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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 당선 - 해피엔딩 퍼플스토리
  • 창원대신문
  • 승인 2019.03.07 17:16
  • 호수 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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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엔딩 퍼플스토리

정민송 / 사회대·신문방송학과 4학년

 

 

1.

 

진열장 유리 너머 딱 하나 남아있던 홀 케이크가 조금 전 나갔다. 평소보다 두 배 가량 준비한 케이크가 예상한 시간보다 더 일찍 동난 셈이었다. 그 후로도 몇 명의 손님들이 텅 빈 케이크 진열장을 확인하고는 느릿한 발걸음으로 보라색 문을 나섰다. 이제 막 여섯 시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케이크가 다 나갔대, 이브니까 어쩔 수 없지 뭐.”

 

문이 닫히며 내는 마찰음 사이로 통화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라벤더 컬러로 전체를 도색한 철제문은 사람이 드나들 때면 콘트라베이스처럼 낮게 울었다.

 

빈손으로 문을 나서는 또 다른 손님에게 죄송합니다, 안녕히 가세요, 하고 인사를 마친 해성이 <케이크 매진되었습니다>라 적힌 팻말을 문 바깥 손잡이에 걸고선 마침내 카운터 안쪽 작은 간이의자에 앉았다. 하루 종일 엉덩이는커녕 발바닥 붙일 시간도 없이 바빴던 해성의 모습을 지켜본 터라 그런지 앉아서 종아리를 통통 두드리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제야 몸을 일으켜 소리 없이 가벼운 움직임으로 가게를 나섰다. 베이커리 마감까지는 두 시간도 채 남지 않았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기 위해선 옷을 갈아입을 필요가 있었다.

 

지나치는 쇼윈도마다 가게 안의 조명과 바깥 거리의 풍경이 뒤엉켜 금빛 막을 씌운 듯했다. 꼬마전구를 둘둘 감은 가로수와 빽빽하게 거리를 채운 사람들 사이의 틈을 캐롤이 채웠다. 가사는 모르지만 흥얼거릴 수는 있는 그 멜로디들을 따라 허밍을 하며 걷다보니 한 시간이 금세 흘렀다. 따뜻한 분위기 속을 떠돌던 걸음이 멈춘 곳은 세미정장 한 벌만이 진열된 작은 맞춤정장 가게 앞이었다. 유리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군데군데 그 정장을 한참 뜯어보았다. 허리선이 없이 뚝 떨어지는 라인이 좋았고 얼추 보기에 사이즈도 적당해 보였다. 검정색이 아니라는 것과 두께가 얇은 가을 상품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지만, 색깔로 타박 받을 일도 날씨에 구애받을 육체도 없으니 상관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재킷의 깃에 보라색 스티치가 포인트로 박혀있는 게 마음에 들었다. 라벤더 꽃 색의 보라색.

 

너 보라색 되게 잘 어울린다.

 

좋아하는 색을 떠올려서일까. 갑자기, 언젠가 얼굴 화끈거리게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희미한 잔상으로 남아있는 그날의 기억에 날씨도 봄으로 되돌아가는 것만 같았다. 보라색을 좋아하게 된 봄, 보라색이 잘 어울린다 말했던 사람을 좋아하게 된 봄.

 

추억 아닌 추억에 잠기다 쇼윈도를 가리려 커튼을 치는 사람의 움직임에 정신을 차렸다. 서둘러 어깨와 발끝이 맞을 정도의 거리를 두고 쇼윈도에 모습을 비춰보았다. 진열된 정장은 여전히 그곳에 있었지만 그 형상이 착 달라붙었다. 여기저기 옷매무새를 살펴보다 굵직한 보라색 실이 박힌 길을 따라 손끝을 움직였다. 간지러웠다.

 

보라색 되게 잘 어울린다.

