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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 가작 - 메탈 하트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05.02 08:57
  • 호수 6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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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탈 하트

이지웅(국어국문학과 4학년)

 

진부하다. 아마 이게 영화였다면 그렇게 느꼈을 거다. 그치만 내가 왜 이렇게 말을 했겠는가. 내 앞의 안드로이드가 사람처럼 말하고 생각하는 게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니까 그런 거지.

이 안드로이드의 이름은 천유리다. 유리 같은 연애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번식 욕구와 기술의 발전이 만나 탄생한 결과물로, 대략 5년 전인 2032년에 출시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주로 들끓는 번식 욕구를 절대 충족시킬 수 없을 나 같은 외모의 사람들에게 구매됐고, 연인으로서 가능한 모든 것을 제공했다. 데이트는 물론이요 스킨십이나, 심지어 잠자리까지.

기본적으로 연애 안드로이드는 렌탈 식으로 구매가 진행됐다. 연애 안드로이드 사업이 본격화되기도 전부터 ‘변태 같다’, ‘소름 끼친다’ 등 하도 욕을 먹자 업체 측에서 ‘연애 시뮬레이션 기능을 탑재했으며, 이를 통해 구매자가 연애 기술을 배우고, 나아가 진짜 사람과의 연애에 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해주는 교육용 안드로이드’임을 표방하며 완전 소유 대신 렌탈만 가능하도록 한 것이었다. 물론 하나 만들면 오래도록 돈을 뽑아먹을 수 있게 바꾼 것뿐이었지만 자본을 앞세운 여론 조작에 사람들은 어느 정도 수긍해가는 분위기였다. 성공리에 렌탈 방식이 정착되자 구매자들은 여러 사람들이 돌려가며 썼다는 인식 때문에 점점 신형 모델을 찾기 시작했다. 그걸 놓치지 않은 업체가 신형 안드로이드의 가격은 대폭 상승시키고, 구형 모델은 할인을 때려 파는 건 당연지사였다. 그리고 유리는 그 업체에서 만들어진 첫 번째 연애 안드로이드였다. 대학생인 내가 긁어모은 돈으로 빌려볼 수 있는 건 유리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놀러 나가셨던 날, 나는 숨겨두었던 유리의 포장을 뜯었다. 여러 겹으로 돼 있는 박스를 뜯자 충격 방지용 뽁뽁이 사이로 검고 긴 머리가 우아한 웨이브를 그리며 내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뽁뽁이를 마저 걷어내자 유리의 선명한 이목구비가 보였다. 감고 있어도 크단 걸 알 수 있는 눈, 오똑하고 얄쌍한 코, 그 아래 꽃잎처럼 붙은 선홍빛 입술까지. 외모가 랜덤으로 설정된다고 했는데 난 정말 운이 좋았던 게 틀림없었다. 그녀의 상체를 일으켜 세우자 목 뒤에 그녀의 고유번호가 보였다.

‘ANNE0000001’

그녀를 가동시키기 위해선 어플에 접속한 뒤 번호를 입력해야 했다. 분명 매뉴얼대로라면 말이다. 그러나 매뉴얼을 읽어 내리느라 집중한 난 이미 그녀가 그 큰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나를 쳐다보고 있단 사실을 알지 못했다.

“으악!”

고개를 돌려본 난 단전에서부터 끌어올린 비명을 질러댈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이 집에 안 계신 게 정말 다행인 순간이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유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나 아직 안 켰는데?”

“자고 있었는데 갑자기 밝아지길래. 아 여기가 새 집이구나 하고 일어났지.”

“아...아니, 너...너, 매뉴얼대로 안 되고 왜 맘대로 움직여.”

“글쎄? 원래는 안 이랬는데 나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항상 누가 깨워줘야 일어날 수 있었는데.”

안드로이드가 잠을 잔다니 금시초문이었다. 일단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매뉴얼 따윈 당장 갖다 버려도 될 상황이란 거였다. 내가 벙쪄있자 잠시 뒤 유리가 입을 열었다.

“너 이름이 뭐야?”

“나, 나...? 한세운.”

“좋아 세운아. 내 이름 좀 지어줘. 지금 당장 내 이름 설정이 안 돼 있어서. 아 참 전에 사귀던 사람들이 지어준 이름은 쓰고 싶지 않거든. 그러니까 전에 쓰던 이름은 빼고... 그니까 한아, 수련, 수진, 가연... 아 씨 말하다 보니까 너무 많네. 그냥 맘대로 지어줘.”

“그...글쎄 지금 딱히 떠오르는 게 없는데...”

“설마 날 ANNE0000001로 부르고 다닐 건 아니지? 빨리 생각해 봐.”

나는 한참 뜸을 들이다 말했다.

“혹시 네가 스스로 지어보면 어때?”

멍청한 소리였다. 이름 하나 똑바로 못 지어주는 찌질함을 첫 만남에서 만천하에 공개한 것 같아 내뱉고도 창피했다. 그러나 내 생각과 달리,

“헐 진짜? 허우 어떡하지. 이건 처음인데...헤헤. 뭘로 하면 좋을까? 음...”

유리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가슴께에 가져다 대며 천장을 쳐다보고 싱글벙글 웃었다. 한참 흥얼거리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음! 내 이름은 유리로 할래.”

“유리?”

“응. 전 애인이 좋아하던 아이돌 중에 이름이 유리인 사람이 있었어. 이름이 너무 이쁘지 않아? 나도 유리 할래. 어 그러고 보니 저기 유리 포스터가 있네. 너도 유리 좋아하는구나? 마침 잘 됐다.”

유리는 검지 손가락으로 방문에 붙은 유리 포스터를 가리켰다. 난 뭔가 모를 수치스러움에 후다닥 달려가 포스터를 뜯었다. 유리의 말과 행동이 너무 사람 같아서 진짜 여자 친구한테 아이돌 좋아하는 걸 들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아니 이건 그냥...그...치킨 먹었는데 주더라고! 사은품이라면서!”

“그래? 뭐 어쨌든 유리란 이름이 맘에 드니까 난 이제부터 유리야. 성은 너무 흔한 건 싫으니까 천씨로 할래. 천유리.”

