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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 장려 - 익숙한 밤, 미숙한 밤
  • 창원대신문
  • 승인 2019.03.07 17:16
  • 호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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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밤, 미숙한 밤

 

최윤진 / 인문대·국어국문학과 4학년

 

 

어제는 옆 동네에 가끔 보이던 갈색이가 죽었다고 들었다. 너무 굶주렸던 터라 길에 보이는 참치 캔을 보자마자 허겁지겁 먹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거기엔 무엇이 섞여있었던지, 갈색이는 그것을 채 소화시키기도 전에 근처 공원 쓰레기통 옆에서 죽어버렸다. 인간들은 우리의 사체를 치우며 종종 ‘죽어서도 처리하기 곤란하네.’ 하고 혀를 끌끌 찼다. 갈색이의 사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원래 그래야 했다는 듯이 자기가 죽은 자리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담겨 버려지지 않았을까.

 

나는 어제 지붕에서 떨어지는 무언가의 파편에 의해 생긴 다리의 생채기를 핥으며 이런 생각이나 했다. 하늘을 올려다 보니, 파랗던 하늘이 점점 탁해지고 그 밑에 분홍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미 뻔질나게 본 탓에 익숙해진 것이기도 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자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저 하늘의 얼굴은 아주 짧은 시간 볼 수 있는 것이었기에 나는 욱신거리는 상처에 신경을 거두고 아슬아슬한 담장 위에 엎드려 누워 하늘을 바라봤다. 이 시간은 이렇게 짧고 빠르게 흘러가는데, 내 하루는 너무 길고 느리기만 하다. 분홍물로 가득 찬 지금의 이 시간이 검은 밤으로 뒤 덮인 긴 하루보다 길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새 잠이 들었었나 보다. 그새 더 차가워진 겨울의 공기에 몸을 부르르 떨며 일어났더니 주위는 온통 새카만 밤이 내려앉아 있었다. 나는 두 다리를 쭉 뻗어 기지개를 켜고 담장 밑으로 폴짝 뛰어내려갔다. 움직여야 할 시간이 되었다.

아무도 다닐 것 같지 않은 주택 사이의 아주 작은 틈새들은 길 고양이들의 전용 길이다. 파란 대문집과 흰색 집 사이의 길을 지나서, 또 사람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노란 간판의 집을 지나면 하천이 나온다. 나는 땅과 또 다른 땅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며 어둠이 짓눌러 더욱 깊고 까만 하천을 잠시 서서 내려다 봤다. 하늘의 분홍물은 참 따뜻하고 예뻤는데, 하천의 검은물은 너무나 차갑고 무서워서 자칫 공포감까지 느껴졌다. 엄마는 왜 하늘 가까이에 몸을 두지 않고, 하천에 몸을 두었을까. 아마 하늘 가까이까지 갈 여력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엄마는 지금 따뜻한 하늘에 있을거니까 걱정되지 않았다. 나는 하천에서 시선을 거두고 멈추었던 발걸음을 얼른 재촉했다.

 

다리를 건너 얼마 채 가지 않으면 빽빽 들어찼던 낮은 집들의 풍경과는 달리, 높은 집들이 듬성듬성 심어져 있듯 즐비해 있는 광경이 보인다. 나는 그 곳 주변에 쳐진 울타리 밑으로 조심히 들어가 크고 단단한 초록색 물체에 다가갔다. 평소보다 조금 늦었던 지 이미 거기에는 나 말고도 여섯 마리의 고양이가 와 있었다. 몇 마리는 나를 보고 그르릉 거리며 경계하다가 다른 곳으로 홀랑 사라졌고, 이 전에 알고 지내던 나머지 고양이들은 더 이상 먹을 게 없다는 듯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울타리 밑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 냄새 나는 초록색 철 덩어리의 밑 구석도 살폈다가, 옆도 살폈다가, 위도 살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아까 하늘을 보며 쓸데없는 생각이나 하다 잠에 든 내가 원망스러워 졌다. 고통스러운 허기는 뼈에 살가죽이 다 붙어버린듯한 느낌까지 주었다. 하는 수 없이 철 덩어리에서 폴짝 뛰어내려와 이동하려는데, 울타리 쪽 풀 사이에 봉지 하나가 떨어져 있는 게 보였다. 얼른 뛰쳐가보니 누군가 먹다 버린 조그만 빵 덩어리에 개미 몇 마리가 붙어있었다. 주린 배를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했지만 입에 뭐라도 들어가지 않는다면 당장에 죽을 것만 같았다. 나는 빵 덩어리를 앞발로 낚아채 집고 개미들을 털어낸 다음 조그만 빵 덩어리를 더 조그맣게 나누어 개미들이 떨어진 곳에 놔뒀다. 개미들은 버둥거리다가 다시 내가 던진 빵 쪽으로 모이더니 자신들의 집으로 그것을 이고 갔다. 나는 그제서야 개미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고, 빵 덩어리를 얼른 입안에 털어 넣었다. 어제도 마땅히 먹을 것을 찾지 못해서 오늘은 서둘렀어야 했는데. 어리석었다.

