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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그랬지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9.04.01 17:41
  • 호수 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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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개교 50주년을 맞은 우리대학. 이를 기념해 과거 창원대신문을 찾아보았다. 와룡부터 개교기념일까지, 우리 선배님들은 어떤 시대에 살고있었을까?(두둥탁-)

※본 기사는 옛 신문을 그대로 인용해, 당시의 오탈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1984年 11月 12日 제90호

교명, 창원대학으로 변경

지난 3월 1일 문교부에 신청한 5개학과 증성안에 대해 지난달 5일자로 기계공학과, 전기공학과, 전자계산학과의 3개 공과계통의 학과가 승인이 되어 오는 85학년도부터 1백 50여명의 증원 신입생을 모집하게 되었다.

또한 현재 <마산대학>의 교명이 <창원대학>으로 개명되었다. 이는 지난 3월 30일 학내 교명심의위원회의안으로 상정된 교명이 전체 교수회의에서 창원대학으로 최종결정되어 문교부에 개명을 신청하였던 것이다.

지난 3월 20일자 경남신문에서 도청의 자료를 인용 보도한 개명의 필요성을 살펴보면 창원이 삼국이전가야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창현, 조선시대의 창원부로 바뀌었다는 역사성과 국토 종합계획상 창원이 행정·산업·생산의 중심도시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과 마산 대학이 경남대학의 구명칭이라는 것. 그리고 도청소재지명 사용에 관한 문제이다. 인용 신문에서는 개명에 관한 문제에 대해 여론형성이 상당히 된 것으로 간주되고 있었다. 비록 개명은 문교부의 승인을 얻었으나 국무회의를 남겨두고 있으며 국립대학설치령의 개정 절차도 밝아야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3개의 공과계통의 학과가 증설됨으로써 종합대학에도 한걸음 더 다가서게 되었다.

 

1981年 02月 21日 제48호

C.C를 보는 이의 마음

오늘처럼 포근한 날엔 다정한 연인과 함께 거리를 거닐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럴땐 금방이라도 불러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불행히도 내 연인은 저 멀리 계시고, 교내에서 보는 c.c들이 부러워 괜히 한번 꼴쳐보는게 나의 현실이 아니던가?

대학에 와서 누구나 사랑에 대한 고민들을 해봤을 것이다.

“나는 왜 저들 c.c처럼 지낼 사람이 없을까” 혹은 “왜 c.c는 이렇게도 남의 시선을 감수해야 하는가?” 혹은 “나의 OO은 왜 그다지도 멀리 있어서 애태우게 하는가” 등등···

그런 고민속에 가장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바로 campus couple 이라는 c.c.

학교가 같기 때문에 연애현장을 목격당하기 쉽고, 서로 아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맺어졌다하면 ‘누구와 누구가 사귄다’라는 소문이 엄청난 속도로 펴져버리게 되고···

이런 저런 일로 c.c들은 언제나 무거운 책임감을 벗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보는이의 입장은 또 다른법. 어쨌든 그들의 모습이 부러운건 사실이다. 그런 부러움을 받는 일이 c.c들에겐 위안이 될지도, 아님 서로를 더 묶어주는 끈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마지막으로 당부하고 싶은 말은 그 두사람의 관계를 그들만의 독립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학교내나 과의 수 많은 행사속에서 좀 더 발전적으로 보여주면 하는 바램이다.

윤석연<영문 95>

 

화창한 봄 햇살에 상큼한 꽃내음이 풍겨지는 요즘, 남녀들의 발걸음은 한층 더 가벼울 것이다. 이 중 C.C들은 그 다정함을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부러움을 사게 한다. 꼭 붙은 두 손, 나란한 어때, 처음보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그러나 이들의 깊은 관계가 노출될수록 우리들의 시선은 부정적으로 바뀌기가 쉽다. 다른 사람들이 그들 각자에게 접근할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고, 그 둘만의 세계로 점점 좁혀지게 된다. 그러다 보면 학우들과의 만남에 소홀하게 되고, 타인과의 관계는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좀 더 개방적인 생활로 접근하는 자세가 C.C들에게 요구된다.

하춘선<전산 94>

 

1988年 01月 18日 제124호

87年 창大 10대뉴스

1. 고 박종철학우 49재

경찰들의 고문으로 숨진 우리들의 뇌리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은 故박종철 학우의 49재추모식이 3月3日오후 봉림관 민주광장에서 엄수되었다.

