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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4년을 기억하며
  • 정현진 기자
  • 승인 2018.04.16 08:00
  • 호수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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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 부터 4년전, 2014년 4월 15일(화)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출발해 제주도로 향하던 여객선 세월호(청해진해운 소속)가 그다음 날인 16일(수) 오전 전남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이 사고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명만이 생존했고, 300여 명이 넘는 사망·실종자가 발생했다. 특히, 탑승객 중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 324명이 탑승하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했다.

당시 세월호는 급격하게 선박 진행 방향을 변경해 좌현부터 침몰하기 시작했다. 빠른 시간 내에 구조가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선장과 선원들의 무책임, 해경과 정부의 늦장대처 등으로 인해 골든타임을 놓치고 말았다.

 

뒤늦은 대처로 인한 최악의 사고

 

세월호 사건을 되돌아보면 충분히 빠른 대처가 가능했던 부분이 많다. 조사가 진행되면서 밝혀진 화물 과적, 무리한 선체 증축, 조타수의 운전 미숙 등의 문제점들이 발견됐고 정부와의 숨겨진 비리를 파헤치며 최악의 인재(人災)로 기억됐다.

세월호는 배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 알고 사고 수역 관할인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가 아닌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최초 신고 해 초기 대응시간을 허비했다. 오전 7시경 이미 세월호가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에 진입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신고를 받고 해역으로 출동한 해경은 여객선 안에 300명 이상의 승객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내부에 들어가 구조 활동을 펼치지 않았다. 소극적인 구조 모습은 사람들의 분노를 살만했다.

이렇게 허둥댄 것은 해경뿐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먼저 나서서 상황을 잡고 지시를 내려야 했을 정부 또한 초동 대처에 실패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해양수산부는 즉시 중앙사고수습본부를 세우고 범 부처 총괄업무를 시작했다. 하지만 이 업무를 안전행정부의 중앙재난대책본부(이하 중대본)로 넘겨버렸다. 이에 중대본은 사고 현장 정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수차례에 걸쳐 잘못된 정보를 발표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해수부·교육부·해양경찰청 등 각 부서에서 별도의 사고대책본부를 꾸리기 시작했다. 결국 사고 관련 대책본부만 10여개에 달했고 사고의 정황은 중구난방이 된 채 수면에 떠올랐다. 사고가 난 진도 앞바다뿐만 아니라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해야 할 정부가 제대로 관리 하지 못한 것이다. 지상파 언론에 ‘전원 무사 구조’라는 오보가 올라온 것도 이 이유에서다.

세월호 사건에서 사망자가 유독 많았던 것은 빨리 시작되지 않은 구조 작업 때문이 크다. 세월호가 사실상 완전히 침몰된 시간은 오전 11시 20분 정도였다. 하지만 실종자 수색을 위해 잠수요원이 본격적으로 투입된 것은 사고가 난 지 8시간이 지난 오후 5시경이었다.

특히, 사고 발생 첫날은 실종자들의 생존 가능성이 높다. 처음 수백 명의 구조요원이 투입됐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 수중수색은 3차에 걸쳐 고작 16명만 투입됐다. 야간 구조작업을 위한 어선, 잠수부들의 이동을 돕는 대형 바지선 또한 침몰한지 5일이 지나서야 들어왔다.

이 모든 상황을 전 국민이 집중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구조를 기다렸다. 하지만 결국 제대로 된 구조도 하지 못한 채 세월호는 무참하게 바다 속 깊은 곳으로 잠겨버렸다. ‘눈 앞에서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다’라는 말이 참 무색하게 느껴지는 시간들이었다.

 

추모의 물결이 일다

 

물론 모든 사건사고들에 마음 아프지 않는 사람 없고 억울한 사람 없다. 하지만 세월호는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탑승한 18살의 학생들이 타고 있어 더 슬픈 사건이었다. 이를 추모하기 위해 여러 운동들이 퍼져나갔다.

그 중에서 제일 활발하게 진행됐던 것은 노란 리본 운동이었다. 노란 리본은 이전부터 무사귀환을 바라는 상징으로 이용됐다. 이를 토대로 세월호 침몰 사고의 실종자들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이 운동이 시작됐다.