 

높은 건물들속을 빠져 나와 조금 더 걸으면 다시 낮은 집들이 나온다. 우리 동네에서 한참이나 떨어진 곳이라 몸이 너무 지치는 바람에 잘 오지 않는 곳이지만, 오늘은 너무나 배가 고파서 여기까지라도 나와봐야 했다. 나는 사람의 기척이 들리면 차 밑에 숨어 기다리다가, 조용해지면 다시 나와서 쓰레기 근처를 뒤적거렸다. 그러다가 기척이 들리면 얼른 다시 구석지고 어두운 곳에 몸을 숨겼다. 그러기를 여러 번, 지친 몸으로 마지막 쓰레기 봉투를 뒤지던 중에 다시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나는 잽싸게 옆의 차 밑으로 숨었다. 그런데 한참이나 지난 후에도 옆을 지나는 기척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이다. 경계태세로 잔뜩 긴장하던 내 앞으로 낯선 냄새와 함께 무언가가 훅 하고 차 밑으로 들어왔다.

 

“고양아, 거기 있니?”

 

인간의 손이 내 앞까지 다가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털을 세우고 위협적인 소리를 냈다. 주위 여러 고양이들과 우리 엄마를 봤을 때, 인간과 얽혀서 좋은 일은 없었다. 나는 옆 쪽으로 슬금슬금 발걸음을 옮겨 훌쩍 도망가버릴 요량이었다. 한걸음만 더 내디디면 달려야겠다, 마음먹고 발을 밖으로 뺀 찰나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찔렀다.

 

“괜찮아.”

 

인간은 입으로 ‘쭈쭈, 착하지.’ 소리를 내며 맛있는 냄새를 풍겨왔다. 분명 다른 날이었으면 당장에 도망쳤을 텐데 가뜩이나 고픈 배에, 음식의 냄새까지 맡아버리자 나머지 다리가 어느새 그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고개를 슬쩍 내밀어 밖을 내다보니 인간은 쪼그려 앉아 손에 캔을 든 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쭉 경계를 풀지 않고 조심스레 그 쪽으로 다가갔다. 인간은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내가 가까워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캔을 바닥에 놓았다. 초록색 캔에는 나와 같은 친구가 그려져 있었다. 나와는 다르게 집에 사는 고양이들이 먹는 밥이라고 들었던 거 같다. 항상 쓰레기통에서 텅텅 빈 것만 보다가 이렇게 가득 차 있는 것은 처음 보았다. 정말 당장이라도 코를 박고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싶었으나, 끝까지 눈은 인간을 주시한 채 아주 느리게 캔에 입을 댔다. 인간은 내가 먹는 모습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마지막 입을 해치운 순간,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왼쪽 골목으로 내달렸다. 인간이랑 얽히면 안 된다. 우리 엄마가 했던 실수를 반복하면 안 된다. 나는 한숨도 쉬지 않고 뛰고 또 뛰어 단숨에 하천의 다리까지 건넜다. 나는 숨을 거칠게 고르며 가장 따뜻한 차 밑을 찾아서 몸을 뉘였다. 숨을 고르고 골라도 계속해서 심장이 뛰어댔다. 너무 심하게 달려서, 그래서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인간에게 밥을 받아 먹은 사실 자체로 엄마에게 죄를 진 것 같아서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입 안에 맴도는 집 고양이 밥의 잔 맛을 계속해서 되새기며,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을 사죄를 하다 잠들었다.