 

2. 제3대 박동화 학장 취임

제3대 박동화 학장의 취임식이 3월12일 봉림관 소강당에서 있었다.

국제적인 위치로의 대학 발전을 위해 2~3년 내에 외국의 명문대학과 상호교류를 추진하고 마지막 교단인 이곳에서 자신의 남은 정열을 모두 교육에 불사르겠다고 자신의 포부를 밝혔다.

 

3. 제3대 총학생회 출범

73.88%의 투표율 중 61%의 압도적인 지지를 얻어 제3대 총학생회가 출범했다. 4월6일날의 출범식에서 총학생회는 학내모순척결의 선봉에 서고 사회민주를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지난1년동안의 활동에서 미비점들을 많이 찾아볼 수가 있다.

 

4. 4月 문화제와 5月 선봉체전

대학문화의 올바른 정립과 나아가 사회문화창달에 기여하고, 봉림의 하나됨, 민족의 하나됨을 위한 4월문화제와 5월선봉체전이 각각 3일간 갖가지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되었다.

 

5. 5月 학내 민주화 투쟁

학내제반모순척결과 봉림인의 권익쟁취를 위한 법봉림 민주화 투쟁이 5월11일부터 16일까지 1주일간 벌어졌다.

학생회 간부들의 삭발을 시작으로 건물점거농성, 수업거부 등으로 확산되어 기성회비공개, 장학내역공개, 마스터플랜축소 등 학내의 부조리사항 29항을 내걸었다. 하지만 장기화로 인한 학우들의 지리멸렬으로 인하여 가장 큰 이슈들은 해결을 못 본채 흐지부지 끝나는 꼴이 되고 말았다.

 

6. 교수들의 시국선언과 교수협의회 창립

본 대학 교수들의 민주화를 위한 투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5月30日 교수 13명이 현 시국에 관한 우리의 견해라는 시국선언을 발표하면서 이 땅의 민주화, 자주화를 위한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7. 전국 대학생 대표자 협의회 결성

전국 백만학도의 대동단결과 대동투쟁을 위한 백만학도통일대장정이 방학 중인 8월16일~19일까지 거행되었다. 마지막 날인 19일에는 충남대에서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결성되었다. 전국에 큰 변수가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백만학도의 진정한 구심체역학을 수행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8. 6月항쟁

6月10日고룬추방 및 호헌철폐 범국민대회가 국민운동본부의 주관으로 전국 70여곳에서 일제히 개최되었다. 이 날을 계기로 전국에서는 매일 독재타도, 호헌철폐의 함성이 끊이질 않았고 결국에는 6.29라는 기만에 흐트러졌다.

 

9. 봉림 대동제 개최

봉림골 학도의 대동단결과 민족통일 조국통일을 기원하며 제8회 봉림대동제가 9월27일부터 사흘간 개최되었다.

봉림대동제는 형식에 치우치는 면과 진정 민중들과는 조금은 괴리감이 있었다.

 

10. 학장실 점거, 단식농성

교수협의회의 공식인정과 폭력교수의 퇴진 그리고 구속학우의 석방을 위한 봉림인의 학장실 점거 철야농성, 단식투쟁, 수업거부 등이 진행되었다.

10日간의 장기간이었으나 학우들의 무관심과 학생간부들의 효율적인 기능이 미비한채 실질적으로 획득한 것이 없이 흐지부지 된 채 끝났다.

 

 

1995年 05月 09日 제224호

제2학생회관 조기신축이 최대방안

동아리 공간 턱없이 부족, 계단공간도 동아리방으로 사용

지난 14일(목) 스넥코너에서 동아리 대표자회의가 열렸다.

동아리 기획부장 김경민양의 방중사업보고를 기점으로 올 하반기 동아리 모두모임사업과 함께 현재 동아리가 겪는 공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요구안도 설정했다.

 

<중략>

 

우선 동아리 지원금 800만원 책정요구는 현재 키프러스, 한마당, 땅사랑 등의 동아리들이 공연 준비에 쓰여지는 예산이 적지 않은 데에 기인한다.

 

<중략>

대표적인 예로 2호관의 Time과 she’ll이 방을 비워줘야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문제점이 발생한 까닭으로 동아리 모두모임에서는 학내 시설물 사용에 있어 행정마찰 해소와 차량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마지막 요구안인 제2학생회관의 조기신축은 동아리 공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최대의 방안이다. 그러나 예산 책정 여부에 있어 현재 미 결정된 사항이라 최대한의 빠른 예산 책정만이 조기신축의 해결점이다. 또한 제 2학생회관 신축전까지라도 각 단대에서의 자치활동을 기본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하는데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동아리들이 각 단대에서 쫓겨나고 있는 실정이다.

