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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현대판 연좌제, 연대책임은 마땅한가
  • 창원대신문
  • 승인 2018.12.10 08:00
  • 호수 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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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유명 인사들 가족들의 사기 범죄사실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일이 아닌 가족 및 친인척들의 범죄사실로 인해 불똥을 맞은 사람들도 있었다. 최근에는 래퍼 도끼 모친의 사기가 세간의 화제였으며, 그전에도 백종원 부친의 성추행 파문, 래퍼 비와이 부친의 횡령 등의 사례를 미디어를 통해 심심치 않게 접해왔다. 특히 백종원은 부친의 성추행 파문으로 인해, 당시 개국공신이라 불릴 정도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MBC 마이리틀 텔레비전>에서도 잠정 하차를 선언하기도 했다. 덧붙이자면, 부친의 성추행 혐의는 무혐의로 결론 났으며, 백종원 외에도 타인의 범죄사실이나 의혹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이른바 현대판 연좌제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연좌제란, 범죄인과 특정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연대책임을 지게하고 처벌하는 제도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3조 3항에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여 연좌제를 금지했다. 이로써 연좌제는 공식적으로는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직접적인 처벌을 하지 않을 뿐이지 여전히 우리 사회 내에 존재하고 있다. 과거보다 더욱 치밀하고, 지독한 방식으로 말이다.

우리는 이미 어릴 때부터 연대책임의 폭력성을 겪어 봤다. “단 한 명이 틀린다해도, 다 같이 다시 합니다.” 초·중·고등학교 야영이나 수련회에서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유대감, 공동체 의식 등 좋은 말로 꾸며보지만, 사실 그 안에는 ‘너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받고, 그 사람들에게 눈칫밥 먹고 싶지 않으면 제대로 해라’는 암묵적인 명령이 담겨있다. 물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건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모두 같은 속도로, 실수 없이 완벽하게 움직이고 생각할 수 있겠는가. 연대책임이라는 말에 길들여지는 순간, 어느새 구성원들은 자신들에게 타인 몫의 책임을 떠넘기는 사람이 아닌 실수를 한 사람을 꾸짖기 시작한다. 분명 처음에는 “왜 다 같이 다시 하게 하는 거지?”라며 묻던 사람들이 말이다. 신기하게도, 처음엔 그 구조를 비판하던 사람들이 어느새 그 구조와 같은 모습으로 한 개인을 탓하게 된다.

범법 및 범죄를 단순히 실수라는 말로 그 무게를 가볍게 할 수는 없지만, 연대책임에서의 이런 양상은 연좌제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우리는 “누구누구 아버지/어머니가 범죄자라던데”, “그 부모에 그 자식이지”라는 말로 누군가를 가해자로 낙인 찍어버린다. 이런 명제들은 과거 공포 정치의 수단처럼, 범죄를 사전에 막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미 범죄가 일어났을 땐 또 다른 폭력을 낳곤 한다. 많은 부모가, 자식이, 연인이, 사람들이 타인의 행위로 인한 질타를 받고 불이익을 겪고, 같은 ‘가해자’로 불리며 사회에서 내몰린다. 결국 연대책임의 구조를 부당하다고 여겼던 개인들이 도리어 연대책임을 ‘강요’하는 셈이다.

과연 누가 이 기형적인 현실을 마땅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연좌제를 반대한다고 해서, 가해자의 범죄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고 그 범죄행위를 가볍게 여기는 것도 아니다. 다만, 괜히 불똥 맞은 사람들의 억울한 입장도 헤아려야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가해자를 비판하던 우리도, 사실 누군가에게는 폭력을 행사하는 또 다른 가해자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니체의 말마따나, 괴물과 싸우며 괴물이 되지 않도록 자신의 심연을 더욱 비춰봐야 할 것이다. 똑같은 가해자가, 방관자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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