 

우리 엄마는 나를 낳고 추운 겨울에 하천 부근에서 눈을 감았다. 나는 엄마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나에게 남은 엄마의 기억은 아주 작았던 나를 그저 아무 말 없이 핥으며 ‘순이야, 순이야.’ 하고 읊조리던 모습과, 지나가는 인간들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나에게 ‘인간은 우리를 성가셔 하니 얽혀서 좋을 게 없다.’ 고 말해주던 어느 날의 순간 뿐이다. 단편적인 기억만 남아있는 나에게, 우리 동네 점박이 할머니는 어느 날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 엄마는 나처럼 길에서 태어났다. 싸움도 잘하고, 달리기도 빨라서 모두가 멋있어 하는 고양이였다고 한다. 엄마는 길거리를 누비고 다니다, 어떤 인간들에게 잡혀 잠시간 종적을 감췄다. 며칠 후, 엄마는 사라졌던 그 부근에서 다시 나타났다. 여전히 싸움도 잘하고, 달리기도 빨랐지만 쫑긋 솟아있던 왼쪽 귀 끝이 약간 잘려나간 채로 말이다. 우리 엄마에 대해 말해주시던 점박이 할머니는 얘기하시던 도중, 그것은 애기를 갖지 못하는 수술을 받은 징표를 남기기 위해 인간들이 남기는 것이라고 덧붙여 설명해주셨다. 나는 엄마 말대로 인간들은 우리가 태어나는 것부터 죽는 것까지, 일생을 성가셔하는구나 생각했다.

그러던 엄마가 또 길거리에서 사라졌고, 몇 달이 지나서 배가 부른 채로 나타났던 것이다. 점박이 할머니가 무슨 일이었냐 자초지종을 물어도 입을 꾹 닫은 채 아무 말도 않던 엄마는 눈을 감기 일주일 전 할머니에게 있었던 일을 아주 느리게, 하지만 또박또박 말해주었다.

 

열대야가 계속되던 푹푹찌는 여름날, 엄마에게 물과 밥그릇을 가져다 주던 인간이 있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매일이 되었다. 그 인간에 대한 엄마의 경계심이 뜨거운 아스팔트 위 얼음처럼 녹았을 즈음, 그 인간은 엄마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길에선 먹을 수 없었던 맛있는 밥과 시원한 물, 푹신한 잠자리를 주고, 따뜻한 물로 씻겨주며 부드러운 손으로 엄마를 쓰다듬어 주었다. 엄마는 처음에는 그 곳을, 나중에는 그 곳보다 그 인간을 정말 사랑했다고 했다.

혹독한 여름이 가고, 가을냄새에 익숙해지기 시작하자마자, 초 겨울의 공기가 서서히 느껴지기 시작했다. 변한 것인 계절뿐만이 아니었다. 매일 같이 함께 있던 그 인간이 좀처럼 집에서 잘 보이지 않았다. 밥그릇이 예전과 다르게 텅 비워져 있는 날이 많아졌다. 엄마의 하루 일과는 하루종일 문만 쳐다보며 그를 기다리는 것과 바깥의 모습을 그리며 창문을 내다보는 일 뿐이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엄마는 길에서의 오랜 생활이 차츰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그 인간은 나가면서도 엄마를 들여다 보지 않게 되었다. 문 앞까지 쫄래쫄래 따라갔지만 어김없이 ‘쾅’하고 매몰차게 닫히는 문 소리에, 엄마는 그 날도 그렇듯 몇 알 남지 않은 밥을 먹고 창문을 올려다 봤다. 근데 이상하게도 항상 닫혀있던 집의 창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바깥에서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에 엄마는 ‘잠시간 산책쯤은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집을 빠져나갔다. 다시 맛 본 자유는 간식만큼 단 것 이었으나, 엄마는 금세 그 인간의 냄새와 손길이 그리워졌다. 이제 그 인간이 자신을 성가셔 하는 걸 알면서도 엄마는 해가 지기 전 다시 창문을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집에는 역시나 아무도 없었다.

