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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 가작 - 개의치 마시고
  • 창원대신문
  • 승인 2019.03.07 17:17
  • 호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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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의치 마시고

양지혜 / 인문대·국어국문학과 1학년

 

 

전구가 나간 지 몇 달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익숙해 질 대로 익숙해진 컴컴한 부엌으로 들어선다. 최씨는 뭉둑한 손끝으로 기름 때 눅눅한 싱크대의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 찾는다. 이 서랍이 아닌가. 다시 차가운 방으로 들어가 이번엔 먼지 묻은 서랍은 열어본다. 담배는 한 개비도 들어있지 않은 찌그러진 담뱃갑, 녹슨 손톱깎이, 그 밑에 깔려있는 누런 종이봉투. 언제부터 이 서랍 속에 있었는지도 모를 빛이 바랜 종이봉투. 그 종이봉투 한 장을 꺼낸다. 최씨는 이제 그 밑의 서랍을 열어 펜을 꺼낸다. 꺼낸 종이봉투와 펜을 나란히 상위에 놓는다. 상 위에는 며칠 전에 먹은 라면이 냄비 채로 놓여있고 십원짜리 동전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최씨는 펜을 들고서는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하다. 최씨의 손끝에는 약간의 망설임도 약간의 슬픔도 묻어있는 것 같다.

 

-

 

일주일전 저녁이었다. 최씨는 여느 날과 같이 텅 빈 방안에 누워 보지도 않는 티비를 틀어놓고 있었다. 그러다 누군가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몸을 일으켰다. 집주인이었다.

 

“아이고, 집에 계셨네. 너무 조용해서 어디 나가신 줄 알았어요.”

 

집주인은 퀘퀘묵은 냄새 때문인지 방안으로 더는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최씨의 어깨 너머로 방을 슬쩍 엿보는 듯 했다.

 

“저 어르신, 다른 게 아니고.. 저번에 한번 말씀드렸던 것 있잖아요.. 그.. 저희 집이 이제 팔렸으니까.. 이제 슬슬 비워주셔야 해서….”

 

“.....”

 

“일주일 안에로는 비워주셔야 해요.. 저희도 그래야 뒷정리를 하고 나가서.. 그럼 주무셔요”

 

그 말을 끝으로 무거운 철문이 닫히자 최씨는 티비를 끄고 담배를 찾아 피웠다. 방 안은 금방 담배연기로 자욱해졌고 담배연기가 눅눅한 베개에 스며들었다. 마지막 한 숨을 뱉으며 최씨는 동사무소에서 받아 걸어놓았던 달력 앞으로 갔다. 달력은 두 달이나 전인 8월에 머물러 있었다. 8월, 9월, 최씨는 달력을 북 북 시원하게 찢어 내렸다. 그러곤 한참을 서서 오늘이 며칠인지 힘겹게 기억해내려는 듯 했다. 그러다 갑자기 창문을 열기도 했다. 녹이 슬어 뻑뻑한 창틀이 기괴한 소리를 냈다. 꽤나 쌀쌀한 바람이 들어왔다. 바깥 놀이터에선 아이들 노는 소리가 들리고 옆집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가을이 오는가.”

 

-

 

집주인이 요구한 날짜가 내일로 다가왔다. 최씨는 마음 한구석이 찜찜한 듯 새벽 내내 뒤척였다. 창밖이 점차 푸른색으로 변하고 참새소리가 조그마히 들릴 때 쯤 최씨는 잠자기를 포기한 것인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최씨는 방 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그러다 최씨의 시선은 먼지 쌓인 티비 위로 고정되었다. 티비 위에 놓인 액자 속엔 누군가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최씨는 미지근한 물을 병 채로 벌컥벌컥 마셨다. 그러고는 담배 한 대를 태우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은 10월인데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축축한 가운데 또 한기가 돌았다. 배수구멍에는 담배꽁초가 담뱃재와 함께 뭉쳐있었다. 최씨는 거울을 지긋이 쳐다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표정이 이랬다 저랬다 했다. 피우다 만 담배를 배수구에 꽂아 넣고 면도기를 집어들었다. 최씨는 면도크림 하나없이 날이 뭉둑한 면도칼로 오랜만에 면도를 했다. 덥수룩한 털들이 물에 씻겨 내려갔다. 말끔해진 모습으로 다시 거울을 쳐다봤다. 턱을 이리저리 만져보기도 하고 머리에 물을 축이기도 했다.

