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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돌보는 방법
  • 이다원 수습기자
  • 승인 2020.11.0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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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생존은 어렵지 않다. 음식을 섭취하고, 적당히 잠자리에 들면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핸드폰 없으면 못 살아!”라는 말은 거짓이다. 없어져도 숨을 쉬고 ‘사는데’는 지장이 없다. 정신은 조금 힘들지라도 말이다. 죽는 게 나을 법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학교에 가기 싫을 만큼 부끄러운 일을 저질러도 내일의 해는 뜬다. 생존에 꼭 필요한 의식주가 확보되고 3대욕구를 충족한다면 당장은 죽지 않는다. 작정하지 않는 이상, 대한민국은 당신의 생존을 돕는다. 생명 연장에 그치겠지만 말이다. 숨만 쉬며 근근이 먹고 사는 것을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 기자는 아니라고 본다. 잘 다듬어진, 활기가 도는 삶을 만들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나를 돌봐야 한다.

‘돌본다’는 생존의 다음 단계다. 국어사전에 따르면 돌본다는 것은 정성을 다해 보호하고 살핀다는 뜻이다. 다마고치를 키워본 적 있는가? 어릴 때 유행하던 장난감이다. 때에 맞춰 밥을 주고 키워야 한다. 여간 귀찮은 일이지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자신을 돌보는 것도 비슷하다. 힘들고 귀찮을지도 모른다. 다마고치는 양도할 수 있지만 난 나밖에 없다. 리셋도 없다. 평생 나를 어떻게 돌보아야 할까. 개인은 육체와 정신으로 구성된다. 하나에만 집중하면 안 된다. 하나가 망가지면 나머지도 무사할 수 없다. 

육체를 돌보는 법은 간단하다. 운동이다. 덧붙일 말도 없다. 모두 알고 있지만 잘되지 않는다. 하지 않아도 사는 데 문제는 없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없어져 버린 건강을 되찾으려면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미리미리 틈틈이 운동 하기를 권한다.

어려운 것은 ‘정신관리’다. 육체는 금방 자극을 받고 꾸준히 반복하면 알아서 잘 큰다. 정신은 다르다. 육체의 변화는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지만, 정신은 아무도 모르게, 어쩌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빠르게 썩는다. 무너진 모래성을 쌓는 건 힘들어도 가능하지만, 모래가 다 날아가 버리면 모래성은 고사하고 두꺼비집도 만들 수 없다. 정해진 설명서도 없다. 변수뿐이다. 나도 종잡을 수 없는 감정을 누가, 무슨 수로 돌보겠는가. 직접 매뉴얼을 써나가야한다. 조언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아무도 대신 돌볼 수도 없다. 각자의 몫이다. 

돌봄 방식은 전부 달라서 정답이 없다. 도덕과 의식주라는 마지노선은 존재하겠지만 그 속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나를 키워야 한다. 설명서를 하나씩 채워 넣고, 변수에 대비해야 한다. 2020년에 사는 우리 모두가 생존이 아닌 풍성하고 알찬 삶을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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