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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탈레반이 통탄의 승리를 거뒀다.
  • 남예은 기자
  • 승인 2021.09.01 08:00
  • 호수 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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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일), 대한민국에서는 기쁨의 광복절을 보내고 있던 그때, 아프가니스탄은 재난의 서막이 열렸다. 아프가니스탄 무장조직인 탈레반이 수도 카불의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이로써 20년 만에 재집권을 앞둔 상태이며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은 멸망의 운명을 맞이했다.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은 앞으로 어떤 길을 걷게 될까?

아프가니스탄의 무장조직, 탈레반

탈레반은 이슬람 수니파의 극단주의 무장단체이며 구성 인원 중 대부분은 파슈툰족이다. 파슈툰족은 부족의 전통 교리인 파슈툰왈리(pashtunwali)와 자체적으로 해석한 이슬람 율법을 사상적 기반으로 삼는다.

뜻밖에도 탈레반의 어원은 파슈토어로 ‘학생들’이라는 의미이며, 탈리브의 주격 복수 형태다. 이를 통해 탈레반의 출발점에는 학생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탈레반은 아프간 부족사회의 전통 마을에서 이슬람법에 따라 분쟁을 중재하던 이슬람 하위 성직자나 신학생들이었다. 초기에는 전통적 자치와 나름대로 탄탄한 사법 체계로 아프간에서 정통성 있는 정권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집권 후 탈레반은 타락의 길을 걷게 된다. 그들은 극단적인 보수적 이슬람 율법을 강제하며 언론을 탄압하고 대부분의 방송국을 폐쇄했다. 서방 문화를 전파하는 언론 활동을 엄금시키고 종교 자유를 억압했다. 이는 이슬람 원리주의를 믿으며 무력을 사용해 극단적인 신정 일치 종교 사회를 창조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었다. 이들의 극단적 행보는 주류 이슬람 세력에게도 받아들이기 힘든 수준이었다. 그 결과 탈레반은 주류 이슬람 세력에게 이단시 당하고 아랍 이슬람 국가에 외면당했다.

 

탈레반의 만행

2001년 3월 9일, 탈레반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렸다. 바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하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이교도 잔재 청산이라는 명분으로 자행됐는데, 국제 사회의 만류에도 강제로 진행해 전 세계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세계 강국인 미국을 공격한 9.11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인 알 카에다가 일으킨 테러 사건인데, 해당 무장 조직은 탈레반과 끈끈한 동지적 관계이다. 9.11 테러 사건은 미국행 여객기를 납치해 뉴욕의 중심 맨해튼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 D.C의 펜타곤을 공격해 9천 명 이상의 사상자를 낳았다. 사건 발생 후, 미국은 알 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의 범죄자 인도를 위해 당시 아프가니스탄을 집권하고 있던 탈레반에게 협조 요청을 했으나 이를 거절했고, 한 달 후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공습해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탈레반과 알 카에다의 동맹 관계의 중심에는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오사마 빈 라덴이 있었다. 오사마 빈 라덴은 아프리카 수단에서 활동하다 1996년 다시 아프간으로 건너가 탈레반과 협력해 정권을 장악했다. 당시 탈레반은 아프간으로 건너온 오사마 빈 라덴을 격렬히 환영하며 “우리 땅은 아프간인의 땅이 아니라 신의 땅이며, 우리의 성전은 아프간인의 성전이 아니라 모든 무슬림의 성전”이라고까지 말했다.

2007년 7월 19일, 탈레반의 만행은 우리나라 국민에게도 이뤄졌다. ‘샘물교회 선교단 피랍 사건’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사건이다. 이슬람교 지역에 복음을 전파하겠다는 목적으로 아프가니스탄에 입국했다가 탈레반에게 인질로 붙잡혔다. 안타깝게도 이 사건으로 인해 두 명이 사망했고, 나머지 인질들의 생환을 위해 당시 정부는 각고의 노력을 했다. 당시 무단으로 입국해 현지국가의 종교를 존중하지 않았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일기도 했다.

현대에 들어 사람들이 인식하는 탈레반은 끔찍한 처형과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학대이다. 타 종교에 대한 배척의식에서 비롯된 처형식은 잔인한 방식으로 이뤄져 사람들에게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여성에 대한 학대를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대표적인 여성 학대인 할례 의식으로 많은 어린 여성이 고통받고 있으며 수많은 여성이 강간당한 뒤 살해당하고 있다.

 

탈레반 정권에서의 여성

탈레반 조직에서 여성은 남성과 동등한 존재로 인식하지 않는다. 여성은 신체 부위를 노출한 상태로 외출할 수 없고, 남성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는 모르는 남성 의사에게 신체를 노출하며 진료를 받아 목숨을 살리느니 차라리 죽는 게 명예롭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탈레반 정권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끔찍한 한 사례가 있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 여성은 2010년 8월 9일 타임 주간지의 커버를 장식했다. 커버를 장식한 여성은 코가 잘린 모습으로 히잡을 쓰고 있다. 이 여성의 이름은 비비 아이샤(Bibi Aisha)로 탈레반이 자행하는 강제 결혼을 거부하다 사령관 명령으로 코와 귀가 절단됐다. 이 충격적인 사건은 외신에 보도돼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여성의 상황을 알리는 데 크게 공헌했다. 다행히 비비 아이샤는 미국으로 망명을 했으며 이후 수술을 통해 코를 되찾았다고 한다.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축출된 후 여성의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됐으나 이번 탈레반의 재집권으로 여성들은 과거로 돌아갈까 공포에 떨고 있다. 탈레반은 과거 집권 당시 이슬람 율법인 ‘샤리아’법에 따라 여성에게 행해진 각종 인권 탄압이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탈레반이 수도 카불을 장악한 이후 여성이 모델인 광고를 내리기 시작했고, 거리에 부르카(전신을 가리는 이슬람 전통 복장)를 입은 여성들의 수가 증가했다. 과거 탈레반이 아프간을 집권할 당시에는 여성은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을 시 외출이 허용되지 않았으며 경찰들이 거리에서 이를 단속했다. 부르카를 착용하지 않는 여성은 그 자리에서 채찍질을 당하는 등 여성의 인권은 전혀 고려하지 않는 일들이 빈번히 발생했다. 남성이 여성을 이유 없이 무작위로 폭행하는 사건은 비일비재했으며 여성을 강간 후 살해하는 일도 아프간에서는 그리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었다.

