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문화탐방
[문화탐방] 가장 솔직한 거짓말, <최악의 하루>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9.10.07 08:00
  • 호수 649
  • 댓글 0

뜨겁고, 습한 여름이 지나가고, 황금빛으로 물들 가을을 기다리는 요즘. 환절기 감기에, 비염에… 누군가에겐 괴로운 계절일 수도 있지만, 기자에게만큼은 어쩐지 낭만이 넘치는 시기다. 되돌아보니 아쉬운 여름을 보내며, 이 시기에 떠오르는 늦여름 밤 같은 누군가의 하루를 이야기하려 한다.

그 사람은 바로 은희. 배우지망생인 그녀는 서촌에서 길을 헤매는 일본인 소설가 료헤이와 우연히 마주친다. 그녀는 친절하게 출판기념회 장소를 찾아주며, 고즈넉한 카페에 들어가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도 나눈다. 그러다 한 문자로 인해, 그와의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남산으로 발을 옮긴다. 그녀를 이끈 것은 다름 아닌 그의 애인, 현오. 아침드라마에 출연 중인 그는 누가 자기를 알아볼까 봐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중무장을 했다. 현오 때문에 짜증이 치민 은희는 자리를 박찬다. 설상가상 전 남자친구이자 유부남인 운철이 그녀가 SNS에 올린 사진을 보고 남산으로 찾아오기에 이른다. 결국 셋은 한자리에 모이게 되고, 은희는 과거의 말과 행동에 발목을 잡히며, 제 꾀에 넘어가기도 했다.

엉망인 만남으로 최악의 하루를 보낸 은희. 그날 밤, 그녀 못지 않게 지친 하루를 보낸 료헤이와 은희는 다시 ‘우연히’ 마주친다. 둘은 남산을 걷고, 또 걷는다. 둘은 한국어도 일본어도 아닌 제 3언어인 영어로 더듬더듬 대화해나간다. 료헤이는 오랜만에 해피엔딩 소설을 떠올린다. 거짓을 쓰는 게 직업인 료헤이와, 역할이라는 거짓말을 쓰는 은희는 그렇게 따로 또 같이 각자의 하루를 마무리한다.

기자는 온통 거짓말뿐인 은희를 거짓말쟁이라 부를 수 없었다. “진짜가 무엇일까요. 사실 다 솔직했는걸요”라는 그녀의 말처럼, 그게 거짓말인가. 다 달랐을 뿐, 결국 다 은희가 아닌가? 우리도 누구를 만나는지,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다른 가면을 써가며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기자는 우리와 닮은 은희를 마냥 미워할 수가 없었다.

여름은 끝나지만, 은희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새로운 계절을 맞을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 왠지 모르게 생기는 측은함과 애정을 담아, 기자도 영화 마지막 대사로 하루를 마무리하려 한다.

“지금이랑 계절이 달라요. 이 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예요. 저 길에 눈이 내리고, 한 여자가 걸어옵니다. 무표정하게 내리는 눈 사이를 걸어오다가 뒤를 돌아봐요. 어두워진 저 산책로 너머로. 하지만, 안심하세요. 이 이야기는 해피엔딩이랍니다. 이 주인공은 행복해질 거예요.”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은주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