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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언] 적당한 사회적 거리 두기
  • 강예진 기자
  • 승인 2020.05.18 08:00
  • 호수 657
  • 댓글 3

코로나 19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이 달라졌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학생들은 학교에 나가지 못하게 되었고 사적인 모임도 쉽게 가질 수 없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의 볼멘소리를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필요 없는 모임을 하지 않아서 감정소비가 없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져서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지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질 시간이 타인들에게 둘러싸이는 바람에 없다는 것은 꽤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에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가지는 의미는 사뭇 다르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우리 사회에서 사적인 모임은 ‘이왕이면 친해져야 좋지’라는 듣기 좋은 명목으로 포장되어 개인들에게 자주 요구됐다. 일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축하 차원의 의미에서 회식, 일이 생각만큼 잘 풀리지 않으면 위로 차원의 의미에서 회식을 주최한다. 즉, 명분이 어떻든 한국 사회에서 사적인 모임은 피할 수 없는 사회생활 중 하나이다.

 

 기자도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 많은 활동을 하며 많은 타인을 만났다. 그 타인 중에서는 나와 성향이 맞는 사람도 있었고, 맞지 않는 사람도 당연히 존재했다. 그래서 사적인 모임에 초대 받으면 혼자 고민을 하곤 했다. 하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 불편한 자리는 싫었으나 만약 거기서 머릿수라도 채우지 못하면 모임에서 튀는 사람으로 낙인찍힐까 봐 어쩔 수 없이 모임에 참석했다. 모르는 타인들에게 어떤 이유로든 뒷말을 듣기가 두려웠다. 하지만 만나는 사람들의 수와 범위가 넓어질수록 스트레스는 점점 불어났다. 어떤 모임은 모이기만 하면 회식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 보이는 불합리한 현상을 참지 못할 때쯤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다. 그때 친구는 기자에게 “왜 모든 사람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거야? 그 사람들은 네 인생에서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고 그 사람들도 너를 똑같이 생각할 거야.”라고 조언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마음에 얹혀있던 돌이 순식간에 가루가 되는 기분이었다. 

 

 과거의 기자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내면 깊은 곳에서는 완벽한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커왔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 욕망이 자신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 친구의 조언으로 겨우 벗어날 수 있었다. 그래서 그 뒤로는 같이 있을 때 행복한 사람들을 위주로 많은 시간을 보냈고 불편한 자리에서는 당당히 내 소중한 시간을 투자하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밝혔다. 즉, 타인들 속에서 적당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시행한 것이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니 인간관계가 훨씬 쉬워지고 단순해졌다. 쓸모없는 감정 낭비도 일어나지 않았고 소중한 이들에게 투자할 시간도 많아졌다. 삶이 질적으로 향상되는 느낌을 받았고 행복한 기분도 그 전보다 훨씬 자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기자는 적당한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살아갈 예정이다. 본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하고 그 행복을 위해선 적당한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피한 것임을 늦게라도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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