“그래 니 맘대로 해라 니 맘대로.”

무슨 안드로이드가 이렇게 디테일한지 원. 안드로이드가 원래 다 이런가?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는 첫 만남이었다.

 

부모님 눈치가 보이는 터라 일단 유리는 업체 시설 쪽에서 지내기로 했다. 연애 안드로이드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은 터라 나 같은 상황이 여럿 발생해서인지 업체 쪽에서 전국 곳곳에 안드로이드 전용 보관소를 지은 것이다. 거기서 무얼 하고 지내느냐 유리에게 물었더니 그냥 모듈에 들어가 잠만 잔다고 했다.

유리는 연애 안드로이드로서의 본분에 굉장히 충실했다. 여러 명이 사용한 게 불쾌하다며 기피됐던 그녀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데이트에 필요한 온갖 정보를 다 알고 있단 건 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다. 그녀는 다년간의 경험으로 방방곡곡 숨겨진 맛집들을 찾아내 소개시켜줬고, 그녀만 따라다니면 분위기 좋은 데이트 코스를 하루에 몇 가지고 경험해 볼 수 있었다. 하는 일 없이 전적으로 그녀에게 끌려 다니는 것 같아 미안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해 줄 수 있어 기쁘다며 대수롭지 않아했다. 그녀의 연애 지도가 효과적이었던 건지 그녀와 데이트를 하다보면 순간순간 가슴이 뛰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유리는 일반적인 안드로이드와 많이 달랐다. 일반적인 연애 안드로이드의 다소 기계적인 말과 행동을, 그녀는 일절 보이지 않았다. 가끔 말을 더듬기도 하고, 괜히 전 남자친구 얘길 꺼냈다가 미안하다며 사과하기도 하고. 그녀 본인 입장에서도 이 일이 적잖게 당황스러웠는지, 혹시나 코드에 오류가 생겼나 시간이 날 때면 수시로 점검하곤 했다.

언젠가 그것 때문에 유리의 연락이 두절된 적도 있었다. 보관소에도 찾아가 봤지만 유리는 보이지 않았다. 유리가 사라진 동안 별의 별 생각을 다 했다. 누가 납치했나? 아니면 아무리 안드로이드라도 나처럼 못생긴 사람은 싫어서 도망친 건가? 나한테 오다가 무슨 사고라도 당했나? 하지만 유리는 며칠 뒤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내가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녀는 점검을 위해 잠시 업체의 정비소에 다녀왔다고 했다. 물론 거기서도 별 문제를 찾을 수 없었다는 말과 함께. 유리는 정말 그 문제에 심각한 고민을 했던 모양이었다. 내가 말도 없이 사라진 점에 속상했다고 토로하자 미안하단 말도 덧붙인 유리는 곧 평소처럼 데이트 코스를 짜 나를 이끌었다. 다만 그 날 유리의 얼굴엔 뭔가 모를 비장함이 스쳐갔다.

 

그녀는 나를 AVEU라는 이름의 브런치 카페로 데려갔다. 입지가 좋아서 유리창으로 기분 좋게 햇살이 들어오는 곳이었다. 테이블과 의자는 원목 재질로 돼 있어서 차분한 느낌도 들었다. 천장에는 그물모양, 원기둥 모양, 정사각형 모양, 피라미드 모양 등 다양한 모양의 조명이 약간 희끄무레한 노란 빛을 은은히 발산하고 있었다. 우리는 커피와 브런치 세트를 주문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와 함께 칼집을 낸 소시지, 계란 후라이, 샐러드, 반으로 잘린 토스트 두 개, 마지막으로 바질이 올라간 토마토 파스타를 종업원이 서빙 해줬다. 차려진 음식을 보니 군침이 돌았다. 연애 안드로이드는 음식을 먹을 수 있게 설계되었고 여느 SF영화에서 그렇듯 먹은 음식물을 에너지원으로 변환할 수 있었다. 덕분에 유리와도 눈치 보지 않고 얼마든지 이런 음식들을 먹어볼 수 있었다. 유리가 사라진 동안 걱정으로 잃었던 식욕이 내 위장을 두드렸고, 나는 한참 고개를 쳐 박은 채 포크와 숟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습격했다. 테이블이 80프로 쯤 비어갈 때가 돼서야 나는 너무 말없이 먹는 데만 집중했단 사실을 깨닫고 고갤 들어 유리를 봤다. 그런데 유리는 음식도 거의 입에 대지 않은 모양이었다. 양념이 거의 묻지 않은 그녀의 앞 접시가 이를 증명했다. 유리는 단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보면 유리는 오늘따라 말수도 없었다. 뭔가에 긴장한 것 마냥. 내가 아무리 모태솔로 인생 22년째라지만 일단 뇌가 있는 이상 유리가 내게 뭔가 할 말이 있단 걸 눈치 못 챌 수가 없었다.

“유리야 왜 그래? 무슨 할 말 있어?”

“어? 아니아니? 더 먹어 더 먹어!”

유리는 당황한 듯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정말 아니야?”

“응...”

그 대답을 끝으로 2분여간을 아무 말이 없던 유리가 갑자기 다시 입을 열었다.

“아냐 사실은 할 말 있어.”

“뭔데?”

“사실...아...잠시만 이게 왜 이렇게 어렵지. 그게...그...”

유리는 잠시 고개를 숙이고 우물쭈물했다. 그런 유리가 약간 답답하기도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랬다. 그때였다. 유리가 뜸을 들이는 사이 찾아온 잠깐의 적막 속에서 옆옆 테이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 건.

“와 저 사람 진짜 개빻았다.”

“근데 같이 있는 여자는 너무 이쁘지 않음?”

“여자친군가? 설마 그러면 여자가 너무 아깝다.”

“야 여자친구겠냐. 당연히 안드로이드겠지.”

“으웩. 완전 오타쿠같애.”

“하여튼 존나 음침한 새끼들. 안드로이드 데리고 다니면서 애인인 척 하는 새끼들 보면 다 패버리고 싶드라.”