평소보다 말끔한 모습으로 화장실에서 나온 최씨는 이번엔 서랍을 열어서 옷 몇 가지를 꺼냈다. 셔츠 단추를 꼭꼭 잠그고, 언제 마지막으로 입었는지도 모르는 오래된 자켓을 걸쳤다. 하나뿐인 자주색의 넥타이도 꺼내 매어보고, 제일 아끼는 중절모도 꺼내 써봤다. 최씨는 어깨위의 먼지를 털어내는 둥 옷매무세를 다듬는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간만에 단장을 한 최씨가 향한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집 앞 놀이터였다. 최씨는 앙상하게 드러난 등나무로 그늘진 벤치에 앉았다. 담배 한 대를 태우며 근처를 둘러보았다. 아침이라 분주한 상가주인은 셔터를 올리고 가게 앞을 쓸고 있었다. 꽤나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아이를 데리고 놀이터를 나온 여자도 있었다. 어떤 남자는 서류가방을 들고 급하게 버스정류장 쪽으로 뛰어갔고 한 구석에선 환경미화원이 놀이터의 쓰레기통을 비우고 있었다. 모두들 제 할 일로 바빠 보였다. 최씨는 담배를 태우며 그들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최씨의 외출은 그것이 전부였다.

 

-

 

전구가 나간 지 몇 달이 지났는지도 모른다. 어둠이 익숙해 질 대로 익숙해진 컴컴한 부엌으로 들어선다. 최씨는 뭉둑한 손끝으로 기름 때 눅눅한 싱크대의 서랍을 열어 무엇인가 찾는다. 이 서랍이 아닌가. 다시 차가운 방으로 들어가 이번엔 먼지 묻은 서랍은 열어본다. 담배는 한 개비도 들어있지 않은 찌그러진 담뱃갑, 녹슨 손톱깎이, 그 밑에 깔려있는 누런 종이봉투. 언제부터 이 서랍 속에 있었는지도 모를 빛이 바랜 종이봉투. 그 종이봉투 한 장을 꺼낸다. 최씨는 이제 그 밑의 서랍을 열어 펜을 꺼낸다. 꺼낸 종이봉투와 펜을 나란히 상위에 놓는다. 상 위에는 며칠 전에 먹은 라면이 냄비 채로 놓여있고 십원짜리 동전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다. 최씨는 펜을 들고는 골똘이 생각에 잠긴 듯하다. 최씨의 손끝에는 약간의 망설임도 약간의 슬픔도 묻어있는 것 같다.

최씨는 펜 끝으로 봉투위에 몇 자를 적기 시작한다. 오랜 고뇌의 끝에 적어낸 글자는 힘이 들어가 꾹꾹 눌러 쓴 티가 난다.

 

-

 

제법 쌀쌀한 오후였다. 여느 날과 같이 놀이터는 아이들 뛰어노는 소리로 씨끌벅적했다. 등나무 밑 벤치에서는 아이엄마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늘 그렇듯 자기 남편이야기, 어느 집 여자가 보험사기를 당해 빚을 졌다는 이야기, 때로는 누군가의 헌담이 오가기도 했다.

 

“아참, 다들 그 소식 알지? 민수엄마네.. 어휴 운도 없지. 세상 사는 게 참..”

 

“네? 민수어머니라면 이번에 집 팔고 아파트로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뭔 일 있대요?”

 

“아니, 여태 모른단 말이야? 며칠이 지났는데,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 그런가.. 민수엄마네 세 들어 살던 할아버지 있잖아. 그 전세금 지원받아서 살던 할아버지.. 민수엄마가 집 팔렸다고 방 빼달라 하니까 냅다 자살해버렸다고하더라.. ”

 

“네? 정말요? 그런 일이.. 민수어머니 어떡해요.. 집은 예정대로 팔기로 했대요?”

