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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이 해소될 수 없는 물리적 소멸에 대해
  • 임현진 기자
  • 승인 2021.03.08 08:00
  • 호수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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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밖에서 내다본다면, 작은 것이 태어나 덜 작은 것으로 성장하고 또다시 작아져 결국은 소멸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인간이지 않을까? 또한 탄생에서 소멸까지도 짧다면 짧다고 정의할 수 있다. 인간은 우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러하듯 우리는 우주에 찍힌 점보다 작은 존재이기에 세상은 넓고 인간에게 쌓이는 시간은 방대하다. 인간은 물리적으로 작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탄생에서 소멸까지 짧다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우주의 입장일 뿐이다. 우리에게 적용되는 시간 속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수많은 사람과의 대화, 행동 등 이 모든 것들이 쌓아주는 흔적들이 있기에 결코 짧지만은 않게 느껴진다. 기자가 하고 싶은 말은 물리적으로 크기가 작은 우리의 시간은 길고, 긴 시간 동안 타인으로부터 쌓이는 흔적들은 방대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고 다시 잠에 들 때까지 그 하루 동안에도 누군가와의 왕래는 흔적이 되고 기억으로 자리 잡는다. 어떠한 기억을 마음 속에서 다시금 꺼내고 싶다면 그것은 추억이라 칭한다.

방대한 시간을 채워주는 타인에게는 여러 가지 감정을 느낀다.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세부적으로 따지면 너무나 많다. 그렇기에 이성 간의 사랑, 혈연 간의 사랑,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범주 속에서 세부적인 감정들을 공유하고 관계를 형성하여 우리의 시간을 채운다. 하지만 타인과 채우는 시간에는 단점이 있다. 관계는 영원할 수 없으며 인간의 수명 또한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극단적인 전개로는 사별이 있다. 단순히 관계를 청산하는 이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마음 속에 추억을 뭍어야 한다. 한가지 고려할 점은 부모와 같이 자신이 태어난 그 순간부터 함께한 사람이라면 추억 또한 방대하다는 것이다. 단순히 ‘방대하다’로 끝날 수 없는 이유는 두꺼워지는 추억 이면에는 그리움 또한 두꺼워지기 때문이다. 자신의 매분 매초를 채워준 존재가 앞으로 채워나갈 시간 속에 없다는 것은 해소될 수 없는 갈증과 같다.

육체적 소멸은 죽은 자에게는 마침표이지만 남겨진 자의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숨을 쉰다. 죽은 자가 남겨준 모든 순간은 사라지지 않기에 우리는 죽은 자를 평생 지닐 수 있으며 이것이 육체의 소멸을 성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한다. 가끔은 그리움에 빠져나오지 못해 미성숙한 감정에 엉킬 때도 있지만, 물리적 소멸이 자연의 섭리인 대신 인간에게는 추억을 회상하는 매개체로서 그리움이 주어진 것이다.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추억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인간만이 만들 수 있으며, 사별에서의 추억은 죽은 자가 남겨준 선물이다. 추억은 그리움을 남기고, 우리는 그리움이라는 소중한 산물을 해소하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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