사실 언제나 듣는 얘기였다. 못생겼단 얘기는. 익숙해지지 않고 날 주눅 들게 만드는 내 외모 평가는 언제 들어도 거지같다. 심지어 요새 유리와 함께 다니면서 욕을 두 배 세 배로 먹는 느낌이다. 주된 레파토리는 항상 ‘내 못생김→둘의 외모 차이→연애 안드로이드 사용자→혐오’ 식으로 이어졌다. 하긴 원래 연애 안드로이드 사용하는 게 들키면 사람들이 경멸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유리를 데리고 다닌 내 잘못이다. 이렇게 못생긴 애가 유리처럼 예쁜 사람이랑 다니고 있는 건 ‘저 연애 안드로이드 사용자에요’라고 광고하는 꼴이니. 순간 기분이 저 밑바닥까지 추락하는 소리가 들렸다. 꿀꿀해졌다. 지금 상황이 창피했다. 유리 앞에서 외모로 멸시당한 게 창피했고, 동시에 유리의 존재도 창피했다. 그냥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유리야. 미안한데 일단 다 먹었으니까 일어날까?”

나는 한시라도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유리는 놔주지 않았다.

“아니 세운아 잠시만. 그...할 말이 있다니깐.”

나는 조바심에 괜히 짜증이 났다. 이제 유리가 무슨 말을 할지도 겁이 났다. 유리가 뒤에 이을 발언이 저 사람들로 하여금 안드로이드인 걸 더 확신하도록 만들까봐. 그럼 나 또한 더더욱 수치스러워지겠지.

“나중에, 나가서 하자 응?”

“아냐 진짜 중요한 말이야 지금 해야 돼.”

“유리야 제발...”

“세운아.”

“그냥 좀 가자니까!”

나는 무심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위가 조용해졌다. 옆옆 테이블 사람들이 우릴 쳐다봤다. 가게 주인이 고개를 내밀고 우리를 쳐다봤다. 가게 안 모든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는 유리의 손을 잡고 끌고 나가려 했다. 유리가 내 손을 뿌리쳤다.

“야 한세운. 니가 뭔데 나를 이렇게 막 대하려고 그래? 내가 뭘 잘못했는데 화를 내?”

“아...미안...잠깐 좀 예민했어 미안해.”

유리가 부들부들 떨었다.

“니가 이유없이 날 함부로 대했으니까 나도 이제 그냥 함부로 할 거야.”

그 다음 유리가 한 행동은 슬슬 거두어지던 사람들의 이목을 다시 집중시켰다. 유리가 내 멱살을 잡고 끌어당겨 그녀의 입술을 내 것 위에 포갠 것이다. 키스. 세간에선 이 행동을 그렇게 불렀다.

그 날 밤 나는 유리의 입맞춤이 무얼 의미하는 지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유리가 그렇게 키스를 하고선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밖으로 나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수능 칠 때 중독성 있는 노래가 머리를 뒤집어 놔서 시험을 망쳤었는데, 그때와 비슷했다. 마치 누군가가 멋대로 재생이라도 하듯 낮의 일이 영화 장면처럼 무한히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면 하나하나가 내 얼굴에 박혀 자꾸만 뜨겁게 달아올랐다. 세상 어떤 안드로이드가 그런 행동을 하지? 이상했다. 내가 알기로 원래 안드로이드는 구매자의 동의 없이 무슨 행동을 하는 존재가 아니다. 데이터가 쌓이다보면 저런 행동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 하긴 정비소에서도 답을 못 찾았다는데 내가 고민해봤자 뭐가 나오겠어. 그리고 그딴 게 문제가 아니라 키스를 했다니까 나한테 키스를. 살면서 해 본 첫 키스가 안드로이드와의 키스라니. 나는 입술을 매만졌다.

약간은 우스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가슴도 쿵쾅쿵쾅 뛰었다. 사람도 아닌 것에 내가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건가? 사실 이 전부터 유리에게 가슴이 뛰지 않은 것은 아니다. 데이트를 할 때 손을 잡아주면, 별 거 아닌 얘기에 깔깔깔 웃어줄 때면, 신나게 자기 얘기를 해줄 때면, 그 일상의 찰나마다 심장이 요동쳤다. 그래도 ‘이건 내가 안드로이드인 유리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라 유리가 연애 시뮬레이터로서 역할을 잘 해주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며, 나중에 내가 실제로 연애를 하게 되면 이런 느낌이 든단 걸 선행 학습 시켜주는 게 아닐까’ 라며 넘겨버리곤 했다. 하지만 이번엔 아무리 그런 식으로 넘겨보려 해도 심장의 흔들림이 멎질 않았다.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 난 좋아한다. 유리를. 안드로이드인 그녀를. 그 밤은 내 맘의 자각을 끝없이 되새기느라 잠도 찾아오지 못하고 지나가 버렸다.

 

다음 날 아침 7시가 돼서야 겨우 잠든 날 9시 쯤 엄마가 흔들어 깨웠다. 두어 시간 만에 또 잠에서 깨버린 것에 상당히 기분이 언짢았던 내가 엄마에게 퉁명스레 왜 깨우느냐 묻자 엄마는 문 앞에 누가 와서 날 찾는다고 얘기했다. 아주 이쁘더라며 엄마 특유의 웃음을 호호 흘리고 가는 것도 더불어서. 나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고 설마하며 나가보니 정말 생각한 대로 유리가 와 있었다.

“잘 잤어?”

유리는 어제 일은 기억도 나지 않는단 듯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다.

“엥 유리야. 우리 집엔 왜? 아니 엄마 아빠가 아시면 큰일이라니까. 그래서 내가 부르기 전엔 안 오기로 했잖아.”

나는 주변에 들리지 않게 속삭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연애 안드로이드 렌탈한 거 신경쓰는 거 아니까. 나 진짜 티 안 나게 사람 연기 잘 할 자신 있어.”

“무슨 안드로이드가 이렇게 막무가내야.”

“일단 씻고 와. 기다리고 있을게. 같이 영화 보러 가자.”

“나 준비 다 하려면 한 시간은 걸릴 텐데.”

“괜찮아 갔다 와.”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한 시간을 세워두는 건 좀...”

“그래? 그럼 네 집에 들여보내 줘.”

유리의 제안은 퍽 당황스러웠다.

