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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이 불편한 당신에게
  • 창원대신문
  • 승인 2018.09.0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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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위를 둘러보면 ‘정말이지 이런 말은 어떻게 생각한 걸까?’ 싶은 것들 천지다. 언어가 쓰이는 시기나 빈도 등을 보면, 언어 사용의 주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진지충, 선비 등 진지함이 싫은 우리에게 유독 불편함을 호소하는 사람들을 향한 표현이 많은 건 기분 탓일까.

언어의 힘은 생각보다, 그리고 이를 이미 짐작하고 있는 사람들의 어떤 예상보다도 강력하다. 언어로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가두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좀 진지한 얘기를 한다 싶으면 진지충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이고, 그 사람이 아무리 ‘너무나 당연히도 진지해야 할 사안’에 대해서 이야기해도 그것마저 “또 진지충 납셨네”라는 말로 아무런 재고 없이 한 귀로 흘려듣는다. 말로써 상대를 묶고, 그 개인에게서 나온 의견을 평가절하하기는 얼마나 쉬운가, 그리고 이런 행위들을 합리화하는 그 방식은 또 얼마나 간단한가.

또 누군가는 이런 기자를 그저 불편함만을 호소하고, 툴툴거리고 소위 ‘장난을 다큐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라 여길 수도 있다. 조금 더 쉽고, 흔한 표현으로 대체하자면 그들에게 있어 기자는 ‘프로불편러’일 것이다. 아마 이 단어는 이제 일상어로 자리 잡아서, 이게 무엇인지 구태여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잘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도 직관적으로 단어가 주는 어감이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데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그들의 말마따나 기자는 불편한 것이 많다. 여전히 사람들은 권력을 휘두르는 여러 말로 폭력을 자행하고, 술자리에서는 여전히 ‘병신 샷’이라는 말이 끊이질 않고, 실수하거나 어리바리한 행동을 하면 여차 없이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며 서로 낄낄거린다.

앞선 상황들처럼 장애인을 조롱하고, 타인을 비하하며 웃음거리로 삼는 것들은 틀림없이 불편하고 불편해야 할 일이 아닌가. 하지만 반복해서 말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기자는 그저 ‘웃자고 한 장난에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프로불편러로 찍힐 뿐이다.

한 때는 “정말 내가 그냥 장난을 장난으로 못 받아들이나, 오히려 불편할 거리를 찾아내서 기어코 불편함을 느껴야만 만족하는 사람일까”라며 고민을 한 적도 꽤 있다. 고민할수록 깨달은 건, 차라리 불편하게 사는 게 낫다는 것이다. 불편하게 살면, 사람들에게 조롱거리는 될지언정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언행을 삼갈 수 있다. ‘타인에게 불편을 끼치고 살 바에는 차라리 내가 불편하게 살고 말지’라고 생각하느냐고 마음이 한결 편했다. 그래서 기자는 그냥, 이제껏 그래왔듯이 불편하게 살기로 했다.

분명 누군가는 기자의 불편함이 불편할 것이다. “너 하나가 불편함을 느낀다고 해서 세상이 바뀔 것 같냐”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당신들의 말처럼 세상을 바꾸기 위해 불편하다고 외치는 게 아니라, 그저 스스로가 생각하는 ‘정의’에 부합하지 않기에 소리를 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목소리들이 모여 실제로 사회는 바뀌었다. 바뀌었고, 또 앞으로도 바뀔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가 그렇게 비아냥거리는 것 자체가 그저 모순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세상이 그리고 사회가 바뀌지 않는 들 어떤가. 스스로가 바뀌고, 그로 인해 누군가는 조금이나마 불편함을 던 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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