캄캄한 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얼른 현관으로 가봤지만 인간은 엄마를 한번 쳐다보고 창문을 한번 쳐다본 뒤 한숨을 쉬고 자기 방에 들어가버렸다.

그 뒤로 창문은 단 한번도 닫히지 않았다. 엄마의 산책은 잦아졌다. 그리고 배가 점점 불러갔다. 배가 바닥에 닿일만큼 불러졌을 때, 그 인간은 오랜만에 엄마를, 아니 엄마의 배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같이 온 또 다른 누군가가 ‘임신한 거 아니야?’ 하고 물었고, 그 인간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귀 끝이 잘려있잖아.’ 하며 고개를 저었다.

 

“야, 요즘 중성화 수술하기 번거로워서 몇 마리는 그냥 귀 끝에 징표만 남기고 만다던데. 쟤도 그런 거 아니야?”

 

당최 알 수 없는 말들이 오갔다. 그래도 엄마는 직감적으로 그것이 좋은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인간은 이번엔 창문이 아닌 집 문을 열었고, 자신의 손으로 데려왔던 엄마를 자신의 손으로 다시 길가에 버렸다.

 

버려진 엄마는 더 이상 예전의 힘세고 멋진 길 고양이가 아니었다. 받아먹던 밥에 이미 익숙해진 엄마는 부른 배로 먹이를 찾으러 다닐 수 없었다. 예전에는 익숙했던 수 많은 차갑고 고독한 밤도, 언제 겪어나 봤냐는 듯 낯설고 미숙하게 다가왔다. 예전에 알고 지내던 고양이들이 툭툭 던져주는 먹이를 겨우 조금씩 받아먹고, 박스 안을 전전하며 지내며 그 집 근처를 떠나지 못하다가, 엄마는 출산기가 다 되어서야 어느 공원으로 몸을 옮겨 풀숲에 나를 낳았다. 나를 낳은 지 2주, 버림받은 지 30일이 되던 날. 엄마는 점박이 할머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고 나를 부탁했다. 그리고 하천 부근에 몸을 뉘었다. 마치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 우거진 풀더미에 몸을 꽁꽁 숨긴 채 죽어있었다고 했다. 나는 엄마가 인간이 자신의 죽음마저 성가셔하는 걸 알고 있어서, 인간에게 더 이상 짐이 되기 싫어서 죽음의 무의식중에 그러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할머니는 이야기를 마치며, 엄마는 그 인간이 자신을 부르던 이름이 있었다고 말했지만 그것을 끝까지 알려주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저 나를 부르며 ‘순아, 순이야.’ 했을 뿐이라고 했다.

 

점박이 할머니에게 엄마의 얘기를 전해 듣고 나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더욱 더 커졌다. 지나가는 인간만 봐도 숨고 털을 세우며 그르릉거렸다. 엄마가 그렇게 된 것은 다 인간 때문이다. 인간이 길에서 잘 사는 우리 엄마한테 쓸데없는 참견을 해서, 정도가 넘는 관심을 줘서, 책임 질 것도 아니면서 사랑을 줘서. 그러면서도 나는 인간에게 밥을 얻어먹었으니 엄마에게 죄를 진 것이 아닐 수가 없다.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는 이런 일은 없을 거라고 다짐했다.

 

추위는 더욱 더 심해졌다. 먹이를 구하기도 힘들어지긴 마찬가지다. 그럴 때 마다 옆 동네에서 먹은 맛있는 밥이 생각났지만, 꾹꾹 참아가며 음식물 찌꺼기 같은 것들을 핥아먹었다. 오늘도 우리 동네에 식량은 동이 났다. 옆 동네를 가보려 하천의 다리를 지나던 중, 한 인간이 내 쪽을 보며 쪼그려 앉아있는 게 보였다.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게 마치 내가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슬슬 뒷걸음질 치며 뒤로 도망 칠 준비를 했다. 그때 익숙한 냄새와 익숙한 말이 들려왔다.

 

“쭈쭈, 착하지.”

 

며칠 전에 옆 동네에서 겪은 상황과 똑같았다. 알아볼 수는 없지만 목소리를 들어서는 그때 그 인간이 맞는 것 같다. 노란 털을 가진 채 그때와 같은 자세로 그때와 같은 캔을 들고 나를 쳐다보는 그 인간이 주춤거리며 나에게 조금씩 다가왔다. 웃는 얼굴로 캔을 내밀더니 내 다리로 시선을 돌렸다.