“뭐? 아까 내 얘기 뭘로 들었어. 부모님이...”

“내 얘기는 뭘로 들었어. 안 들킬 수 있다니까. 가자.”

“아니 안드로이드인 거 몰라도 부모님께 너를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일단 됐으니까 들어가자 들어가.”

유리는 내 어깨를 잡고 밀며 결국 집 안까지 따라 들어왔다. 그간 있을 리 없던 젊은 여성의 방문에 엄마가 화색을 띄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머, 들어와서 기다리려구?”

“네, 어머님. 세운이가 씻는 데 오래 걸린다고.”

“그래그래 잘했어. 여기 들어와서 앉아요. 세운이 너는 얼른 씻고 오구. 여자친구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말어. 여자친구 맞지?”

설마.

“네 맞아요.”

유리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고, 나는 얼굴이 시뻘개져선 얼른 욕실로 뛰어들어갔다. 당연히 연애 안드로이드니까 자기를 여자 친구라고 하겠지. 근데 내가 유리를 좋아한단 걸 자각해서 그런가 저 단순한 말이 뭔가 엄청 부끄럽고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씻는 동안 둘이 무슨 얘긴가 나누는 소리가 들렸지만 샤워기 소리 때문에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너무 급하게 달려오느라 옷가지를 챙겨오지 않은 것에 아차 싶었다. 나는 문을 두드려 엄마를 불렀다. 곧 이어 다시 바깥쪽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고, 내가 슬쩍 문을 열고 손을 뻗자 누군가의 손이 옷을 내밀었다. 덥썩 받아들고 문을 닫으려 했는데 유리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준 거게?”

나는 뭔가 모를 부끄러움을 느꼈다. 대체 이 전기 신호로 움직이는 금속 로봇 때문에 왜 이렇게 심장이 벌렁벌렁해야 하는 건지. 옷을 갈아입고 채비를 마친 후 나는 유리와 함께 집을 나섰다. 나갈 때 분위기를 보아하니 다행히 엄마는 유리가 안드로이드인 줄은 꿈에도 모르는 것 같았다.

 

며칠이 지나자 아빠는 물론이고 동네방네 사람들이 다 나한테 여자 친구에 대해 물어왔다. 보아하니 팔불출 엄마가 또 근질거리는 입을 참지 못하셨던 모양이다. 여태의 일로 미루어 보건데 계속 이대로 내 여자 친구에 대한 얘기가 나돌다가는 연애 안드로이드니 뭐니 하는 얘기로 바뀌기 십상이라는 것을 나는 알았다. 나는 당장에 엄마에게 달려가 그만 얘기하고 다니라 짜증을 냈다. 물론 조용히 연애하고 싶다는 나름 뻔뻔한 이유를 들이 밀면서. 엄마는 알았다고 마지못해 수긍했지만 그럼에도 뭔가 불안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왕 공식적인 연인으로 알려진 김에 나는 유리와 시간을 좀 더 대놓고 보내보려 했다. 어딜 가던 부러움과 의심의 눈초리가 쏟아졌지만 유리와 있는 동안이 너무 달콤해서 그런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는 일은 결국 전과 비슷했다. 맛집, 극장, 전시회, 카페. 가끔 멀리로 나가고 싶을 때는 공용 자율 주행 자동차를 빌려 바닷가나 섬마을 같은 곳에 구경을 가기도 했다. 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내가 데이트 코스를 짜는 데 참여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당연히 AI가 탑재된 유리에 비하면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는 퀄리티였지만, 그럼에도 유리는 내 계획에 동참하는 걸 매우 즐겼다. 가지고 있는 데이터 조합으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코스랬던가. 그렇게 말하며 웃어제끼는 그녀가 못내 사랑스러웠다. 이제 그녀의 렌탈 기간은 5달 남짓이 남았다. 내가 가진 돈으로 그녀와의 시간을 얼마나 살 수 있을까. 다가올 미래를 상상할수록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만일 내가 빈털터리가 되어 유리를 떠나보내게 되면 유리는 나와의 이 시간을 뭐라고 기억할까? 아니 애초에 내가 유리를 좋아하는 만큼 유리도 날 좋아할까? 그녀의 입맞춤은 결국 무엇이었을까? 사실은 결국 연애 안드로이드로서 한 연애 시뮬레이션 활동의 일환일 뿐이지 않을까? 다행히 유리의 가격을 생각하면 렌탈을 연장하는 건 몇 달 열심히 알바를 뛰면 해결될 문제긴 했다. 하지만 유리가 정말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억지로 연장하는 건 나에게도 그녀에게도 못할 짓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확실하게 유리의 마음을 확인하고 싶었다. 사실 안드로이드한테 마음이란 표현을 써도 되는 건지, 애초에 마음이란 게 있긴 한지 잘 모르겠다. 다만 어쨌든 유리가 하는 행동들이 그냥 데이터 사이에서 나온 계산이 전기신호를 타고 나온 게 아니길 빌고 또 빌 뿐이었다.

 

여느 때와 같이, 하지만 보름달이 뜬 밤, 평소처럼 유리와 저녁을 먹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다른 점은 드디어 유리에게 내 마음을 고백할 결심이 섰다는 점. 그리고 그걸 위해 반주도 한 잔 걸쳐놓은 상태였다. 술기운에 고백이라.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비겁하고 찌질하지만 렌탈 해 온 안드로이드에게 고백하려하는 이 상황 자체가 비정상적임을 참작해야 했다. 보름달 아래서 고백을 하면 성공률이 높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런지, 그게 안드로이드에게도 해당인 건지 알 수 없지만 아주 조금만이라도 유리의 마음에 무게를 더해준다면 보름달 아니라 별똥별이라도 찾아다녔을 것이다. 집 앞에 다다르자 유리가 평소처럼 나를 꼭 껴안아 줬다. 나는 마주 안지 않고 그렇게 선 채로 입을 열었다.

“유리야.”

“응?”

유리도 나를 안은 팔을 풀지 않고 말했다. 내 심장 뛰는 게 당연히 느껴지겠지. 유리도 내가 뭔가 중요하게 할 말이 있음을 눈치 챈 것 같았다.

“너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뭔데?”