 

물결의 파장처럼 희미하게 폭을 넓히는 목소리가 끊임없이 머릿속에서부터 흩어졌다. 거리를 메울 듯 울려 퍼지는 캐롤과 목소리가 함께 뒤섞여 전혀 새로운 멜로디를 만들지만 왠지 낯설지는 않았다. 생경한 듯 익숙한 모순 덩어리의 소리들 사이로 기계음이 섞인 둔탁한 울림이 파고들었다. 소리가 나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려 광장의 시계탑을 확인하고서야 걸음을 서둘러 베이커리로 돌아왔다.

 

 

막 마감 시간을 넘긴 베이커리 앞은 해성이 문을 잠그느라 쪼그려 앉은 채였다. 차가운 철문의 라벤더 컬러와 붉게 변한 손끝의 대비가 선명했다.

 

“안 어울리게 왜 새카만 옷을 입었데.”

 

들리지도 않을 말을 중얼대다 서둘러 해성의 뒤를 따라 걸었다. 디테일이 단순한 검은 코트 아래로 여유 있는 통의 검은 바지와 마찬가지로 검은 구두가 이어졌다. 반짝거리는 이브의 거리 속에서 올 블랙 차림의 해성은 오히려 눈에 띄었다.

 

오래 전, 해성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여러 새들의 깃털을 주워 제 몸을 총천연색으로 치장한 까마귀 이야기. 뒤이어 해성은 검은색도 눈에 띌 수 있지 않겠냐고 말하며 웃었다. 그렇게 말하던 해성은 정작 개나리 색 후드에 데님 서스펜더를 입고 있었지만. 생각해보니 그때는 선뜻 이해되지 않는 말에 그게 무슨 소리냐며 웃어넘기고 말았는데 지금은 해성의 말을 조금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가장 눈에 띄는 까마귀가 발 디딜 틈 없이 화려한 번화가에서 조금씩 멀어져갔다. 온통 금빛 반짝임이 가득했던 거리는 일정한 간격으로 밝아졌다 어두워지기를 반복했다. 해성의 걸음 속도는 어두운 정도에 비례했다. 가로등 빛이 닿지 않는 거리가 꽤나 길어진 후에야 해성은 차갑고 환한 주광색 빛 아래 멈춰 섰다. 간간히 입 안을 스치듯 뱉어져 나오는 숨을 고른 해성이 코트 안쪽 주머니에서 담배 하나를 꺼내 곧장 입에 물었다. 드문드문 곡소리가 이어지는 문 너머와 그 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시야에 걸리지 않을 정도의 거리였다. 시간이 꽤 걸릴 것임을 알아서 라이터 부싯돌이 부딪치는 소리를 뒤로하고 먼저 빛을 뿜어내는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2.

 

들어서자마자 눈에 비친 교복을 입은 영정사진 속 얼굴이 조금 전 쇼윈도에 비춰본 것과는 너무 다른 표정을 하고 있었다. 부모님이 가지고 있을 가장 최근 사진이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오년도 더 된 사진 속 모습이 낯선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조문객의 수는 한눈에 셀 수 있을 만큼 적었고 그마저도 대부분은 모르는 얼굴들이었다. 개중 드문드문 아는 얼굴이 보일 때면 조금 더 오래 시선이 따라붙었다. 예은이, 수빈이, 다현이, 대학 삼년을 내내 붙어 다니던 친구들은 서로의 손을 꼭 붙들고 장례식장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익숙했던 엄마의 친구들은 본인들이 더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와서는 엄마의 손을 붙들고 어떡하니, 어떡해, 대신 곡을 해주었다. 검은 양복을 갖춰 입고 절차에 따라 향을 피워 꽂은 아저씨들은 군더더기 없이 절 두 번을 하고선 상심이 크시겠습니다, 그래도 기운 내셔야죠, 마치 짜기라도 한 듯 비슷비슷한 말을 남기고 좌식 테이블이 늘어선 곳으로 발을 옮겼다.

