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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예술 혹은 낙서
  • 신현솔 기자
  • 승인 2018.05.28 08:00
  • 호수 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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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피티는 주로 전철이나 건물의 벽면, 교각 등에 스프레이 페인트로 거대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가리키며 힙합 문화의 일부분으로 자리 잡았다. 처음엔 반항적인 청소년, 흑인과 같은 소수민족이 주도하고 랩과 댄스를 즐겼던 사람이 장소를 가리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그라피티가 점점 확산하면서 에이즈 퇴치, 인종차별 반대, 탄핵 등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선보이며 단순한 낙서의 개념에서 현대미술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우리대학 동아리방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라피티. 이는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까.

 

도시의 골칫거리

 

그라피티는 처음부터 예술로 인정받지 못했다. 벽, 경기장, 테니스장, 지하철, 전동차 등 그릴 수 있는 곳을 가리지 않고 선정적이고 무차별적인 그림을 그렸다. 그렇기 때문에 그라피티는 사회적으로 보기 싫은 낙서로 다가왔고, 도시의 골칫거리로 큰 문제가 됐다.

서울 홍대와 이태원의 경우, 놀이터나 주거시설 및 화장실 벽면은 새벽에 몰래 그려진 그라피티로 도배돼있다. 이런 그라피티는 건물주의 허락을 받지 않고 무단으로 그려져 불쾌감을 유발하고 있다. 건물주에게 그라피티는 예술이 아닌 흉물스러운 낙서이자 개인의 재산권 침해이다.

하지만, 그라피티 단속 역시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다. 새벽에 몰래 그리고 도망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누가, 언제, 어떻게, 왜, 무엇을 그렸는지 알기도 쉽지 않으며 지워도 다시 낙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또한, 벽화를 그라피티로 훼손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국민의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격이다.

 

저항의 예술로

 

런던 달스턴 지역, 동성애 불법 거주지의 한쪽 벽면에는 껴안고 있는 양성애자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장소는 1990년대 후반에는 동성애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거주했으며, 2000년대에는 국제적인 성 소수자 지지단체를 위한 기금 마련 행사로 중요한 장소였다. 2011년 시의회의 강제 철거 명령이 내려지기 전까지 이 그라피티는 한쪽 벽면에 짧은 시간 동안 남아있었다.

뉴욕 톰스킨 광장에서 역시 급진적인 시위 발생에 대한 역사를 표현하기 위한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1874년 노동자 폭동에서부터 1988년 발생한 노숙자 폭동까지 많은 사회 운동가들을 위한 장소로 존재한다.

또한, 뉴욕 유니언 스퀘어에서도 급수탑에 8개의 스틱이 그려져 있다. 이는 1882년 노동절 집회를 위해 유니언 스퀘어에 모인 사회 운동가들을 의미한다. 최저임금제 준수와 안전한 근무 조건 확립을 위해 캠페인을 벌이는 전 세계인들과의 연대를 의미한다.

이렇듯, 그라피티는 노동이나 성 소수자를 비롯해 많은 분야에서 자유를 외치고 있다.

 

우리대학에도?

 

현재 중앙 동아리방 벽면 및 대운동장 스탠드 계단 밑에도 많은 그라피티가 그려져 있다. 알 수 없는 영어와 문자들, 해괴하거나 무서운 그림들은 공포감을 조성하기도 하고 시선을 사로잡기도 한다. 학교 관계자들 및 학생들조차 언제, 누가, 어떻게 그렸는지 모르며 얼마나 오랫동안 벽면을 채워왔는지 모른다. 이러한 그라피티에 대해 박정현(신문방송 17) 씨는 “밤에 그림을 발견하면 더욱 무서울 거 같다. 또한, 우리대학에 대학생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산책을 많이 하러 오는데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지만 나쁜 영향도 끼칠 수 있을 것 같다”며 우려의 말을 전했다.

 

예술과 낙서 사이

 

<위대한 낙서:OBEY THE MOVEMENT>에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라피티가 위대한 이유는 그라피티를 통해 예술이 어디서든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예술이 마땅히 가져야 하는 차별이 없고, 편견이 없는 특징과 현대사회의 본질을 동시에 접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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