“좀 어이없고 그럴 수도 있는데, 말도 안되거나 이상할 수도 있는데...”

“음 괜찮아 뭔데.”

“넌 안드로이드잖아? 난 사람이고.”

“으응...그렇지.”

유리의 몸이 아주 살짝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런데도 말야. 나 널 좋아해. 널 보면 심장이 뛰어 ”

유리는 아무 말이 없었다. 약간 불안해진 난 황급히 말을 이어갔다.

“너...너랑 계속 함께하고 싶어. 렌탈도 연장하고 싶어. 그치만...너는 어떻게 생각해? 니가 여태 했던 일들은 무슨 의미였어? 전에 했던 키스는 왜 한 거였어? 솔직하게 대답해줘. 시스템에서 시켰다던지 그렇게 얘기해도 좋아. 그러니까 솔직하게. 정말 솔직하게.”

어느새 내 손은 유리의 어깨위에서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이윽고 유리의 입이 열리기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있지 세운아 난...”

그 대답을 잘라먹은 건 아빠의 불같은 포효였다.

“한세운! 당장 들어와!”

나는 당황해 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현관문 밖으로 나와 씩씩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당황한 나는

“유리야. 어...잠깐...어.”

얼빠진 소리를 내며 유리를 쳐다봤다. 유리는 역시 놀란 표정이었지만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끄덕 하더니 내게 감았던 팔을 풀었다. 아빠가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그 뒤로 엄마가 현관문을 다시 열고 유리에게 ‘유리씨도 와요.’라며 손짓하는 모습이 보였다.

거실 소파 앞에 죄인처럼 꿇어앉은 난 소파에 앉아 판사처럼 내려다보는 아빠에게 물었다.

“왜 그러세요?”

“세운이 너.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는데 저 유리라는 애, 안드로이드냐?”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어떻게 아신 거지. 사실대로 답해야 하나? 아님 거짓말? 찰나의 시간 동안 수백 가지 시뮬레이션을 머릿속으로 돌리는 내 옆에 유리가 함께 꿇어앉았다.

“솔직하게 말해줘. 진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어보는 거니까. 엄마가 듣자하니까 요즘 연애 안드로이드같은 걸 쓰는 사람들이 있다며? 네 여자 친구가 안드로이드 아니냐며 사람들이 자꾸 의심하잖아. 우리 아들은 그런 거 아니지? 여자 친구 분 안드로이드 아니시죠?”

나는 마음 속으로 이마를 탁 쳤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레퍼토리는 불 보듯 뻔했다. 엄마가 또 못 참고 아들한테 예쁜 여자 친구가 생겼다며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 것이다. 그러다 내 외모를 아는 사람들이 ‘여자 친구’가 안드로이드임을 직감했을 거고 그걸 엄마한테 얘기했겠지. 내 얼굴이 짜증과 당황으로 뒤덮여 가는 그때 유리가 입을 열었다.

“엥 로봇이라뇨 저 사람 맞는데요? 저 사람이에요!”

유리는 부모님을 속여 볼 생각인 것 같았다. 아예 작정을 했는지 능청스런 웃음연기까지 덧붙였다. 고맙게도 아마 내 체면을 위한 거겠지. 거짓말에 능숙한 걸 보니 이런 상황 전용 매뉴얼이 있거나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걸지 몰랐다.

엄마는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난 또 설마설마했죠. 그래요 아닐 줄 알았어요. 아유 아까 분위기 좋든데 방해해갖고 미안해서 어쩌나.”

“목.”

엄마의 목소리를 찢고 아빠의 엄숙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계속해서 아빠는 말을 이었다.

“실례합니다만 목 뒤 한 번만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안드로이드는 거기에 일련번호가 적혀있다고 하더군요.”

나는 땀을 뻘뻘 흘리며 유리대신 대꾸했다.

“에이 아빠 무슨 다 큰 여자한테 목을 보쟤. 내 여자 친군데 내가 못 보여주지 그건.”

“넌 가만있고. 여보, 당신이 확인 좀 해줘.”

“어 내가요? 그래요...”

엄마는 방금까지만 해도 올랐던 기분이 다시 떨어져 내린 듯 보였다. 엄마의 심정은 십분 이해할 수 있었다. 목 뒤를 봐서 정말 혹시라도 번호가 나오게 되는 걸 두 눈으로 보고 싶지 않은 거겠지. 사랑하는 아들이 사람도 아닌 로봇이랑 연애중이란 거니까. 것도 돈 주고.

엄마는 아주 천천히 유리의 뒤로 걸어왔다. 그리곤 속삭였다.

“유리씨 미안해요. 조금만 이해해 주시겠어요?”

엄마는 유리의 검고 긴 머리칼을 양쪽으로 갈라 어깨 앞으로 보냈다. 당연히 그 사이에서 드라난 것은 ‘ANNE0000001’이란 번호. 번호가 보이자마자 엄마는 눈이 커지더니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듯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아, 그게 사실 어떻게 된 거냐면...”

나는 생각나지 않는 거짓 시나리오라도 쥐어 짜내보려 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아빠의 불호령이 내 변명을 가로막았다.

“한세운!”

너무 목소리가 커서 목소리로 만든 창에 찔리는 것 같았다. 난 당장에 입을 닫고 아빠를 올려다봤다. 아빠는 입을 다문 채 부들거리시더니 이윽고 엄마와 번갈이가며 날 책망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 이딴 식으로 키웠냐! 동네가 다 창피하다!”

“세운아 왜 그랬어 왜 그랬어. 엄마 너무 부끄러워 사람들한테 지금! 우리 아들 여자 친구 생겼다고 그렇게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특히 엄마는 거의 울먹이며 소리쳤다. 아빠가 손가락으로 유리를 가리켰다.

“저거 몇 개월 남았어. 당장 계약 해지해. 당장! 우리만 문제가 아냐. 남들이 알면 널 어떻게 볼 것 같아. 그냥 더 퍼지기 전에 여기서 조용히 없애고 묻어. 알겠어!”

