나오고, 얼굴은 이미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팅팅 불어버렸다.

평소보다 두 배는 더 힘들었던 하굣길 끝으로 집에 도착하니,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바람이 불기 시작했는지 덜컹거리는 창문 소리, 내 마음처럼 빽빽하게 메운 먹구름, 지금이 오전인지 오후인지 모를 바깥 풍경, 내 몸에서 진동하는 빗물 냄새가 날 괴롭혔다. 나는 이 모든 사태의 원흉 같은 망가진 우산을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젖어버려 원래의 색을 알 수 없어진 옷들은 벗기도 힘들어서 그대로 입고 거실 바닥에서 엉엉 울었다. 내가 우는 소리와 함께 천둥도 울었다. 천둥의 끝에서 현관문이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딸, 엄마 왔어. 이 날씨에 혼자 있으면 무서울 것 같아서 빨리 왔지.” 엄마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자마자 빗물과 함께 누워있는 날 일으켜 세웠다. 무슨 일이냐고 묻는 눈빛에 나는 “태풍 때문에 내가 제일 아끼던 우산은 부러지고, 기다려준다는 친구는 먼저 가버리고, 옷도 젖고, 컴퓨터 선생님이 불러서 집에 늦게 왔어. 난 오늘 우산도, 친구도, 옷도 시간도 다 잃어버렸어.”라고 말했다. 엄마는 그 이야기를 듣고, “바람이 많이 불면, 우산이 부러질 수도 있지. 그럼 새로운 우산을 사면 돼. 친구가 아무 말도 없이 먼저 갔어?” “아니” “그럼, 너는 우산도, 친구도 안 잃어버렸는데? 컴퓨터 수업은 네가 듣고 싶다고 했잖아, 그 수업 때문에 집에 늦게 올 수도 있지. 비가 오면 옷이 젖을 수도 있어. 엄마 옷 만져봐, 엄마도 옷이 축축하지? 옷은 깨끗하게 세탁하면 돼. 그럼 여기서 네가 잃어버린 건? 하나도 없네?” 엄마의 축축한 옷과 나의 축축한 옷이 맞닿았다. 엄마는 내가 찾지 못하는 줄무늬 양말을 찾아주듯이 이번에도 내가 잃어버린 것들을 전부 찾아주었다. 나는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현관문에는 여전히 내가 내동댕이친 우산이 있었다. 우산살은 마구 튀어나와 앙상해지고 예쁜 분홍색 천은 찢어져서 원래의 형태를 짐작할 수 없는 내가 제일 아끼던 우산을 똑바로 세워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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