 

짧은 시간동안 여러 얼굴이 드나드는 것을 관망하다 이내 몸을 일으켰다. 신발을 벗고 들어선 모르는 두 얼굴을 따라 사진을 향해 두 번 절을 했다. 새삼 참을 수가 없어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람이 빠져 휘날리는 풍선처럼 온몸을 흔들어가며 웃었다. 아무에게도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게 다행이었다. 보이지 않으면서 소리만 들린다면 귀신이 있는 것이라며 한바탕 난리가 날 게 뻔했으니까. 내 빈소에서 절을 하고 있는 나, 뒤에 있는 당사자를 모르고 사진에다 절을 하는 사람들. 둘 중 어느 쪽이 더 우스운 꼴인지 생각할수록 웃음이 멎지를 않았다.

 

한참 터져 나오던 웃음이 멈춘 것은 반갑지 않은 얼굴을 발견한 것에 대한 반사적 행동이었다. 무슨 염치로 여길 와? 미친 거 아냐? 어차피 들리지 않을 것임을 알면서도 입 안에서만 말을 굴렸다. 귓속으로 날아드는 엄마의 목소리에 혀가 굳어버렸기 때문이었다.

 

“해인이 남자친구였다고?”

 

“네. 처음 뵙겠습니다. 이재형입니다.”

 

오늘 들은 중 가장 밝은 목소리. 죽은 딸에게 여자친구가 있었다는 사실은 절망일 테지만 남자친구가 있었다는 거짓은 희망일 테다. 멈춰 선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나의 남자친구였다는 사람의 얼굴을 가만히 응시하는 것뿐이었다.

 

씨발, 니가 진짜 레즈면 왜 나 보면서 웃었는데? 너 뭐 꽃뱀 그런 거냐?

 

엄마를 향해 웃고 있는 이재형의 얼굴 위로 내 어깨를 밀치던 그날의 얼굴이 여백 없이 겹쳐졌다.

 

 

학내에 성소수자 모임이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친목도모 동아리였지만 따로 신입생을 모집하지도, 각종 행사 때 동아리 부스를 운영하지도 않았다. 어디서 누구에게 공격을 받을지 모르는 위험 때문에 초대 회장이 결정한 사안이라고 했다. 허울뿐인 비공식 동아리의 동아리방은 일종의 쉼터 역할을 했다. 나름 배운 젊은 세대가 모인 캠퍼스에서 누구의 눈도 신경 쓰지 않고 나로써 존재해도 되는 곳은 그곳이 거의 유일했다. 가장 마지막까지 차별받는 소수집단이 성소수자라는 말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이재형과는 그곳에서 처음 만났다. 묻지도 않았고 물을 생각도 없었는데 먼저 나서서 자신은 게이라고 했다. 해방감이 큰 사람인가, 그렇게만 생각했다.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성소수자들 중에선 그 규율을 못견뎌하는, 아니 규율에 어긋난 사람이 되는 것을 버거워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그렇게 억눌러온 기간과 강도가 클수록 결과값인 해방감이 큰 것 또한 당연했고, 그 중 몇몇은 드러낼 수 있는 곳에선 무엇이든 더 가감 없이 표출했다.

 

“사귀는 척만 하면 너도나도 동성애자라고 들킬 위험이 없어지니까 손해 볼 건 없잖아.”

 

이재형의 모든 말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건 그래서였다. 다짜고짜 제가 게이라 말하던 선언에도, 가짜커플 행세를 하자던 터무니없는 제안에도, 결과값이 좀 많이 큰 사람이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예외에 익숙할 만큼 익숙했기 때문인지, 때때로 그 예외가 가장 끔찍한 방향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동아리는 그해 겨울을 마지막으로 해산했다. 아니, 해산되었다. 이재형의 말도 안 되는 제안이 있은 후로 겨우 한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그 사이 나는 남자를 꼬여낸 꽃뱀 레즈비언이 되어있었고, 이재형은 아무것도 모르고 이용당한 피해자가 되어있었다. 지금에야 내게 꼬리표마냥 따라붙은 단어가 얼마나 불완전성으로 뒤덮였는지 생각할 수 있지만, 그때는 그저 모든 게 한심했고 화가 났고 억울했고 그래서 무시하다 결국 포기했다. 그렇게 졸업까지 겨우 일 년을 남겨둔 대학을 떠났다.

 

소문 속에서도 현실에서도, 이재형은 물론 게이가 아니었다.

 

 

3.