나는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니 얼굴뿐이 아니라 온 몸이. 분노, 억울함, 미안함 모든 게 뒤섞여서 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당장이 너무 창피했다. 쪽팔렸다. 부끄러웠다. 지금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모르는 사람들이 보내던 경멸에도 움츠러들던 나의 가슴은 부모님의 손가락질에 곤죽이 되어가고 있었다. 도망치고 싶어. 다 지워버리고 싶어. 내가 유리를 렌탈한 것도. 그럴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못생긴 것도. 그래서 욕을 먹고 다닌다고 부모님께 차마 말할 수 없단 것도. 기쁨에 소문을 내고 다니던 엄마도. 그런 엄마를 창피하게 만들었딘 사실도. 이 모든 것의 원흉인 내 자신과 내 옆의 유리까지도 전부.

“그러니까 내가 조용히 있으랬잖아 그냥!”

나는 자리를 박차고 집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유리가 날 쫓아 달려나오는 것을 알고 있음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얼마나 뛰었을까 가슴이 뜨겁고 터질 것 같아 자리에서 멈춘 난 숨을 골랐다. 무심코 하늘을 보자 아까까지 떠 있던 보름달이 잿빛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안드로이드기에 체력에 제한이 없던 유리가 힘든 기색도 없이 달려와 내 뒤에 섰다.

“세운아.”

“...헉...헉...미안 유리야. 지금은 얘기하고 싶지가 않아.”

유리는 그대로 한참을 말 없이 서 있었다. 이 못난 모습을 유리가 보고 있는 게 싫어서 또다시 난 소리쳤다,

“유리야아...! 제발...눈치 없냐. 좀 가!”

어둡고 적막한 길 위에서 내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좀 가! 좀 가! 좀 가! 좀 가! ’

유리가 어떤 표정이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놀란 표정이었을까? 실망한 표정? 것도 아니면 날 걱정하는 표정이었을까? 유리가 뒤를 돌아 저벅저벅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모순적이게도 그 소리를 듣자 유리를 잡고 싶은 충동이 치밀었다. 지금 잡는다면 무슨 말을 할까. 미안하다고? 그 뒤는? 그래서 우린 계속 만나게 되는 걸까? 하지만 부모님은? 그리고 주변 사람들은? 지금 유리를 붙잡는다면, 그래서 유리를 계속 만난다면 이제 유리가 안드로이드인 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건 너무나 자명한데. 앞으로 모두가 내게 역겨운 시선을 보낸다면 난 그걸 견뎌낼 수 있을까? 무서워.

“천유리!”

나의 외침에 유리가 뒤돌아섰다.

“잠시만. 할 얘기가 있어.”

유리가 내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무슨 얘긴데?”

유리가 물었다. 나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쏟아냈다.

“나, 너 연장 안 할 거야. 그리고 이제 그만 만날 거야. 더 이상 너랑 다니면서 다른 사람들 손가락질 받는 거, 난 그게 너무 무서워. 찌질하지? 아마 네가 여태 만났던 모든 사람들 중에 제일 찌질할 거야. 못생겼고, 소심하고, 한심하고. 그래서 널 이렇게 이기적으로 밀어낼거야. 미안해.”

말을 끝마칠 때 쯤 내 볼에는 눈에서부터 흘러내린 액체가 자국을 남기고 있었다. 유리는 무표정하게 날 쳐다보다, 곧이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선 내 뺨을 사정없이 갈겼다. 인공 피부 밑이 금속이어서 그런 지 돌로 맞은 듯 자리가 얼얼했다.

“야, 한세운. 장난해? 하...이걸 어디서부터 얘기해야 돼. 진짜 어이가 없어서.”

유리는 땅을 봤다 하늘을 봤다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며 씩씩거렸다. 그러면서 잠시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곧 입을 열어 분노 섞인 열변을 토해내었다.

“아까 너 날 좋아한다고 했지? 그리고 내가 널 어떻게 생각 하냐고? 나도 너 좋아해. 미친 듯이. 나 있잖아, 이번에 깨어났을 때 전과는 다르단 걸 느꼈어. 그래서 정비소에도 갔다 왔잖아. 그런데 정비소에서 날더러 뭐라는 줄 알아? 아무래도 자아가 생긴 것 같대.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그렇게 밖에 설명할 수가 없대. 내 속의 연산장치와는 별개로 내가 별도의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됐다는 거야. 그래서 난 정말 너무너무 기뻤어. 사실 그 전부터 널 보면 자꾸 회로가 타들어가듯이 아팠는데 그러면서도 너무 행복했거든. 그게 좋아한단 감정이고 그게 실재한단 걸 확인받는 순간이었으니까 당연히 너무 기뻤지. 그래서 돌아온 날 네게 이 이야기와 내 마음을 고백하려고 했어. 그런데 니가 그날따라 성질을 부리네? 그래서 심통이 났어. 절대 내가 먼저 고백하지 말아야지 하고. 어차피 네가 날 좋아한다는 거 알고 있었으니까. 설마 내가 연애 안드로이드인데 심박수 측정도 못 할 거란 생각을 하고 있던 건 아니겠지? 근데 넌 스스로 마음을 깨닫지 못한 모양이더라? 그래서 키스했지. 내 마음도 은근슬쩍 전할 겸.”

속사포처럼 쏟아낸 유리의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내 모든 의문을 풀어주는 동시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도 실려왔다.

“자아가... 생겼다구?”

“그래. 내 스스로 생각하고 느낀다고.”

나는 한참을 가만히 서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자아가... 생겼는데 왜 날 좋아해? 나같이 한심한 사람을? 못생기고, 소심하고, 괜히 너한테 짜증만 내고, 남들 눈이 무서워서 좋아하는 여자조차 밀어내려고 하는 사람을.”

“그래. 나도 몰라 왜 널 좋아하는 지. 안드로이드인 나도 알아. 너 엄청 한심해. 착하긴 하지만 소심하고, 또 어리숙하면서 미숙하지. 나도 어떤 외모가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알아. 솔직히 객관적으로 넌 잘생기지 않았어. 그리고 그것 때문에 사람들이 네게 손가락질 하는 것도 알아. 그럼 어쩌라고, 그냥 좋다니까. 이유는 몰라. 니가 날 좋아해줘서 인지, 아님 너와 보낸 시간이 길어서 인지, 널 보면서 지켜주고 싶단 생각이 들어서 인지, 것도 아님 처음부터 정해진 운명이었던 건지. 좋아하는 감정에 논리가 필요해? 어느 순간부터 널 보면 함께 있고 싶고 그래. 난 태생부터 사람이 아닌 것이라 네 옆에 있으면 나도 욕을 먹어. 나도 그게 너무 힘들어. 그런데 그걸 견뎌내고도 남을 만큼 널 좋아해. 너도 그러길 바랬는데. 이 멍청아.”