아프간 내에서 공포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탈레반은 여성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해당 선언을 한 당일(현지 시각으로 지난달 17일(화)) 아프가니스탄 북동부 타카르지방에서 젊은 여성 한 명이 총에 맞아 길에서 숨지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의 경위를 알아보니 이슬람 전통 복장인 부르카를 입지 않고 외출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이 현장에서 사살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로써 탈레반의 정권 장악으로 아프간의 여성 인권이 다시 퇴보하고 있음이 자명해졌다.

 

방심한 미국, 틈을 노린 탈레반

탈레반이 미국과의 20년 전쟁에서 승리하고 재집권을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미국과 아프가니스탄(탈레반)의 전쟁은 앞서 말했듯 9.11테러 후 10월부터 시작됐다. 이는 21세기 최초의, 미국 사상 최장기의 전쟁이다. 2001년 11월 13일 수도 카불이 미국의 지원을 받은 북부 동맹에 의해 함락됐다. 같은 해 12월 14일에 미국은 승리 선언에 이르고 이 시점에서 탈레반은 아프간 정권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후 2004년 아프가니스탄 총선에서 대통령을 선출하게 됐고, 국호도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공화국으로 변경했다.

2003년부터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에서 파병된 군인들과 주둔한 미군이 탈레반의 재집권을 막으며 군대를 지휘했다. 하지만 2001년 미군에 의해 해체된 탈레반을 무하마드 오마르가 재조직했고, 여러 게릴라전과 자살 테러, 변절자 처형 등을 수행하며 전쟁을 소모전으로 이끌었다.

2011년 5월,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 성공이 이뤄졌다. 그 결과 1년 후인 2012년 5월엔 NATO 지도자들이 군대 철수를 선언했고, 3년 후인 2014년엔 미국이 주요 작전이 곧 종료되며 아프간 내의 잔여 병력을 철수한다고 선언했다. 선언 후 몇 년간 아프가니스탄 주둔 외국군은 공식적인 철수 계획 없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 후 2021년 5월부터 미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하기 시작했다. 이에 아직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판세가 탈레반 쪽으로 넘어가게 됐다. 미국이 방심한 것이다. 미군이 철수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탈레반은 아프간의 주요 도시들을 장악하기 시작했고, 지난달 15일(일), 수도 카불을 점령했다. 결국 전쟁을 패배로 이끌어 간 결정적 요인은 미국의 방심에 기인한 섣부른 미군 철수였다.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에만 집중한 미국은 그것이 전쟁의 종료로 여겼으나 탈레반은 미국의 방심만을 노리고 있었다. 무하마드 오마르에 의해 재조직된 탈레반은 미군이 철수하자마자 마치 계획이라도 한 듯이 아프간 주요 도시를 장악했고, 결국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2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됐다.

 

20년 전쟁의 결말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의 결과는 총 사망자 23만 명, 난민 500만 명, 1천 1백조 원의 피해액이다. 21세기 최초의 전쟁이 이제야 끝맺음을 했음에도 그 끝은 허무할 뿐이다. 수많은 사상자와 난민을 만들었지만, 결과는 2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아프가니스탄 국민은 20년 전 악몽이 반복될까 두려움에 떨고 있다.

살기 위해 이륙하는 미군 군용기에 매달린 사람들, 카불에서 미처 탈출하지 못해 아이만이라도 살리기 위해 철조망 너머의 서방 군인에게 아이를 던지는 사람들, 간절한 마음으로 공항 활주로에 서 있는 사람들. 이것이 20년 전쟁의 결말이다. 아프간 국민은 다시 공포에 떨어야 하는 상황이 됐고, 특히 여성들은 더는 안전을 보장받지 못한다. 탈레반은 인권과 특히 여성 권리의 존중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선언문 발표 후 24시간이 채 지나지도 않아 탈레반의 경찰에 의해 여성이 무참히 살해됐다. 더하여 아프가니스탄의 지방 경찰청장이 두 눈이 가려지고 손이 묶인 채 기관총으로 처형당하는 동영상이 SNS에 업로드됐다. 이로써 개방적이고 포용적인 정부를 구성하겠다는 탈레반의 발표는 거짓이라는 것이 명백하게 증명됐다. 아프간은 테러 조직에 점령돼 2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됐으며 주변국들은 경계 태세를 이루고 있다. 앞으로 이들의 행보는 예상되지 않는다. 테러 조직에서 국가의 자격을 부여받아 반사회적인 행위를 함에 있어서 명분이라는 걸림돌이 작용해 국제 통제권 아래에 들어올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국민들을 처참히 죽이고 있다. 과연 탈레반은 앞으로 어떤 아프가니스탄을 만들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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