 

조문객이 모두 돌아간 늦은 밤의 빈소는 꽤나 공허감이 들었다. 그리 많은 사람이 채우고 있던 공간이 아닌데도 아무도 없는 것과는 차이가 컸다. 사람들이 빠져나간 공간을 코 고는 소리가 채웠다. 소리를 따라가니 간이 칸막이들로 보이지 않도록 만든 좁은 공간에 잠든 아버지가 있었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았다지만 겨우 하나 있는 딸의 장례식인데.

 

“어떻게 삼일을 내리 잠을 청할 수 있는 거지.”

 

몸을 뒤척이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원망인지 연민인지 모를 감정을 하나 꺼내어 발음했다. 그 이름 모를 감정을 담은 시선은 천천히 아버지를 훑어 내리다 다리 위에 대충 놓인 손등에서 멈췄다. 긁혀서 생긴 가늘고 긴 흉터. 언뜻 도드라진 핏줄처럼 보이는 그 흉터를 의식하기 시작하자 없는 속이 메스꺼운 기분이었다.

 

 

학교를 그만둔 후 문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이제와 가늠해보면 한 달 쯤 되었던 것 같다. 한 칸짜리 좁은 자취방에서 죽은 듯이 살았다. 때때로 손에 잡히는 것들을 읽고 보고 들었으며 사흘 걸러 무언가를 씹거나 삼키긴 했지만 이게 정말 살아있다 할 수 있는 건지 스스로 의심스러웠다.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방 안의 모든 것이 멈춘 것만 같았다. 가끔 잠을 설치게 했던 초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루는 그 소리마저 그리워 간이책상 위에 풀어 둔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창밖이 어두웠고 시침이 숫자 삼을 조금 지났으니 한밤중이구나 싶었다. 밤낮 따지지 않고 졸릴 때 자고 눈이 떠지면 깨었으니 날짜도 시간도 알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부모님이 현관문을 열어젖힌 건 그날 오후 세 시쯤이었다. 햇빛에 눈이 부셨고, 시침은 여전히 숫자 삼을 조금 지나있었다. 어쩌면 시계가 고장 난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지금에서야 든다. 부모님 손에 이끌려 짐을 싸고 부모님이 계시는 본가로 내려왔다. 내가 문을 마지막으로 나서던 순간까지 살아서 몸집을 불리던 건 작은 냉장고 뒤에서부터 퍼진 곰팡이 뿐이었다.

 

해성을 다시 마주친 것은 본가에 내려오고도 한참이 지나서였다. 어, 하는 단말마의 음성만 남긴 내게 해성은 베이커리를 한다고 말했다. 그 후로 종종 찾아가 해성이 만든 빵으로 식사를 대신하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 무렵 엄마께선 이제야 정신을 차렸냐며 기뻐하셨다. 아버지는 종종 탐탁지 않은 표정을 내비치곤 했으나 그뿐이었다. 원래도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적당히 무심한, 대다수의 아버지들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렇게 일 년이 흘렀다.

 

 

“더러운 년, 어디 남자가 없어서 여자랑.”

 

아버지는 말을 ‘뱉었다.’ 무어라 받아칠 새도 없이 뺨을 맞았다. 아버지가 뱉은 말 때문인지 뺨을 맞아서인지 귀가 멍했다. 남자가 없어서 여자랑. 차마 잇지 못한 그 뒤의 말을 이미 들은 것 같았다. 아직 들려있는 아버지의 오른손에서는 피가 배어나왔다. 유독 날카롭던 협탁 모서리에도 같은 붉은빛이 맺혀있었다.

 

“이제 좀 정상적으로 사나 했더니, 해인아 네가 나한테 어떻게 이래.”

 

엄마는 내가 '정상'이 아니라서 울었다. 입 안의 수분이 바싹 말랐다. 나를 낳은 부모에게 존재 자체를 부정 당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그날 밤 무작정 캐리어 하나만 챙겨 집을 나섰다. 삶의 공간에는 상처가 스며있다던 한 소설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 공간을 떠나게 만드는 이유, 그리고 그 공간에 머물게 만드는 이유. 모두 상처라는 이름으로 스며있는 기억들이 아닐까. 잠귀가 밝은 엄마는 부스럭대는 이불 소리에도 종종 깨곤 했다. 건물 전체가 잠든 새벽의 공기를 도어락 소리가 선명하게 갈랐다. 여전히 집안은 고요했다.