유리가 하는 모든 말은 자꾸만 몰랐던 유리를 알게 함과 동시에 끊임없는 충격을 가져다줬다. 유리도 같은 이유로 상처받고 있었구나. 그럼에도 날 좋아하는 마음으로 이겨내 왔던 거고. 그런데 난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 유리가 너무 좋고, 육체의 차이를 넘어서 사랑하지만 난 왜 유리처럼 시선을 이겨낼 수가 없지. 왜 좋아하는 것조차 맘대로 할 수가 없을까. 한심한 난 유리를 붙잡을 자격이 없다.

“유리야.”

“왜.”

유리가 대답과 동시에 눈물을 떨궜다. 난 흠칫 놀랐지만 이내 말을 이었다.

“자아가 생겼다면, 더더욱 안돼. 내가 널 붙잡아 두기가 미안해. 너도 나처럼 상처받는다는데 내가 어떻게 널 붙잡아둬. 나랑 있으면 계속 욕을 먹을 거고, 심지어 난 그걸 같이 이겨낼 자신조차 없는데. 렌탈은 어떻게든 연장해 볼 테니까 이제 마음대로 세상을 돌아다녀봐. 나보다 좋은 사람도 찾고. 그 사람한테로 가.”

“왜? 너도 날 좋아한다면서 왜 그런 말을 해.”

“이젠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아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아.”

“멍청이.”

그때 갑자기 유리가 내게로 한 발짝 다가왔다. 당황한 내가 유리의 눈을 피하는데, 유리는 아랑곳 않고 고개를 올려 내 입에 입술을 맞췄다. 아찔했다. 볼과 귀에 피가 모이는 느낌이 들었다. 심장이 쿵쿵거렸다. 아니 너무 쿵쿵거려서 몸통 전체가 진동하는 것 같았다.

“내가 심박수 체크할 수 있다고 했지? 겨우 이거가지고 이렇게 심장이 난리가 나는데 날 안 붙잡겠다고?”

난 얼굴이 벌개져서 유리를 내려다봤다. 유리는 말을 이었다.

“렌탈은 걱정 안 해도 돼. 정비소에 갔을 때 내 코드를 복사해주는 대가로 자유가 됐거든. 그 코드로 자아를 가진 프리미엄 모델을 판매할 거라더라. 아무튼 난 그러니까 계속 보관소에서 잠을 잘 거야. 네 꿈도 꾸면서. 1년 동안 찾으러 오지 않으면 내가 포기하고 떠날게. 확신이 있으니까 이렇게 말하는 거야. 네가 다 이겨내고 나한테 올 수 있을 거란 확신.”

유리는 마지막으로 내 뺨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돌아섰다. 그리곤 골목 너머 어둠이 그녀의 모습을 삼켜버릴 때까지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녀가 떠나고 3달이 지났다. 모든 건 제자리로 돌아온 듯 고요했다. 엄마도 아빠도 더 이상 그때의 일을 꺼내지 않으셨다. 유리가 있을 때보다 확실히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일은 적어졌다. 의심의 눈초리를 받지 않아도 되니 이제는 못생겼단 놀림만 참아내면 됐다. 주변에서 여자 친구에 대해 물어오면 그냥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졌다며 얼버무리곤 했다.

연말이 되니 거리에 사람들이 넘쳐났다. 커플들이 손이 잡고 조명으로 반짝이는 성탄절 거리를 걸어 다녔다. 이젠 할머니가 된 머라이어 캐리의 명곡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가 흘러나오며 성탄절을 가득 메웠다. 다른 건 다 필요 없고 오직 너만을 원한다는 저 가사가 얼마나 달콤한지 수십 년이 된 노래임에도 여전히 막강한 연말 음원파워를 과시했다. 나도 그렇게 다른 거 신경 안 쓰고 유리와 함께하길 바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나가는 커플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와 크리스마스라고 그린치가 돌아 다니네 흐흐.”

그래 나도 못생긴 거 안다. 근데 뭐 어쩌라고. 이젠 별 생각도 안 든다. 유리와 있는 동안 욕을 수십 배로 먹어서 그런 가 내성이 좀 생긴 모양이다. 문득 유리와 함께 지내던 나날이 생각났다. 유리와 있는 시간이 너무 행복해서 저딴 얘기들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지. 그때는 안드로이드와 인간이란 육체의 차이에 전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서로 함께하는 데만 집중했는데. 문득 유리가 보고 싶어졌다. 하지만 여전히 내 마음은 갈팡질팡했다. 다시 유리를 찾아가도 내가 세간의 비난을 다 이겨낼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다시 현실의 나약한 내가 내려다보였다.

꿀꿀하게 이러고 있는 거 보단 연말 분위기라도 즐겨야겠다 생각하며 나는 크리스마스 용품점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가 목전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엄청나게 몰려있었고, 식당도 아닌데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뭐 딱히 하는 것도 없는데 기다렸다 사지 뭐. 나는 줄의 맨 끝에 서서 이어폰을 꽂으려 했다. 그런데 이어폰을 가져가려던 찰나, 앞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야 저거 봐 저거.”

“헐 완전 빼박인데.”

“어우 크리스마스를 굳이 로봇이랑 보내겠다고 기어 나왔네.”

“숨길 생각도 없나봐. 목에 일련번호 그대로 보이는데.”

“그니까. 나 같으면 목도리라도 해줬을 걸.”

“오~뭐야 너도 안드로이드 남친 한 명 만들어줘?”