공연을 앞두고 있는 she’ll을 비롯해 GMP, 코뮤즈 세 동아리들이 봉림관 3층 총학생회 옆의 계단공간 사용여부를 두고 줄곧 논의를 벌여왔다.

이날 회의에서 다음 동아리 대표자회의 전까지만 she’ll에게 그 공간에 대한 사용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신축건물이 지어지지 않는 이상, 동아리 공간 문제로 여러 마찰을 빚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하 중략>

취재부

 

1992年 09月 30日 제187호

기자일언 : 독재정권과 언론

요즈음 언론의 모습들을 보면 허탈감과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항상 그러했듯이 사건만 터지면 축소, 왜곡, 과장, 허위라는 ‘단어’속에 묻혀버리기 때문이다.

얼마전 전 연기군수 한준수씨 관권부정선거폭로의 왜곡보도와 민자당 총재 취임식을 생중계로 편파방송 한 것은 이를 잘 증명했다.

결국 한씨는 선거법위반혐의로 구속당하고 말았다.

지난달 28일 민자당 총재 선출 생방송은 여권홍보의 극치를 보여준 단면이다. 이날 주간스포츠중계 계획에도 없었던 한일 청소년 핸드볼 경기가 갑자기 편성되더니 이어서 김영삼 민자당총재수락 연설이 생중계됐다.

대통령 선거시기만 되면 어느 특정정당을지지, 홍보해주는 우리의 언론은 기본적인 중립성(?)을 외면한 채 지배권력의 보좌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다.

이러한 계기로 출발하여 ‘편파불공정, 왜곡보도’라는 불명예를 더 이상 참지못한 MBC노동조합은 ‘노조와 함께 국민의 방송으로’라는 가치를 내걸고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파업을 강행하였다. 물론 이것 또한 경영진에 의한 왜곡보도로 불법파업으로 보도되고 있지만, 국장추천제, 해고자복직, 임금협상을 내걸며 공정방송을 요구한지 한달이 지나면서도 최창봉사장은 교섭은커녕 아나운서부의 출연 금지조치, 노조위원장 등 검찰에 고소, 고발 공권력 투입시기를 두둔하며 노조에게 위협아닌 위협을 주고 있다.

이와 비슷한 대학신문도 마찬가지 현상이다. 91년 6·3외대사태 이후 ‘학원 안정화 대책’의 일환인 대학언론탄압이 강행되고 있다.

고려대 신문의 학점제찬, 편집자율 침해 등 20여개 대학신문이 탄압을 받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학보이원화 조치’로 인해 서강대학보가 교수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상황이니 언론탄압이 더욱더 거세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대학신문은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해서 운영되어 자본에 귀속되지 않는 물적토대를 가진다. 그러나 제도언론은 대자본에 종속되면서 구조적으로 보수성을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진보성을 띌 수밖에 없는 대학신문이 탄압받는 것은 단 한가지 이유, 현 지배체제 유지의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보화시대를 맞이하여 가장 대중성을 많이 획득하고 있는 언론은 지배권력의 장기집권체제에만 매몰되어 있다.

현재 우리 주위에 수많은 민중은 생존권을 박탈 당하고 있다. 총액 임금제라는 허울 좋은 명목으로 노동자의 생계유지를 차단, 윤석양의 기무사폭로로 경찰연행, 보상대책마련도 없이 빈민촌의 강제 철거. 그러나 어디 한번 언론이 이와같은 현상들을 제대로 취재한 적이 있었던가. 다만 그 현장의 스케치 정도 아니면 축소,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

이전의 독재정권의 하녀였던 언론은 새로운 모습인 민중의 대변자로써 거듭 태어나야만 한다. 아니 민중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사건 하나하나마다 집중보도해나감으로써 정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전망을 제시해줄 때에만 민중이 주인되고 인갑답게 살아갈수 있는 사회가 다가올 것이다. 물론 MBC파업에 대해서 전폭 지지하는 바이다.

이제는 더 이상 지배권력에 놀아나는 언론이 되어서는 안된다. 민중의 귀와 눈을 올바르게 반영하고 민중언론의 길을 위한 노력에 아낌이 없어야 할 것이다.

최인석기자

 

이은주 기자 igija@changwon.ac.kr

김민경 기자 mggyo@changwon.ac.kr

최원창 기자 chang096@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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