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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탐방] 무고한 사형수의 이야기 <그린 마일>
  • 모준 수습기자
  • 승인 2019.10.21 08:00
  • 호수 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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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이념이 다르다며 수많은 민간인을 학살한 아프간 내전, 평범한 시민들을 반국가주의자라고 프레임을 씌워 폭력을 행사했던 5.18 운동 이 둘의 공통점은 무고한 사람들이 희생당했다는 것이다. 기자는 이런 무고한 희생의 사례들을 보며 생각난 <그린 마일>이라는 영화를 알려주고 싶다.

<그린 마일>의 줄거리는 단순하다. 거구의 흑인 ‘존 커피’가 소녀살해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고 사형수 전용 교도소로 이송돼 온다. 교도관 ‘폴 아지컴’은 덩치만 컸지 순박하고, 겁 많은 이 흑인이 ‘과연 살인범일까?’라는 의문을 가진다.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사형수 감방. 존 커피는 이 어두움의 공간을 기적이 일어나는 빛의 공간으로 전이시킨다.

폴이 가지고 있었던 만성 요도염을 고쳐주고, 교도소장 아내의 뇌종양을 제거해주는 치료술을 보여주는가 하면 악질 교도관을 벌하는 역할도 맡는다. 거기에다 죽은 쥐를 되살려내는 기적까지 만들어낸다. 그러나, 기적을 행하고 신을 대리했던 존 커피도 자신에게 씌워진 살인 혐의가 초래한 사형선고를 뒤엎지는 못하고, 전기의자에 앉아 죽음을 맞는다.

인간의 본질은 ‘육체인가? 영혼인가?’의 다소 원초적인 질문은 고대로부터 이어져 왔다. 대러본 감독은 이에 답한다. “육체를 죽이는 행위보다 더 가혹한 것은 영혼을 죽이는 것이다”라고. 그러기에 존 커피가 사형선고를 받은 이유가 흑인에 대한 백인사회의 편견에 있건, 자기의사를 정확히 표현 못 한 존 커피의 무지에 있건 그것은 이미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선량하게 살아온 한 인간에게 살인 혐의라는 무서운 의심이 덧씌워진 순간, 이미 그의 영혼은 파괴되는 것. ‘파괴된 영혼을 가진 인간에게 육체적 구원이란 무의미한 것이다’라고 감독은 우리에게 속삭이고 있다. 영화가 담고 있는 메시지의 효과적 전달에는 마이클 클라크 덩컨의 연기가 한몫한다.

죽음을 앞두고 피할 수 없는 인간적 공포와 함께 세상사 앞에서 처연한 신의 평온함을 동시에 연기해낸 마이클. 그가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에 지명된 것은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영화 도중 세 번이나 강조되는 존 커피의 대사 “제 이름은 존 커피입니다. 마시는 커피랑 철자만 다르답니다”

그렇다. 존 커피의 영문 이니셜 머리글은 ‘JC’다. 이는 예수(Jesus Christ)의 이니셜 ‘JC’와 꼭 같다. 자기희생을 외치는 사람은 많으나, 진정 아픔에 대해 회피하려는 사람이 많은 지금. 이런 불행한 시대에 존 커피는 우리의 진정한 구원자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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