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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운동장의 추상과 하얀 조각 그리고 작은 인간들
  • 김주영/사회대·사회 18
  • 승인 2018.05.14 08:00
  • 호수 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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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운동장에 가면 윤이 나서 반짝거리는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브론즈 상, 타원의 형태, 유사 곡선의 형태를 띠는 조각물의 기억. 그것들은 정신의 고향이다. 아주 옛날의 추상이며 이것은 가공된 것일 수도 있다. 아마 그것들은 문신의 조각이라 생각이 드는데 문신의 조각은 추산동 미술관에 모여 있지만 여기저기 흩어져 사람 기억의 한 가구가 되다시피 할 목적으로 이곳 저곳에 있고 그중 몇 개가 내가 본 운동장의 조각상일 것이다.

그 기억이 나서 작년 겨울에 추산동 문신 미술관에 갔었다. 미술관 유리벽 안에는 조용하고 하얀 조각들이 모여 있는 곳이 있다. 거기서 가만히 있었다. 자연의 가장 순종적 자연. 우리는 도구를 만들기 위해 자연은 도구를 만들어내는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한 것일까. 자신의 재생산을 위하여 자연은 우리가 도구를 사랑하게 만들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두 달 전에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 갔을 때, 벌레의 친구처럼 작은 성냥갑 안에 들어가는 자코메티의 작은 인간들을 보았다. 자코메티는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각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나는 조각과 물상을 읽어낼 수 없었지만, 그것의 정지됨과 고요를 바라보자면 깊은 애착과 안정을 느꼈다. 사람은 불안하기 때문이다.

전시장에서 나는 다리가 아팠다. 어둡고 촛불이 있는 임시 가설장 속에서 정지된 인간을 원형으로 둘러싸고 실재의 인간이 보고 있으면 이상한 위안을 받는다. 로타르의 반신상, 많은 조각상. 이 바위 같은 무엇, 흙과 모래 같은 무엇, 알고 있는 광물의 형태와 유사하지만, 흙도 모래도 아닌 그것들을 만져볼 순 없었다. 예전에 이것들이 살아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았다고 했다. 그곳에서는 다만 막연히 만든 이의 손과 그 신체의 감각과 일상의 지속을 느꼈다. 자코메티는 젊었을 때 함께 여행하던 사람이 죽어버린 것을 본 이후 평생 불을 켜놓지 않고는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생명에 대한 회의와 함께 삶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쥐고 있었다는 걸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이번 전시의 홍보의 축이었던 ‘걸어가는 사람’ 전시실에는 명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걸 보면서 제각기 무슨 마음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진지한 얼굴로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지금이나 나중에 어느 때든 한 번은 더 봤으면 좋을 것 같았던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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