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기획 창원대문학상
제26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 당선 - 소중한 것과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것
  • 창원대신문
  • 승인 2022.05.02 08:55
  • 호수 685
  • 댓글 0

소중한 것과 더 이상 소중하지 않은 것

이예원(간호학과 3학년)

 

구름 색의 필름들이 머릿속에서 파노라마처럼 재생된다. 아마 꽤 어릴 적부터 나는 많은 순간을 책과 함께했다. 매 주말마다 엄마와 함께 도서관에 가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한 루틴 중 하나였고, 가족여행을 가거나 장시간 이동이 필요한 경우 차에서 읽을 책 몇 권을 꼭 챙기곤 했다.

 

어린 시절의 습관이 무색할 만큼, 머리가 커지면서 책과 자연스레 멀어지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입시’만을 위한 교육과정 범위 밖의 긴 글들을 읽는 것이 어려웠다. 글자가 눈에서 마구 튕겨 나가는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한 장 한 장이 풍기는 고유의 냄새와, 서점 문턱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코를 파고드는 특유의 향긋함은 반가웠다. 항상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며 꾸준히 스스로를 합리화한 결과 독서는 뒷전이 되고 말았다. 나에게 당장 급한 일을 처리해내고 그동안 갖지 못했던 휴식을 전부 취한 후에야 ‘한번 읽어볼까...?’하고 건드릴 만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독서는 어쩌면 내가 일상에서 놓치고 살아가던, 소중해야 하지만 내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던 것들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작년부터 책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다.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게 제자리를 찾은 것만 같았다. 독서는 바쁜 일상 속에서 본인이 얼마나 시간을 내어 투자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을 느꼈다. 김영하 작가는 백 명의 독자가 있다면 백 개의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그 백 개의 세계는 서로 완전히 다르다고 했다. 작가의 세계를 내 안에서 나만의 세계로 새롭게 구축해낸다는 것이 짜릿했다. 독서를 통해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게 되었다.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자연스레 과거와 현재의 인간관계를 되짚어보는 시간도 가지게 되었다.

 

여기저기 정을 퍼 주고 친해지고 싶어 관심을 표하는 것은 일종의 습관이자 내 성정이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같은 것을 보고 느끼며 ‘그때 행복했지.’하고 떠올릴 만한 추억을 쌓아 나가는 과정이 즐거웠다. 세상에 절대악은 없다고 믿었고, 누군가와의 충돌은 나와는 먼 얘기였다. 그러다 보니 내가 정을 떼어준 만큼 되돌려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나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나는 언제나 이만큼의 마음을 주었는데 정작 내가 어둠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에는 시선을 돌려버리는 사람, 혹은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절대 내게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 등등. 어떻게 보면 나는 둔하다기보단 오히려 예민한 쪽에 가까울 수 있겠다. 그래서 더더욱 사소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 입장에서만 생각하다 보니 무겁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과거의 추억을 정신없이 더듬거리다 생각지 못한 인물이 그 속에서 튀어나올 때면 모든 사고회로가 정지된다. 미처 재생하지 못한 추억의 필름은 애써 끄집어낸 것이 무색할 만큼 싹둑 잘려나간다. 추억은 추억에서 끝날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것을 감당하고 짊어지고 나가야 할 의무가 있었다. 내가 과거에 만들어낸 시간들에 대한 결과였다.

일방적인 관계라고 생각해 먼저 연락하는 것을 그만두었더니 자연스럽게 연이 끊겨버린 친구가 있다. 처음엔 그와의 관계가 희미 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너와 내가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걸 나누었는데? 너는 나에게 티끌만큼의 애정도 더 이상 없어? 이미 끝나버린 일을 곱씹는 것은 비생산적인 소모적 행위에 불과했다. 애써 부정하며 바삐 살아가는 와중에도, 친구들과 즐겁게 웃고 떠들며 즐거운 하루를 보냈음에도, 집으로 돌아오는 길목에는 은연중에 그 친구 생각이 났다. 나는 우리가 이 정도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너는 아니었구나. 그랬구나. 타인에 대한 기대와 실망의 반복이 야기하는 피할 수 없는 상처는 나도 모르게 누적되어 가고 있었다. 쌓이고 쌓여 언젠간 무너질 것이 뻔했다. 이제는 고개를 쳐들고 마주해야 했다. 그 이후로 마음을 고쳐먹기 시작했다.

 

상처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싫어, 타인에 대한 마음의 거리를 넓히고 다시 좁히기를 반복했다. 또 나를 감싼 수많은 관계가 흘러가고 정착해가는 시간을 바라보며 이것 하나만큼은 알았다. 모두 다른 환경 속에서 각기 다양한 색의 삶을 살아왔고 각자의 기준은 정해진 틀이 없다. 상대의 감정은 그 누구도 함부로 재단할 수 없다. 내가 그동안 오해했던 누군가는 어쩌면 나를 엄청나게 좋아하는데도 티가 안 났던 것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 먼저 연락을 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간의 간격을 따지며 서로에게 마음이 얼마나 적립되었나 확인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까. 누군가와의 관계가 의도치 않게 끊어질 경우 상대에 대한 기대가 크면 클수록 실망은 더 커지는 법이다. 칸트는 “만인에 대한 사교성을 지향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여 주는 사람을 만나라.”라고 이야기했다. 모든 사람과 친구가 되려고 감정낭비 하지 말라는 뜻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사소한 기대를 걸고, 또 좌절하기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것저것 재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만큼 애정을 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생각을 조금 바꾸니 기대하지 않았던, 예상치 못한 감사함과 설렘은 더 크게 다가왔다. 뜻밖의 감동을 받아 오랫동안 내 머릿속 한 구석을 차지하기도 하고, 나를 이렇게나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며 그 사람에게 더 큰 보답을 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구구절절 써 내린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론은 타인에 대한 기대를 이제는 크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여전히 나는 사람이 너무 좋다. 어쩔 수 없는 성정인가 보다. 여전히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고, 또 먼저 다가가기도 한다. 달라진 건, 그 관계가 진정 오래갈 인연이라면 내가 무슨 짓거리를 하든 내 근처에 은은하게 남아있겠지 싶다. 사람 간의 관계는 신기하다. 평생 볼 것 같다 가도 한순간에 멀어지기도 하고,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 생각하다가도 꾸준히 만남을 지속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목도할 때면 운명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나 생각하기도 한다. 나는 이제 사람 간의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려 노력한다. 내 사람들은 나와 함께 살아가지만 항상 함께하지는 않는다. 마음을 비우니 고요한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 예감이 좋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원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