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문화·기획 창원대문학상
23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 당선 - 알레르기
  • 창원대신문
  • 승인 2019.03.07 17:20
  • 호수 640
  • 댓글 0

알레르기

 

이봄 / 예술대·산업디자인학과 2학년

 

변함없이 알레르기가 찾아왔다. 계절의 반이 지나고, 나는 여기에 훌쩍이며 서있다. 흐르는 콧물에 숨쉬기가 벅차서일까. 가슴이 답답하다. 입으로 크게 한숨을 쉬는 횟수가 눈에 띄게 늘어있었다. 늘 먹던 약을 삼켰다. 이 독한 약은 나를 몽롱하게 만들지만, 시원하게 불어오는 가을바람을 들이킬 수 있게 해주지 않을까. 이 답답함을 뻥 뚫어 주지 않을까.

어쩐지. 약기운에 졸았다. 고개가 꾸벅꾸벅. 졸음은 나를 무기력하게 만든다. 달릴 길은 까마득하다. 쉴 시간이 있을까. 졸음 따위에 질 때가 아니다. 숨을 크게 들이쉰다. 답답함을 한 스푼 덜어낸 코로 찬바람이 들어온다. 에취, 눈물이 고인 것 같다.

 

반복중이다. 끝없이 해야 하는 단련. 또 불필요한 감정소비. 불필요함을 알지만 내가 마음대로 못하는 것이 감정이라는 해일이다. 해일이 오면 나는 피할 수가 없다. 정말 걷다가 주저앉고 싶고, 방문이 부서지도록 차고 싶고, 자리를 박차고 나가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가 많다. 그때마다 난 이 감정을 돌려 탓할 곳을 찾는다. 빌어먹을 가을과 함께 온, 이 알레르기가 내게 스트레스를 줘서 일거야. 이 답답함은, 먹먹함은, 곧 사라질 거야. 약 한 봉지를 또 집어든다. 졸린 눈으로 약의 개수를 세며. 물과 함께 삼킨다. 코의 답답함이 또 한 스푼 덜어졌다. 괜찮아진 것만 같다.

 

전해오는 가을바람은 먹먹함을 안고 온다. 지나가면 별 일 아니란 걸 알지만 이미 다가온 이 먹먹함은 내 지나간 여름에 비해 너무 가혹하다. 내 여름은 너무 뜨겁고, 바라볼 별이 있었다. 갑작스레 안긴 이 별을 안기가 두려웠지만, 그 별은 나와 같은 빛이 나는 듯 했다. 그래서, 두려움은 어느새 녹아내려 내 발만 적셨고, 황홀한 그 빛에 젖어 외로움을 잠시 밀어두었다. 잡을 수 없는 손이었지만, 넌 내 곁에 항상 있는 것 같았다. 오래가지 않을 행복임을 알았지만, 녹아내린 두려움은 내 발을 툭, 툭, 건드릴 뿐 빛에 휩싸인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의 아름다운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왔을 때, 이미 다가와 있는 먹먹함은 느끼지 못했지만, 이미 쌓여있던 두려움이 녹아 내 허리춤까지 차올랐다. 이전의 열기로 녹아버렸지만, 더 이상 너라는 별에게 전과 같은 뜨거움은, 가까웠던 푸른빛은 멀리 희미한 흰 빛이 되어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너는 생각보다 빨리 멀어졌고, 나는 너와 닿기도 전에 멀어져 버렸다는 허무함이, 아름답던 여름을 서서히 지워버렸다. 가을바람은 먹먹함을 안고 온다. 이미 꽉 차버린 먹먹함에 나는 몸서리치며, 눈물 흘리며, 어느새 내 목덜미에 차오른 두려움의 남은 장을 눈물로 채웠다. 길을 걷다가도 쓰러질 듯이 비틀거리고, 미친 사람처럼 소리도 질러보려 했다. 그렇게 멀리 날아가 버린 나의 별을 나의 삶 한 페이지에 꽂아 넣었다. 눈물은 말랐는데, 자꾸 훌쩍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건 다가온 알레르기 때문 일거야. 연기를 세 모금 마시고, 항상 있던 그 자리의 알레르기 약을 꺼내들었다. 약 기운이 나를 나른하게, 훌쩍이는 코를 멈추게 해준다. 그래, 이 모든 건 다 알레르기 때문일거야.

