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민 전무의 물컵 던지기로 촉발된 갑질 사건이 대한항공 전체와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조현민 전무뿐만 아니라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조현아 칼네트워크 대표의 땅콩 회항, 장남 조원태 대한항공 대표의 70대 노인 폭언·폭행까지. 이 3남매는 마치 ‘누가 더 갑질을 많이 했나, 어디까지 갑질을 할 수 있는가?’라고 내기한 듯 국민으로부터 씻을 수 없는 분노를 하게 했다.

갑질은 3남매에서 멈추지 않았다. 조양호 대한항공 회장의 아내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은 자신의 집에서 일하는 정원사와 운전사에게 폭행과 폭언을 일삼았으며 공항 라운지에서 음식을 내던지는 등 무법자의 뉘앙스를 풍기며 행동해왔다. 총수 일가가 비행기 타는 날은 모든 부서에 비상이 걸리면서 사내에 ‘대통령 전용기도 이렇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 돌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국적기로서 국민들의 날개가 되어줘야 하는 그들이 법 위에서 군림하며 제멋대로 사익을 추구했다는 사실은 크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일들은 어쩌면 수면 위의 잔상에 불과하다. 아직 밝혀지지 않은, 파헤쳐야 할 일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사실은 평소에도 아무렇지 않게 갑질을 일삼는 일가에게 국적사인 대한항공을 맡겨야 하느냐는 점이다. 마치 걸리버 여행기에 나올법한 소왕국의 전제군주를 보는 듯하다. 이 파문은 개인 간의 인성 문제 수준을 벗어났다. 세계에서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큰 기업이 조롱의 대상이 돼버렸다. 이에 대한항공이라는 기업 브랜드 가치마저 훼손당하고 있다.

이에 대해 조양호 회장은 22일 저녁 사과문을 내놓았다. 하지만 국민들의 반응은 차갑기만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갑질 행태가 세상에 드러나고 각종 논란이 불거지자 어떻게든 수습하기 위해 나온 사과문일 뿐 아니라 내용 또한 진정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사과문 내용 중에서 조현민 전무의 잘못을 꼽은 대목은 “제 여식이 일으킨 미숙한 행동”이라는 구절뿐이다. 큰 기업의 중요 직책을 맡고 있고 어느 정도 수준의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국민들의 분노를 살만한 행위를 과연 미숙한 행동이라는 짧은 단어로 설명할 수 있는가. 아직 이들은 이 상황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 사건은 대한민국 재벌개혁의 필요성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시기적절하게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은 항공사 업무와 관련된 법 위반자의 경우 항공사 임원 자격을 더욱 엄격히 제한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적절한 조치다. 대한항공 지분의 약 12%를 소유하고 있는 2대 주주인 국민연금도 목소리를 높여야 할 때다. 오너리스크에 따른 대한항공 주가 하락이 곧 국민의 노후자금을 관리하는 국민연금의 손실과도 직결되기 때문이다. 국민의 실질적인 손해와 관련이 있다면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권 행사는 당연한 책무라 볼 수 있다.

100여 년 전 사회학자 마르크스 웨버의 자본주의 이론이 떠오른다. 이러한 자본주의 국가에서 물질이 가지는 힘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인간이 또 다른 인간 위에서 지배하는, 돈이 사람을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천민자본주의는 반드시 배척해야 한다. 한순간의 잘못된 생각이, 앞을 바라보지 못한 충동적인 행동이 대한민국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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