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칼럼
[독자투고] 대문 일곱 걸음 앞의 역사
  • 공상준/사회대·행정 13
  • 승인 2018.04.16 08:00
  • 호수 629
  • 댓글 0

4월 4일, 비구름이 몰려 이맘 때의 오후 5시 답지 않은 어둑어둑한 날이었다. 나는 편집이 마무리됐다는 연락을 받고 사진을 찾기 위해 상남동으로 걸어갔다.

나에게는 항상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을 찾아보곤 하는 특이한 습성이 있다. 그날은 용지공원을 통해 5년 전에 내가 자취했던 용호동 번화가를 가로지르는, 자취방을 옮긴 뒤로는 거의 가지 않았던 길로 다시 가봤다.

내가 살던 고시텔과 단골 오락실, 항상 누군가가 담배 피우던 거리 등 “저 건물은 원래 음식점이 있던 것 같은데” 중얼거리며 소소한 추억들을 새록새록 되새기며 걸었다. 그러다 나는 그 모든 회상을 그만두고 어떤 광경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제주 4.3 희생자 분향소’

분향소를 실제로 찾아 가본 적 없던 내가 보더라도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다. 비를 맞아 울고 있는 꽃들, 너덜너덜해진 천막, 부러지고 넘어진 입간판, 바닥에 뒹굴고 있는 의자. 차라리 교통사고처럼 아무런 악의도, 목적도 없었다면 좋으련만, 그 순결하고 하얀 천막에 휘갈겨진 더러운 검은 글씨들은 그 참상을 더욱 추악하게 꾸미고 있을 뿐이었다.

지금도 제주에서는 4월 3일이 되면 거의 모든 집이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처럼, 어떤 사건이 ‘역사적’이라는 것은 그 일이 당시 개개인들의 삶을 완전히 바꾸었다는 말이다.

물론 개인이 역사를 바꾸기도 한다. 그날의 아픔을 위로하고, 평화를 노래하고 기억하자는 소박한 분향소가 커터 칼 한 자루, 보드마카 한 필을 든 ‘그’에 의해 찢기고 짓밟혔다. 이는 ‘4.3 사건으로 말미암은 현대의 갈등사례’라는 이름으로 역사책에 한 줄이 될 것이다.

또 자신의 정치적 행동을 극한으로 표현하는 사람 말고도,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개인들에 의해 역사는 또한 이어져간다. 처참히 파손된 분향소 옆에서 잠시 묵념하는 것과 인터넷 뉴스에 댓글 다는 것, 공무원 시험 합격을 위해 공부하는 것. 그저 묵묵히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 또한 스스로가 변화하면서, 동시에 그걸 지켜보는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며 조용히 그 나름대로 역사에 한 글자씩을 써내려가는 것이다.

정치, 역사는 국회의사당만의 일이 아니고, 서울 사람들만의 일이 아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현재에서, 박차고 나온 대문 일곱 걸음 앞 그 자리에서 모든 것은 시작된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