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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고 작은 소중함
  • 창원대신문
  • 승인 2020.11.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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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인구는 크게 늘지도 않았고, 오히려 상점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데 어째서 가는 곳마다 웨이팅이 줄지어 있는 걸까. 코로나 시대에도 길게 이어진 줄은 여전하다. ‘조용’하고 ‘아늑’함을 내건 어느 공간을 가도 그 형용사에 부합한 곳은 전혀 없고, ‘풍경 맛집’이라 불리는 곳은 카메라를 든 사람들만 가득하다. 정말 나만 알고 싶었던 곳은, 소위 인생샷이라 불리는 ‘겉’들을 전시하는 매체에 의해 너도, 나도 아는 곳이 됐다.

비포장도로를 거칠게 내달려야만 갈 수 있었던 곳에도 사람들의 줄은 끊이질 않는다. 끽해야 새소리나 들렸던 곳에도 셔터 소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들어가선 안 될 금기의 공간은 판도라의 상자마냥 호기심을 자극해, 기어이 깃발을 꽂으며 사람들의 정복 활동을 알리는 전광판이 됐다. 손가락만 몇 번 움직이면,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프라이빗한 포토스팟을 찾아낼 수도 있다. 뭐, 예쁜 사진이나 하나 찍었으면 됐지 다시 안 갈 건데 사람이야 많든 말든. 그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면 어떻게 사나. 우리는 이런 쿨한 생각들로 점철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편승하지 못하는 게 도태되는 건 자연스러운 순리라는 건 잘 알지만 나는 여전히 이런 편리함에 거부감을 느낀다. 한때 나의 안식처였던 비 오는 풍경과 잘 어울리던 찻집도, 그 시절 특유의 소스 맛이 일품이던 돈가스 가게도, 신기한 물건들로 가득해 마치 하울의 집 같았던 상점도, 내가 훨씬 더 아이였을 때 거쳐 간 많은 집들도. 이따금씩 사무치는 그리움에 되돌아가면, 그 무엇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다.

나는 쿨하지 못하고, 힙하지 못하다. 지나간 것들을 곱씹고, 때론 미치게 싫어했던 곳에도 향수를 느끼며 발걸음을 돌리고야 마는 찌질한 인간이다. 태어나 잠시 거쳐간 아날로그 세상이 언제나 돌아올 거라 믿는 어리석은 인간이다. 내게 소중한 것들은 이미 너무 예전의 것이 됐고, 우리가 향하는 방향은 정반대가 돼버렸다. 너는 계속 뒤로 되감아지고, 나는 속절없이 계속 앞으로 감아진다. ‘왜 여전히 지갑과 현금을 들고 다니냐’는 질문에도, ‘왜 구닥다리 시디플레이어 따위를 사냐’는 구박 아닌 구박을 들었을 때도 답은 늘 똑같았다. 편리해질수록, 소중한 게 줄어들어서.

그래서 나는 더욱 더 불편하게, 더디게 살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더 크게 다가올, 낡고 작은 소중함을 위해서 말이다.              

 이은주/인문대·철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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