 

떫은맛이 났다.

그날의 일기엔 여섯 글자만이 적혀있다.

 

 

몸을 뒤척이는 움직임에 아버지가 걸친 싸구려 상복에서 까슬한 마찰음이 생겼다. 상주 자리에 앉은 채로 졸던 엄마는 그 소리에 놀란 듯 주위를 둘러보다 하품이라도 하려는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차라리 내가 낸 상처였다면 나는 아버지를 조금은 이해했을까, 이해하려 스스로를 설득하지 않았을까. 죽은 자가 산 사람에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연민 같은 감정에 잠시 고민하다 눈을 감았다. 메스꺼운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찬 공기가 절실해 도망치듯 문을 빠져나왔다. 급히 문을 향해 돌아서던 순간, 돌아누운 아버지에게서는 더 이상 손등의 흉터를 볼 수 없었다. 피부가 아닌 소리로 바람의 존재를 느끼고서야 깨달았다.

 

차고 뜨거운 것을 느낄 수 없는 주제에 핑계가 필요했던 건가.

 

 

4.

 

도착한 후로 세 시간이 흘렀음에도 해성은 같은 자리에 서 있었다. 처음 담배를 꺼내고는 연달아 세 개비를 피운 모양이었다. 검은 구두 앞에 떨어져있는 다 태운 재와 꽁초가 냉기에 굳어있었다. 해성의 엄지손가락이 휴대전화 액정을 천천히 문질렀다. 무엇을 보는 걸까 궁금해 슬쩍 다가가보지만 이내 잠금 버튼을 누른 탓에 볼 수 없었다. 검은 화면에 해성의 얼굴만이 어슷하게 비쳤다.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손은 이내 처음처럼 다시 코트 안으로 향했고 비슷한 크기의 상자 하나를 꺼냈다. 마지막 남은 담배 한 개비가 상자를 빠져나왔다. 라이터를 몇 번 튕기자 불이 붙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해성의 손가락 사이에서 다 탄 꽁초 하나가 더 떨어지고, 동시에 시선이 내가 선 쪽을 향했다. 내 뒤의 장례식장 입구를 바라보는 것일 텐데도 속이 뜨끔했다. 해성과 똑바로 눈을 마주할 때면 느꼈던 모든 걸 꿰뚫리는 것만 같던 기분, 속과 겉을 뒤집어놓은 듯 했던 그 느낌은 여전했다. 보이지 않을 게 당연함에도 보이는 게 아닐까 착각할 정도로.

 

언제나 경계가 선명했던 눈동자는 작지만 여문 손끝이나 늘 어깨 위에서 끊기던 머리카락, 그리고 곧게 펴진 어깨처럼 해성과 잘 어울리는 것 중 하나였다. 그 선명한 눈동자의 경계만큼 항상 반듯하게 흔들림 없던 해성의 시선은 늘 목적지가 명확했다.

 

 

“야, 해성아, 해인이 뚫리겠다.”

 

“쟨 좀 뚫려도 괜찮아.”

 

“괜찮은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할 문제지. 그리고 안 괜찮거든?”

 

 

해성의 시선의 목적지가 줄곧 나였음을 처음 깨달은 건 이제 막 스무 살이 되었던 날의 봄.

 

“야, 근데. 너 보라색 되게 잘 어울린다.”

 

“어? 아, 그래?”

 

 

그리고 그 목적지가 한 번도 변한 적 없음을 깨달은 건 사 년이 지난 후의 봄.

 

“넌 여전히 보라색 좋아하네. 잘 어울려.”

 

“그럼. 좋아하지, 여전히.”

