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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 이야기 찾기] 작전 명 174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9.04.15 08:00
  • 호수 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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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작전이다. 1950년 UN군이 인천에 상륙하여 6.25전생의 전세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은 영화로도 만들어질 만큼 세기적인 작전이다. 당시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확률은 1/5000의 확률이라 예상했다. 이렇게 불가능해 보이는 수치에도 불과하고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한 것에는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작전이 숨어있었다. 바로 인천상륙작전의 양동 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

장사상륙작전은 인천상륙작전 직전에 실시 된 상륙작전이다. 작전명 174. 대한민국 국군의 학도병으로 구성된 772명이 문산호를 타고 장사에 상륙하여 현재의 7번 국도를 봉쇄하고 조선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한 작전이다. 하지만 이 작전에 참여한 부대원들의 나이는 10대에 불과했다. 작전을 수행할 현역 군인이 없었던 한국은 이 작전을 위해 학도병들을 모았고 포항에 있는 학생들은 무조건 집합했다는 생존자의 증언도 있다. 이렇게 모은 772명의 학도병들은 2주 동안의 군사 훈련 후 문산호를 타고 장사리로 출발했다. 하지만 태풍으로 인해 기상조건이 최악이었고 결국 문산호는 좌초됐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 살아남은 부대원들은 육지로 상륙하게 된다. 학도병들은 인민군과 전투를 벌이고 며칠 간 인민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문산호가 좌초됐기 때문에 그들은 장사리에 남겨졌다. 시간이 흘러 모두가 포기를 했을 때 구출 작전이 시작됐다. 하지만 인민군의 공격으로 총 139명 전사 92명 부상 이들을 제외하면 거의 행방불명이다.

장사상륙작전은 적군 270명을 사상하고 포로 4명을 잡았으며 보급로들을 파괴했다. 또한 군이 2개 연대가 장사에 상륙했다고 오판할 정도로 주의를 분산시키는 성과를 거두었다. 즉, 장사상륙작전의 성공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에 기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공적을 쌓았음에도 불구하고 장사상륙작전은 기밀에 부쳐져 아무도 알지 못했다. 하지만 1997년 인근을 순찰하던 해병대에 의해 작전에 쓰인 문산호와 유해들이 발견돼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공식문서조차 없는 기밀 작전이라는 이유로 인천상륙작전에 가려진 학도병들은 이제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장사상륙작전의 성공은 부대원들의 피로 이룩한 것이다. 하지만 일반인은 물론 전문가들도 이 작전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한편 해당 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작 중이다.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장사상륙작전에 대해 알고 한국전쟁사에 영원히 남을 전투로 기억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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