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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연해있는 성 혐오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 창원대신문
  • 승인 2018.11.26 08:00
  • 호수 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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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는 현재 사람들의 성 혐오 현상으로 서로를 공격하기 바쁘다. 한 나라에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이 성별이 다르다는 차이점 하나로 온라인은 물론이고 오프라인에서 싸움이 일어난다. 최근 일어난 ‘이수역 사건’은 한국 사회에 퍼져있는 성 혐오 현상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예였다.

온라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수역 사건’은 국민 청원까지 오르면서 엄청난 비난 여론을 형성했지만 술자리 해프닝으로 밝혀졌다. 여기서 국민들의 분노를 샀던 것은 남자 4명이 여자 2명을 때렸다는 것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때린다고 얼마나 아프겠냐, 남자 4명이 여자 2명을 때려서 머리를 찢어지게 하냐 등의 댓글이 달리고 그에 수천개의 좋아요로 사람들은 공감을 표했다. 하지만 원인 제공은 여성들에게 있었고 여성들이 먼저 성 차별적 발언으로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이 밝혀졌다.

‘이수역 사건’ 뿐만이 아니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어떤 사건에서 여성과 남성으로 나뉘게 되면 각자의 성을 비판하고, 조롱하고, 혐오하는 행동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자신과 다른 성을 혐오하고 상처주는 행동을 할까. 그리고 이런 혐오를 통해 그들이 얻는 것은 무엇이며, 그들이 진정 원하는 사회가 이런 사회였을까 싶었다.

우리는 교육이 시작되는 아주 어린 나이부터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는 교육을 줄곧 받아왔다. 그리고 초등학생 때는 매년 양성 평등 글짓기 등의 활동으로 평등을 위한 사회를 힘써왔고 이러한 차이들이 차별을 낳아서는 안된다는 말들도 귀에 박히게 들어왔다. 상대방의 성을 혐오하는 사람들이 이러한 기본적 지식을 몰라서 이러는 것은 아니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자신이 받아왔던 사소한 차별들에서 느낀 감정들을 풀 곳이 필요했던 것이고, 익명성이 보장되고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온라인 상에서 침묵의 나선 이론 마냥 서로를 헐뜯는 것이라 생각한다. 사소한 차별들에서 쌓인 억울함들은 누구에게는 안 좋은 댓글을 다는 것으로, 누구에게는 아무 잘못 없는 사람을 조롱하고 폭행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자신이 받아온 차별의 가해자와 동일한 성에게 분노를 해소함으로 그들은 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성 혐오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인지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은 경제적으로 불안정하고, 저출산 국가이며,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곤 하지만 더 많은 성장을 거듭해야하는 국가이다. 서로가 서로를 공격하는 여론들이 형성되고 이에 더 집중할수록 국가는 불안정해질 것이고 정부의 감시 역시 약화될 것이 뻔하다. 극단으로 치닫는 성 혐오는 저출산을 더욱 부추기며 남성과 여성을 향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기 더욱 쉬워진다. 우리는 성 혐오로 인해 여성과 남성이 분리되어가는 사회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여성들 역시 남성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원치 않고 남성들 역시 여성들보다 우위에 서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평등을 이루기까지 평범하지 않은 과정들이 이어질테지만, 이 과정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평등’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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