 

“그래, 그래서 우리 다 조용하게 넘어 가는 거야. 소문 퍼지면 우리 집값도 같이 끝이야 끝. 글쎄, 방 빼기로 한 날까지도 안 나가서 민수엄마가 찾아갔는데 인기척이 없더래. 이상해서 문을 따고 들어가니까 목매달고 죽어 있더라는 거야. 방안에는 냄새가 진동하고..”

 

“어머머... 무서워라.. 민수어머니 심리치료라도 받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대요?”

 

“무슨 업체에 조용히 넘겼다던데, 요새는 그런거 처리해주는 업체가 따로 있나봐? 하여튼 찾아보니 자식도 없고 마누라도 죽은지 오래 됐더라고. 이렇게 보면 자기 집 아닌 곳에서 죽는 것도 민폐라니까, 민폐. 치우는 사람도 생각해야지.”

 

-

 

10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담배 찌든 냄새와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김씨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독하구만. 꾸물대지말고 서두르자고.”

 

“저 실장님 저기..”

 

같이 일하는 부하직원이 김씨에게 봉투 한 장을 건넸다.

 

“뭐야?”

 

“ 여기 살던 분이 남기신거 같은데.. ”

 

빛이 바랜 누런 종이 봉투, 속에는 10만원 정도의 현금이 들어있었다. 돈을 확인한 김씨는 봉투를 앞으로 돌려 꾹꾹 눌러 쓰여진 글씨를 발견했다. 김씨의 표정이 살짝 일그러졌다.

 

“거참, 이 할아버지 별나네.. 죽기는 왜죽어서.. 바보같은.. 꾸물거리지말고 빨리 가구부터 다 빼. 티비랑 서랍장부터 옮겨. 시간 없어. ”

 

김씨는 누런 봉투를 자신의 작업복 안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러고는 티비를 옮기기 시작했다. 움직일 때 마다 가슴속에서 발각발각하는 종이 구겨지는 소리가 났다. 김씨는 티비를 옮기다 말고 서랍장을 옮기고 있는 다른 부하직원 하씨를 불렀다.

 

“하, 이거 신경이 쓰여서 일을 할 수가 없네. 이것 좀 네가 가지고 있어라. 집주인한테나 갖다 주든지.”

 

김씨는 하씨에게 아까 받은 누런 봉투를 건넸다. 하씨는 군말 없이 돈 봉투를 받아 반으로 접어 바지 뒷주머니에 넣었다. 둘이서 옷장을 옮기고 바닥의 오물을 닦고 이불을 버리는 동안 김씨의 가슴 속에선 자꾸만 발각발각하는 종이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저녁이 되어 일을 끝마친 김씨네 일행은 간단하게 저녁이라도 먹으려는 듯 하였다.

 

“실장님, 오늘 날도 제법 쌀쌀한데 소주 한 잔 어떻습니까. 아 맞다. 아까 전에 저한테 주신 봉투에 그거, 돈 아닙니까? 이걸로 오늘 삼겹살에 소주 한 잔 하러 가지요?”

 

하씨의 말을 들을 순간 김씨는 얼굴이 붉어졌다.

 

“야 이놈아. 그게 어떤 돈인데.. 어떤 돈 인줄 알고.. 너 알아서 다 해라. 나는 안 먹을 테니까. 회식도 너네들끼리 하라고. ”

 

김씨는 말을 끝내고 기분이 상한 듯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황당한 김씨의 행동에 하씨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어떤 돈이기는..’ 하며 뒷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냈다. 반으로 접혀있던 누런 봉투를 펼쳐 본 하씨는 좀 전의 김씨처럼 얼굴이 붉어진다. 다른 직원들도 하나 같이 봉투를 보고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씨는 이제 어찌해야할지 모르겠어서 꾹꾹 눌러 쓰여진 글씨를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그릇 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

 

-

 

“다음 소식입니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전셋집에 살던 60대 독거노인이 퇴거 요청을 받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자신의 장례비와 수도요금, 시신을 수습해줄 사람을 위한 ‘국밥값’ 봉투를 남겨서 화제가 되었는데요. 마지막 배려가 담긴 노인의 행동에 많은 네티즌들이 애도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영미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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