 

그날, 해성이 뻗어온 손에 나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셔츠 소매에 수놓아진 보라색 라벤더 꽃을 만지작거리는 손끝이 여전히 단단했다. 반죽을 하고 쿠키를 구워내는 베이커리를 운영하는 데에 잘 어울리는 손이었다. 여전히 어깨 위로 똑 떨어지는 단발도, 안으로 굽지 않고 반듯한 어깨와 날개뼈도 잘 어울렸다.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자신과 잘 어울리는 사람.

 

“나도 좋아해, 여전히.”

 

한순간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손에서 시작해 머리와 어깨를 찬찬히 뜯어보던 눈길을 들켰을 텐데, 그런 것에 대한 걱정이나 부끄러움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이유 모를 안도감에 무언가 마음속에서부터 탁-하고 끊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 잘 도망쳤구나. 입 안이 바싹 마르는 떫은 감각으로부터, 잘 도망쳐왔구나.

 

 

하지만 산 사람들의 세계에 ‘항상’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바싹 마른 내게 촉촉한 문장을 실어 건넨 그날의 해성의 눈빛 위로 일 년 하고도 팔 개월이 더 지난 지금의 얼굴이 희미하게 덮였다.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었을 것만 같던 선명한 눈동자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에는 해성의 눈동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만 같았다.

 

해인아, 내가 저 문을 통과할 수 있을까.

들어가면 그 후엔 무슨 말을 해야 할까.

어떤 단어를 골라 나를 설명할 수 있을까.

 

마치 답해줄 사람을 기다리듯, 해성은 삼십분을 더 그 자리에 서 있고서야 발을 옮겼다.

 

 

5.

 

신발을 벗고 빈소에 들어선 해성이 향을 피워 꽂는다. 두어 걸음을 뒤로 물러 한 번 절을 올리고는 고개를 채 들지 못한다. 바로 한 번 더 절을 하려 무릎을 굽히지만 발끝이 떨리는 것만은 어찌 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인기척에 감겨오는 눈을 뜬 엄마와 막 절을 마친 해성이 서로를 향해 고개를 숙인다. 잠깐의 침묵이 이어진 후, 해성은 아까와는 전혀 다른 눈을 하고 차분히 입을 연다.

 

“안녕하세요, 하해성이라고 합니다.”

 

“아, 네. 해성씨, 와줘서 고마워요.”

 

“아뇨, 오히려 너무 늦은 시간에 찾아온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두 사람이 주고받는 문장 사이로 보통의 대화보다 조금 긴 호흡들이 자리를 잡는다. 둘 모두 고르고 고른 단어들로 가장 정제된 문장을 뱉고 있기 때문일 테다.

 

“우리 해인이랑은 어떤,”

 

어떤 사이, 라고 물으려던 엄마는 작게 심호흡하곤 단어를 바꾸어 발음한다.

 

“해인이랑은 친구였나요?”

 

 

친구, 였다. 고등학교에서 가장 먼저 친해진 게 해성이었다. 삼년을 내리 같은 반이었다. 거의 한 몸처럼 붙어 다니면서도 이쯤 되면 인연이 아니라 악연 아니냐는 농담을 종종 주고받았다. 성이 같았고 이름의 공통된 해 자도 같은 바다 해를 썼다. 때문에 쌍둥이가 아니냐는 친구들의 질문도 종종 받았다. 처음에는 무슨 소리냐며 손과 고개를 함께 저어가며 웃었지만 몇 번 경험이 쌓인 후로는 부러 글쎄, 라며 말끝을 흐렸다. 애매한 내 대답에 해성은 같이 웃을 뿐이었다.

 

 

“아, 네. 친구… 맞습니다.”

 

아주 잠깐의 망설임 사이에 친구였던 시간들이 꾹꾹 눌러 담긴다. 그 망설임이 오히려 친구만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음을 그곳에 있는 그 누구도 모를 리가 없다. 그럼에도 해성은 친구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고, 엄마는 그 말을 믿으려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다.

 

“해인이, 보라색을 좋아했어요.”