 

“거긴 어쩌다 그렇게 다쳤어!”

 

다리에 생채기가 아직 덜 아물었다.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이빨을 보였더니 ‘많이 아파?’하며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픈데 왜 저 인간이 아픈 표정을 짓는 걸까? 정말 이상했다. ‘이거 먹고 빨리 나아.’ 하며 캔을 내 쪽으로 밀어주기에 전보다는 경계를 풀고 입을 댔다.

 

“원래 이 동네 사니? 너 주려고 매일 들고 다녔는데.”

 

‘이제 매일 여기로 와야겠다.’하고 덧붙이곤 인간은 일어서서 내게 손을 흔들며 떠났다. 그러던 말던 내 신경은 온통 그 초록색 캔에 가 있었다. 또 다른 고양이가 꼬일 새라 캔을 물어 후미진 곳에 숨어 바닥까지 핥아서 먹었다. 오늘도 공치나 했는데, 포만감에 추위까지 잊혀졌다. 밥 주는 그 노랑이 털 인간한테 약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계속 다리를 건널 때 마다 익숙한 인간이 나에게 밥을 줬다. 몇 번이고 반복되자 생선 가시 같던 내 경계심도 끝이 뭉툭해졌다. 다리 밑 하천을 볼 때마다 엄마가 생각나서 밥이 턱하고 걸리기도 했으나, 인간에게 이 정도 도움을 받는 것 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인간은 나를 위해 솜 뭉치를 넣은 박스도 가져다 줬다. 덕분에 추운 겨울을 조금은 버틸 수 있어져서 행복해졌다. 나는 이제 그 인간을 털 색깔로 내 친구들을 부르듯 ‘노랑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오늘도 여느 때처럼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근데 다리 끝 쯤에서 보여야 할 형체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느리게 걸으며 졸여지는 가슴을 애써 모른 척 했다. 없어도 괜찮다. 그저 오늘 먹이를 좀 힘들게 구해야 할 뿐이지. 뭐, 없어도 괜찮다. 어느새 다리 끝에 도착했으나 여전히 노랑이는 없었다. 밥을 못 구해서인지 마음 한쪽이 콕콕 찔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흥, 뭐. 나도 인간이랑 얽히는 건 성가시다. 괜시리 무거운 발을 다시 동네로 돌리던 순간, 어떤 그물 같은 것이 내 몸을 휘감았다. 비명을 지르며 발톱으로 할퀴어 대도 소용없었다. 더욱 더 얽혀오는 그물에 발버둥 치는 나는 아랑곳 않고, 두 명의 모자를 쓴 인간들은 나를 잡은 그물을 아무렇게나 들고 다시 걸어갔다. 엄마가 인간에게 잡혀갔을 때도 이렇게 잡혀간 걸까. 막대한 공포심에 짓눌려 몸이 벌벌 떨렸다.

 

“어, 아저씨! 그거 제 고양이에요!”

“예?”

“아, 걔 제 고양이에요. 집에 없어서 한창 돌아다녔네.”

 

흔들거리던 그물망이 멈췄다. 뒤 쪽을 보니 손에 초록색 캔을 들고 있는 노랑이가 보였다. 나는 더 세차게 몸부림 치며 울어댔다.

 

“아이고, 무서웠지? 얼른 풀어주세요.”

 

두 인간들은 서로를 마주보며 뭐라 궁시렁 거리더니 그물을 바닥에 엎어 나를 내려놓았다. 노랑이는 처음으로 나를 안아 올렸다. 평소였으면 손에 발톱을 세워 사정없이 할퀴었겠지만, 이미 몸은 녹초가 된 상태였다.

 

노랑이는 푹 늘어진 나를 안고 옆 동네 쪽으로 걸어가는 듯 했다. 긴장이 순식간에 풀려 눈꺼풀 조차 절로 내려왔다.

 

“괜찮아.”

 

노랑이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나보고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잠시간 나를 내려다 보더니 입을 열었다.

 

“고양아, 우리 집 가서 살래?”