 

높고 푸른 가을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주말,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천천히 집으로 걸어오는 길에, 멀리서 나를 반갑게 맞이하는 누군가를 발견했다. 어머니였다. 오늘은 장사를 늦게 여시려나 보다. 아직 가을인데 유난스럽게 패딩을 입으신 어머니께 패딩을 벌써 입으시냐고 핀잔을 주었다. 벌써 으슬으슬 하시단다. 짧은 대화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다. 나이에 비해 젊게만 느껴지던 어머니의 얼굴은 어느새 주름이 젊음을 좀 먹은 듯 제대로 펴져있는 곳이 없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겐 누구보다 아름다운 꽃이고, 누군가에겐 아름다운 별이었을, 또 누구보다 빛나고 싶었던 촛불이었을 당신은 어느새 못되먹은 세월을 피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늙어가는 모양이다. 패딩 매무새를 갖춰드리며, 잘 다녀오시라는 말을 툭 뱉고 집으로 향했다. 집에 앉아서 어제 못 들은 chet baker의 노래를 틀었다. 어느새 일상이 되어버린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천천히 빨았다. 차분하고, 감성적인 색소폰 소리 때문인지 콧잔등이 시큰해온다. 어머니의 얼굴에 작고 큰 골짜기들에 깊게 빠져버린 듯, 어둠 속으로 빨려 가는 듯, 언젠가 다가올 잔인한 시간이 선물할 이별이라는 당연함이 왠지 코앞으로 다가온 듯, 눈시울이 붉어지려 한다. 나는 아직 여리디 여린가보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먹먹함이 다시 다가오는 가보다. 그래서 매년 다가오는 이 답답함이 내게 크게 느껴지나 보다. 답답함을 없애려 알레르기 약을 찾는다. 이 지옥 같은 답답함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면, 아무 생각 없이 약을 집어삼키는 수밖에. 시큰하던 코 끝에 상쾌한 바람이 들어온다. 답답함이 가신다. 아픔이 가신다. 다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며, 누구보다 빛나는 사람이 되어, 언젠가 누군가에게 빛이었을, 이제는 남은 빛마저 다 우리에게 써버린 당신을 빛내기 위해, 지옥 같은 알레르기를 잊고 달려야겠지. 반복되는 이 알레르기를, 나는 훌훌 털어내야겠지.

 

가을에 흠뻑 젖어 들 무렵, 약 봉지와 함께 알레르기 기운도 떨어지고 있다. 조금씩은 다른 느낌의 먹먹함들은 스쳐가듯, 어떤 날은 내 어깨를 무겁게 눌러오듯, 항상 나에게 찾아온다. 이 시간이라는 바다가 만들어내는 파도는 내가 피할 수 없다. 나는 파도를 맞는 백사장처럼, 그저 버텨낼 뿐이다. 이제는 두렵지 않다. 다만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에 취해 비틀거리며 나아갈 뿐이다. 어떻게 됐건 나는 나아가고 있다. 이렇게 비틀거리며 나아가다 보면, 언젠간 이 먹먹함은 가실 것이고, 또 언젠간 다시 찾아와 나를 무너뜨리려 하겠지. 하지만 나는 버텨낼 수 있다. 이 백사장이 비워진 자리에, 성숙을 채워 넣고, 다시 비워낼 부분을 기다릴 것이다. 이 먹먹함은 내 적이 아니다. 질리도록 다가오는 이 알레르기는, 내 적이 아니다. 다시 돌아올 알레르기를, 피할 수 없는 그 먹먹함을 나는 힘껏 안고 견디며, 비틀거리며, 계속 나아갈 것이다. 성숙을 채우며.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창원대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