 

해성이 망설이던 말과 함께 작은 유리병 하나를 건넨다. 엄마는 해성의 손에 들린 보라색 꽃이 가지런히 담겨있는 병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뻣뻣하게 마른 꽃은 생화였지만 생화가 아니다. 아무도 움직이지도 말하지도 않는 시간 동안 무어라 보탤 단어를 고르던 해성은 선뜻 말을 이어붙이지 못하고, 그 긴 침묵 사이로 엄마의 손이 슬쩍 비집고 들어온다.

 

“미안하고 고마워요.”

 

굳이 언어를 통하지 않고도, 어쩌면 언어를 통하지 않아야만 전달되는 뜻이 있다. 미안하고 고맙다고,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흔한 인사치레로 해석될 문장은 우리에겐 온전히 숨은 뜻을 드러낸다. 해성은 꽃이 담긴 유리병을 든 제 손을 가만히 감싸 쥔 엄마에게, 미안하고 고맙다는 엄마의 말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다. 한참을, 아주 한참을 숙이고 있다가 손이 떨어지고서야 천천히 문을 나선다.

 

 

검은 구두 한 쌍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간다. 걸음 속도는 밝은 정도에 비례한다. 해성은 가로등 빛이 닿는 거리를 급히 걷다 어둠이 더 짙은 곳에서는 숨을 고른다. 번화가로 들어설수록 불규칙한 걸음과 호흡의 박자가 어긋난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까지 거리의 불빛들은 꺼질 줄을 모른다. 대낮보다 더 눈부신 거리는 아직도 사람들로 가득하다. 해성은 그곳에 가득한 행복한 얼굴들을 둘러본다.

 

“성냥팔이 소녀라도 된 것 같으려나.”

 

“성냥팔이 소녀도 아니고 이게 뭐람.”

 

들리지 않을 내 목소리 위로 해성의 목소리가 동시에 울린다. 놀랄 새도 없이 웃음이 먼저 터져 나온다. 이브의 거리 속 올 블랙, 가장 눈에 띄는 까마귀는 어느새 부잣집 행복한 가족을 부러워하는 성냥팔이 소녀가 되어버린다. 정작 해성이 부러운 것은 따뜻한 벽난로도, 잘 구운 칠면조, 행복한 가족도 아니겠지만.

 

“블랙코미디의 결말은 좀 떫은 맛이네.”

 

동화의 뻔한 결말은 좀 부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그렇게 짐작할 뿐이다.

 

 

6.

 

옛날 옛적 작은 마을에는 보라색을 좋아하는 귀신아이와 빵을 만들어 파는 사람아이가 살았습니다. 둘은 라벤더 꽃밭에서 만나 수다를 떨며 친구가 되었어요. 하지만 둘의 가족과 주변에서는 두 사람을 향해 늘 잔소리를 했어요.

 

귀신이랑 친구를 한다고?

사람이랑 친구를 한다고?

 

그게 말이 돼?

 

두 아이는 잔소리들이 너무 싫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요. 귀신과 사람이 친구인 경우보다는 사람끼리 귀신끼리 친한 경우가 더 많았거든요. 그러던 어느 날 귀신아이가 사람아이에게 말했어요.

 

“우리가 정말 잘못한 걸까?”

 

그 말에 사람아이는 잠시 고민에 빠졌어요. 하지만 금방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는 대답했어요.

 

“친구가 되는 게 잘못이라면 그게 이상한 거야.”

 

고개를 끄덕이던 귀신아이는 사람아이에게 새끼손가락을 펴 보이며 말했어요.

 

“그럼 약속해. 나랑 평생 친하게 지내자.”

 

“그래, 좋아.”

 

둘은 사람아이의 손가락이 귀신아이의 손가락을 통과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새끼손가락을 꼭 걸고 약속했어요.

 

그 후로도 잔소리는 끊이지 않았어요. 가끔은 자기가 사람이라 속이는 귀신이나 귀신이라 속이는 사람이 두 아이를 속이려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사람아이는 귀신아이의 도움으로, 귀신아이는 사람아이의 도움으로 속지 않을 수 있었어요.

 

그렇게 둘은 매일 보라색 라벤더 꽃밭에서 함께 놀며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아마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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