 

우리 엄마를 보고도 내가 너네 집에 가서 산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지금은 힘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있지만 조금만 있으면 얼른 뛰쳐 내려서 도망가 버릴 거야.

 

“너는 밖에서 사는 게 더 좋겠지만… 또 저 무서운 아저씨들한테 잡혀가겠다.”

 

…그건 그런데. 나는 지금까지도 혼자 잘 살아왔단 말이야. 방금 전 일은 실수였어, 실수.

 

“나랑 같이 맛있는 거 먹고, 건강하게 살자. 내가 책임질게!”

 

‘책임’이라는 말에 몸이 움찔거렸다. ‘왜 추워?’ 하며 외투로 나를 덮어주는 그 손에도 나는 잠자코 있었다. 어쩌면 노랑이는 나를 정말 책임져 주지 않을까? 매일같이 밥도 주고, 방금 전에 나를 구해주기도 했으니까. 노랑이는 그 인간처럼 나를 버리지 않지 않을까? 노랑이는 나와 끝까지 함께해주지 않을까? 노랑이는 내가 태어난 사실도, 내가 죽은 뒤에도, 나를 성가셔 하지 않고 기뻐해주고 슬퍼해 주지 않을까?

나는 쓰레기통에 담기지 않지 않을까.

 

“이름은 뭐로 할까? 너는 순하니까 순이?”

 

나는 ‘순이’라는 이름을 싫어하지 않고, 끝까지 좋아할 수 있지 않을까.

 

물음표로 가득 차 버린 머릿속을 비집고 어제 점박이 할머니에게 들은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어제는 우리 동네에 가끔 보이던 까망이가 죽었다고 들었다. 까망이는 우리 엄마처럼 인간에게 버려져 길 고양이가 된 소심한 아이였다. 그 작고 안타까운 까망이는 길거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며 인간들 근처를 서성이다가, 자신을 괴롭히던 인간들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서 그렇게 됐다고 했다. 인간들은 대체 우리가 얼마나 싫으면 돌까지 던져댈까. 그 인간들도 돌을 던지며 낄낄 거렸다가 갑자기 죽은 까망이를 보며 ‘죽어서도 처리하기 곤란하네.’ 하고 혀를 끌끌 찼을까. 인간의 손에 죽은 까망이는 죽는 순간까지도 자신을 돌봐주던 인간을 그리워 하며 눈을 감았을까.

 

끔찍한 그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인간에 대한 불신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그러면서도 나는 노랑이에 품에 안기고, 머리까지 내어주어 그 손길을 느꼈다. 잠깐, 아주 잠깐. 우리 엄마처럼 나도 익숙한 밤이 미숙한 밤이 되어 버릴까 두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살짝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점차 탁한 분홍빛으로 물들어 가는 세상이 보였다. 그 때, 노랑이의 주머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노랑이는 나를 안고 있던 두 팔 중 한 팔을 빼내어 어떤 물체를 꺼내, 자신의 귀에 가져다 댔다. 나를 받치고 있는 한 팔이 아슬아슬했다.

 

“어. 나 걔 우리집으로 데리고 가기로 했어. 뭐, 괜찮겠지.”

 

아까와는 다르게 나는 앞 발에 힘을 주어 노랑이의 팔을 잡았다. 노랑이는 나를 다시 고쳐 잡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나는 온전히 알아들을 수 없는 노랑이의 말을 듣는 것은 그만두기로 하고, 내가 좋아하는 그 하늘의 얼굴을 대면했다.

 

“응. 뭐, 키우다가 좀 그러면… 다시 내보내면 되지.”

 

한쪽 다리가 밑으로 빠졌다. 나는 아슬히 매달린 채, 재차 앞발에 힘을 주어 노랑이의 팔에 매달렸다. 노랑이는 다시 한 번 나를 고쳐 잡았다.

 

“원래 밖에서 살던 애잖아. 괜찮아.”

 

노랑이의 웃는 얼굴과 그 뒤로 만연한 하늘의 분홍물이 겹쳐보인다. 노랑이가 ‘괜찮다.’고 말할 때 마다 괜히 안도감이 들었다. 나는 아마 저 하늘의 얼굴만큼 노랑이의 얼굴을 좋아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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