“우욱 야, 개소리 하지 마라?”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앞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웨이팅 줄의 중간쯤에 한 커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여자의 외모는 내가 동질감을 느낄 정도였는데, 남자는 연예인 마냥 키도 크고 심히 잘생긴 게 눈에 띄었다. 앞에서 쑥덕대던 대로 안드로이드였다. 여자와 손을 잡고 있는 그 남성 안드로이드의 목에 적인 일련번호 ‘TOM0000683’이 이를 증명했다. 저 정도 거리면 이 사람들 떠드는 게 다 들렸을 텐데 지금 많이 당황했을까. 여자는 키가 작아서, 원래 움츠러 들어 있는 건지, 혹은 아무렇지 않게 그냥 서 있는 건지 분간이 잘 가지 않았다. 뭐가 됐든 딱하다고 생각했다. 딱 유리와 나 같아 보여서. 그녀가 어떤 기분일지 정말 뼈저리게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나서서 따진다거나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욕먹을 때도 아무 말 못하고 있었는데 남의 일에 나설 만큼 난 용기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차피 나서봤자 ‘못생긴 애가 나댄다’ 내지는 ‘얘도 안드로이드 쓰는 거 아니냐’같은 조롱이나 들을 게 뻔하고. 그래서 원래는 아무것도 못 본 척 그냥 살 거만 사서 가려고 했다.

그런데 약 5분 쯤 지났을 무렵의 나는 속에서 피가 끓어오르는 걸 느끼고 있었다. 그만 아까의 여자가 가게에 들어가더니 목도리를 사서 나와 남자 안드로이드 목에 걸쳐주는 걸 보고 만 것이다. 그 순간 아까 엿들은 대화가 머릿속을 관통했고, 못 본 척 했던, 안드로이드의 손을 잡은 그녀의 손에 진동이 일던 것이 떠오르고 말았다. 나는 도저히 참지 못했다.

“저기요.”

깔깔 거리며 저들끼리 떠들던 앞 사람들이 뒤를 돌아봤다. 짧은 순간에 눈동자를 위 아래로 굴리며 내 견적을 내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아까 안드로이드 얘기요. 솔직히 뒤에서 듣는데 불쾌했어요.”

“네?”

“남이사 안드로이드랑 놀러 왔던 뭘 하던 그쪽들이 무슨 상관이냐구요. 왜 함부로 욕하는데요. 연애 안드로이드 좀 쓰면 그쪽들한테 뭔 큰일이라도 나요?”

“갑자기 왜 시비세요.”

무리의 대표로 보이는 남자가 나를 노려다보며 쏘아붙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상당히 심기가 불편한 모양이었다.

“저 분한테 사과하세요. 저 안드로이드분 한테도요.”

나는 허둥지둥 가게를 떠나려던 여자와 안드로이드를 가리켰다.

“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갑자기 뭔 소리야 미친놈이. 그냥 조용히 계세요. 에? 본인 와꾸를 보아하니 그쪽도 안드로이드 쓰셔서 찔리나 본데.”

무리의 나머지 인원이 비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괜찮아요, 괜찮아요! 그만하세요!”

안드로이드와 함께 있던 여자가 달려와 손사래를 치며 남자와 나를 말렸다. 남자도 더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곧 고개를 돌렸다. 여자는 고맙다며 조그맣게 말했지만 나는 거기에 오히려 짜증이 치밀었다.

“고마우면요.”

“네?”

“당당하게 지내세요. 그쪽 안드로이드랑. 왜 욕먹는데 가만있어요.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다른 사람들 때문에 억지로 감추지 마요. 저 목도리 같은 것도 그만두고.”

퉁명스레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데 한편 그런 생각도 들었다. 내가 이 사람한테 이 말을 할 자격이 있나? 스스로의 말이 가슴에 콕콕 박혀 들어왔다.

“헤헤 고맙습니다. 부럽네요. 그쪽처럼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좋아할 수 있다는 게.”

여자는 불쾌했을 만한 내 얘기에도 헤실헤실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곤 저 멀리로 걸어갔다. 멀어져가는 그들을 보고 있으니 여자의 말이 자꾸만 맴돌았다. 난 전혀 그러지 못했는데. 주제넘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조금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사거리로 접어들기 바로 전쯤, 여자가 안드로이드의 목에서 목도리를 빼는 것이 보였다. 목도리를 빼 주는 여자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안드로이드는 그런 여자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둘의 모습이 너무 예뻤다. 난 갑자기 눈물이 솟았다. 흐려지는 시야 너머로 여자와 안드로이드가 횡단보도를 건너 사라지는 게 보였다.

그래 이제 알겠다. 원래부터 답을 알고 있었구나. 나는 서둘러 유리의 보관소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니 발걸음이 아니었다. 가슴이 터지도록 달려갔다.

 

보관소는 어둡고 수십 개의 모듈이 기둥처럼 서 있었다, 각각의 모듈엔 일련번호가 주황색 전광판으로 붙어 있었고, 나는 ‘ANNE0000001’을 찾아 중심부로 들어갔다. 그녀의 모듈은 문이 닫혀 있었고, 옆에 사용자 손바닥 지문을 인식하도록 패드가 부착돼 있었다. 패드 위엔 자그마한 모니터가 붙어 있었는데 그 안에서 타이머가 돌아가고 있었다.

‘자동 해제까지 273일’

나는 손바닥을 부들부들 떨며 패드에 갖다 대었다. 패드는 띠리링 소리를 내며 인증 완료를 알렸다. 전광판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연기가 빠져나오며 모듈의 문이 열렸다. 그 속에는 유리가 눈을 감은 채 서 있었다. 헤어질 때와 똑같이 하얀색 블라우스와 청바지를 입은 채로.

“유리야.”

유리가 감은 눈을 아주 천천히 떴다. 잠시 멍하니 있던 유리는 갑자기 모듈에서 뛰어나와 나를 와락 안았다.

“이건 꿈이 아니구나 그렇지?”

유리가 내 가슴에 얼굴을 부비며 말했다. 가슴팍이 축축해지는 게 느껴졌다. 가슴팍의 습기가 올라와 나의 눈에도 맺혔다.

“미안해 이제야 알았어. 너무 늦게 왔지?”

“당연하지 바보야.”

유리가 나를 쳐다봤다. 나는 고갤 숙여 유리에게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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