직접 노란 리본을 달고 다니거나 카카오톡, 페이스북 등 각종 SNS에 노란 리본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노란 리본과 함께 적혀있었던 문구는 “하나의 작은 움직임이 큰 기적을”이었다.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서울광장, 청계천, 종로, 동대문 등에서 노란 리본 운동을 진행했다.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에 운동이 퍼져나갔다. 스포츠계에서도 경기 시작 전 묵념 시간을 두고 전광판으로 노란 리본을 알렸다. 연예인들은 방송에 노란 리본을 달고 나오기도 했으며 학생들은 리본 뱃지, 리본 손거울 등을 이용해 추모의 물결에 동참했다.

이 외에도 우리나라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직접 가사를 개사한 ‘천개의 바람’과 유희열이 직접 작곡한 ‘엄마의 바다’와 같은 추모곡들이 세상에 나왔다.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한 곡들이었다. 방송계에서 또한 세월호 추모 기간을 두고 예능 프로그램의 방영을 미뤘으며 세월호 특집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집중한 만큼 너무나도 안타까운 사건이었고 전 국민이 슬퍼했다.

 

4년이 지난 지금

 

벌써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세월호 사건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아니 잊혀질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것들이 밝혀졌고 세상이 변했다. 이 사건을 통해 비선 실세 최순실의 존재가 알려졌고 그 외에도 정부의 무능함이 낱낱이 파헤쳐졌다.

사건 당일 정부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무슨 일들이 있었는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의심을 품었지만 결코 알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수), 세월호의 숨겨진 7시간 의혹에 대해 조사 발표가 나오면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은 실시간 보고를 받으며 사고에 대응했어야 할 사건 발생 후 7시간 동안 거의 대부분을 침실에서 보냈다. 또한 “간호장교와 미용사를 제외한 외부인 방문은 없었다”라고 발표했던 것과 달리 오후 2시 15분쯤 최순실이 청와대에 들어갔으며 중대본 회의에 참석했다. 즉 박근혜 전 대통령은 최순실이 오기까지 아무런 대책 없이 기다리기만 했던 것이다.

또한 당시 공개했던 최초 보고 시간도 오전 10시 20분에서 10시로 변경했다. 사건이 발생하고 탑승객 중 마지막으로 메시지 신호가 잡인 시간이 정확히 10시 17분이었다. 이를 기준으로 발표시간을 수정했다. 하지만 얼마 전 조사로 밝혀진 신고 접수 후의 시간에서는 10시 20분이 넘어섰을 때 대통령은 사고를 알아차렸다.

선체 인양도 계속 미뤄오다 작년 3월 10일(금)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고 12일 후인 3월 22일(수)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두달 정도가 지나 5월 13일(토), 아직 가족의 곁으로 돌아가지 못한 9명의 미수습자 중 단원고 학생 조은화 양의 유해가 발견됐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1,123일만이었다. 그 이후에도 남은 8명 중 3명의 유골이 수습됐으며 현재 5명의 미수습자 수색을 위한 세월호 선체 직립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합동분향소도 철거에 들어갔다. 합동분향소는 사건 발생 13일 후 안산 화랑유원지 내 제2 주차장에 세워졌다. 지금까지 다녀간 추모객은 72만 8,323명에 이른다. 경기 안산시는 오늘 희생자 영결식을 끝으로 합동분향소를 철거하고 제2 주차장을 원상복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화랑유원지 내 부지를 선정하고 추모공원을 조성할 계획에 있다.

 

다시는 일어나선 안 될 아픔

 

하나의 사건 안에는 온갖 거짓이 난무했고 각종 비리, 은폐가 있었다. 그저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세월호에 탑승하고 있었던 승객들과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들떠있었던 학생들은 빠르지 못했던 대처와 무능함의 희생양들이 됐다.

이후 ‘안전불감증’에 대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기도 했다. 학교, 회사 등에서는 안전에 대한 교육을 더 확실히 했고 사고 메뉴얼들도 다시 재정비했다.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일어나는 사고들이 곧 큰 참사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세월호로부터 얻은 아픔들이 다시는 찾아오지 않게끔 대비해야한다.

4년이 흐른 지금 세월호 희생자들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절대 잊어서는 안될, 영원히 기억해야할 사고다. 다시는 이러한 참사가 벌어지지 않도록 깨끗하고 안전한 나라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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