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칼럼
우린 왜 힘들까
  • 남예은 기자
  • 승인 2021.09.27 08:00
  • 호수 676
  • 댓글 0

혹자는 지구의 멸망을 두려워하고, 또 다른 이들은 달라질 미래를 기대한 혼란의 2000년도에, 기자는 태어났다. 공교육의 현장에서 컴퓨터 수업을 들으며 컴퓨터와 함께 자라, 스마트폰의 엄청난 새로움에 즐거워하며 다채로운 10대 시절을 보냈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이리저리 적응하며 생존했다. 우리는 이 과정이 벅차지 않았고, 그냥 삶 그 자체였다.

혼란의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베이비”는 자라 어느덧 평범한 22살 학생이 됐다. 기성세대는 우리를 복 받은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이라 칭한다. 전쟁을 겪지도, 민주화 시대를 겪지도 않은, 아주 평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행운의 세대라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는 힘들다. 이 힘듦에는 구체적인 실체가 없는 경우가 많다. ‘전쟁, 독재, 빈곤’과 같은 생존에 직결된 문제는 아니다. 그렇기에 우리 세대의 형체 모를 고통은 가볍게 치부된다. “배부른 소리하고 있네” “나 때는 상상도 못 했어”라는 말은 관용구가 돼버렸다. 사회적으로 우리 세대는 나약하고 정신력이 부족한, 이기적인 아이들이 됐다.

우리의 힘듦의 주체를 알아차리기 위해선 사회적 안정에 대해 이해해볼 필요가 있다. 사회적으로 안정됐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빈 곳이 없다는 뜻이다. 즉, 모든 것이 안정될 정도로 차올랐고 더 이상의 더함이 필요 없는 사회가 됐다는 것이다. 인구 과밀의 시대가 도래했고, 매해 ‘10년 안에 살아질 직업 순위’를 보며 장래 희망 리스트에서 항목을 하나 둘 지워야 했다. 새로운 세대가 들어갈 공간은커녕 이미 들어간 사람들도 뱉어내는 사회가 됐다. 우리는 소속되지 못하는 것에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졌고, 그 두려움이 발현돼 불안과 우울을 호소하는 이들과 소속되지 못할 것을 인지하고 공동체가 아닌 자신에게 집중한 이들로 나뉘었다. “특별한” 시대에 태어나 “특이한” 세대로 불렸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애매한” 세대가 돼버렸다.

산업화, 도시화가 막바지로 접어들어 사회적 안정이 찾아오고, 핵가족이 드물지 않은 시대에 태어난 우리는 모두 처음 만난 사회에선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였다. 나 하나만 바라보는 부모, 조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이 이야기 속 주인공이라고 믿으며 자랐다. 하지만 관대하고 따뜻했던 사회에서 냉혹한 사회로 첫발을 디딘 순간, 자신이 사실 주연이 아니라 조연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서서히 품게 된다. 유치원(혹은 어린이집) 공동체에서 북적거리는 아이 중 한 명이 됐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 많은 아이 중 한 명이 됐다. 특별한 아이와 특별한 아이가 만나 평범한 아이들이 됐다. 우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은 평범하다”라는 사실을 배우기 위해 학교에 다녔다.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고, 그 사실이 매우 아프게 다가오는 이들도 있다. 자신이 평범한 존재임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픈 일이다. 하지만 이는 비단 우리 세대만 겪은 문제는 아닐 것이다. 모두 특별하다고 믿으며 자라다가 어느 순간 자신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 유독 힘들까?

사회가 포화상태에 진입해 발 딛는 것에도 경쟁이 생기는 시대에 우리는 자신의 존재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내가 여기 이 땅을 밟아도 되는 이유를 계속해서 어필해야 한다. 이런 무한 경쟁 사회에서 당연히 사람은 피폐해질 수밖에 없고 경쟁에서 도태된 이들은 사회적 실패자가 된다. 그래서 우리는 힘들다. 존재하기를 선택하지 않았는데, 그 존재 가치를 계속해서 증명하라니. 어이없는 요구다. 하지만 이 어이없는 사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조건을 내건다. 튀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한다. 자신의 존재는 증명하나 공동체에서 너무 튀는 이는 되지 않는 것. 평범한 사람이지만 남과 다른 존재 가치가 있어야 하는 사람. 사회가 원하는 우리 세대의 모습이다. 여기에 맞춰 살아가려니 그 형체 모를 힘듦이 찾아오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원인 모를 고통을 겪는 당신이 힘듦의 형체를 조금이나마 찾았으면 한다. 사회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실패자가 된 것은 아니다.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건 당연히 아픈 일이고, 평범 속에서 “튀지” 않으며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당신만 버거운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공감하는 모순이다. 그러니 부디 자책하지 않았으면 한다. 자신의 잘못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남 탓, 사회 탓. 조금 해도 된다. 우리, 나 먼저 챙긴 후에 남도 챙기자. 파이팅.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남예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