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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 가작 - 아브락사스를 찾아서
  • 창원대신문
  • 승인 2019.03.07 17:22
  • 호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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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락사스를 찾아서

 

류호익 / 인문대·영어영문학과 2학년

 

얼마 전에 제러미 벤담의 「파놉티콘」을 읽으며 그가 주장한 감옥이 내가 10대를 보낸 학교와 유사하다고 느꼈다. 우리 역시 그가 주장한 대로 무언가를 상징하는 의복을 입고 트레드밀을 돌린다. 여러 조건들로 수감자들을 나누듯 나이와 성별에 따라 학급을 나누고, 유비의 방식으로 징벌을 받는다. 죄수들을 관리하는 사람들에 관한 묘사는 아직도 인상 깊다. 그들은 경제성의 원리에 의해 선출된 숙련된 노동자라는 것이다. 내가 봐온 선생님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저 노동자였기에 나의 영감이나 성장에 별 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이렇듯 졸업하고 보니 학교라는 기관은 내게 감옥 이었다.

아닐까 다를까 미셸 푸코라는 철학자도 감옥이 인간을 반복적으로 훈련을 시키고, 이것이 학교의 통제까지 이르게 되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그 의도와 목적이 상이 할지라도 감옥과 학교는 어쩔 수 없이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이다.

이런 엇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 건 고등학교 졸업 직후였다. 수능이 끝나니 친구도 별로 없고 별다른 취미도 없던 나는 공허함과 허무함을 느꼈다. 막상 자유가 찾아오니 학교의 규제가 그리워진 것이다. 미친 듯이 게임을 해도 일주일을 못 갔고,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토익을 공부하려 해봤자 첫 번째 챕터를 벗어나지 못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때 운전 면허증을 따놓은 건 참 잘한 일이었다. 그러다 죽마고우 친구들과 세 명이서 중국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대략 4년이 다 되어가는 데도 아직도 그 추억들이 새록새록 하다. 찝찝한 공기로 가득 찬 중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본 적응 안 되는 냄새와 모양의 음식물들, 생각보다 먹을 만하다가 인파들 속에서 뱉어버린 취두부의 경험들이 냄새와 소리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평생 동안 안겨온 가족과 학교의 품을 떠난 나에게 중국은 새로운 세계이자 설렘 그 자체였다.

아마 그때 처음 나의 세계에, 나를 품던 알에 금이 갔던 것 같다. 그 금을 통해 들어온 황사 바람은 20년 동안 날 둘러싼 모든 것들을 더럽혔다. 그리고 그 더러움은 치유되지 않는 질병처럼 내 가슴속에 발발하여 전이를 요구했다. 중국여행은 나의 세계를 파괴하고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그 뒤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중국여행을 갔던 친구 한 녀석과 창원에서 부산을 거쳐 서울까지 자전거 여행을 계획했다. 그 계획을 세울 당시에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여행이라는 행위에만 관심이 있었지, 실질적으로 신경을 써야하는 돈과 시간 거리와 같은 현실적인 요건들은 관심 밖이었다. 그야말로 젊은이의 객기에 의한 즉흥 여행이었다. 여행은 시작부터 문제가 많았다. 자전거 바퀴는 셀 수 없이 펑크가 나서 매일같이 몇 시간씩 걸어야 했고, 사우나와 찜질방을 헷갈린 우리는 노숙을 해야 했다. 길을 잃기도 하고 어두컴컴한 시골 길을 한참동안이나 달리기도 했다. 끝이 없어 보이는 오르막길은 진퇴양난에 처한 나의 공략을 비웃는 듯 했다. 하지만, 그 고난들로 이루어진 오르막길의 정상에서 바라보던 풍경과 내리막길을 내려가는 그 시원함과 쾌감은 아직도 잊히지가 않는다. 김훈 작가님의 글귀가 떠올랐다. ‘세상의 길들이 내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오르막과 내리막을 경험한 나야말로 그 문장을 향유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어쨌든, 자전거 여행은 쾌감의 연속이었다. 책에서만 보던 사과서리를 하고, 낯가림이 심한 내가 신이 나서 자전거를 타며 마주친 모든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으니 말이다. 여담으로 서울 사람들은 인사를 건네지도 잘 받지도 않았는데, 인심 야박한 서울에 뭐 그리 사람들이 많이 사나 싶었다. 자전거 여행이 끝날 때쯤엔 해냈다는 생각과 아쉬움이 가득했고, 두 번 다시는 이런 여행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친구와는 달리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몇 번이고 다시 떠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 여행은 나를 노숙자, 미아 혹은 기아로 정복자나 인사성이 밝은 청년으로 만들어 주었다. 그건 변질된 내 모습이 아닌 무의식이 실현된 나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난 아직도 자전거 여행에 대한 주변사람들의 걱정과 여행을 통해 얻는 게 뭐냐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한다. 아마 평생토록 모를 것이고 누가 상을 주는 일도 아니다. 다만, 나의 심장이 뛰는 방향이 그렇다. 거울에 비추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보임을 당하지 않는 나의 마음이 그렇다. 난 그들을 납득시키지 못할 뿐 더러 그러지도 않을 것이다.

요즘엔 과거를 회상하는 일이 잦다. 잠이 잘 오지 않아 침대 위에서 멍하니 눈을 감고 있으면 시험기간처럼 괜히 나의 머릿속 서랍을 뒤척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 서랍 속 서류들을 읽다 보면 그 결말이 대부분 후회로 끝나는데, 옛날의 난 왜 그리 바른 아이이고 싶어 했냐는 것이다. 나는 올바른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 남들 다 도망가는 야자한번 도망가지 않았다. 선생님들에게 좋은 학생으로 인정받기 위해 눈치를 키우고 스스로의 위선과 모순을 견뎌냈다. 덕분에 나의 자존감은 바닥을 치면서도 선생님들이나 동창생들에겐 모범생으로 보였을 것에 안도감을 느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그저 무엇 하나 다를 것 없는 죄수에 불과했다. 오히려 몰개성적이고 주체가 함몰된 그곳에서 나는 모범수였다. 그렇기에 고등학교 졸업 후의 세계에 대하여 불안과 불편함을 느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럴 때 마다 과거의 여행과 미래의 여행을 떠올려본다. 여행자로써의 나는 새로운 세계에서 길을 잃은 미아이며, 남들이 의심하는 가치를 쫓는 돈키호테이다. 난 그곳에서 울음 대신 웃음을, 좌절 대신 희열을 느낀다. 날 둘러싼 풍차들이 괴물로 보여 나의 창을 휘두를 때야말로 난 내가 된다. 여행은 나만의 시각을 통해 나에게 이르는 길이고 그 과정은 투쟁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평생토록 반복될 것이다. 나를 품어온 알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며 끊임없이 비상을 시도하는 삶이야 말로 값지고 가치 있는 삶이다. 나는 일상이 답답하게 느껴질 때면 아브락사스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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