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독자마당
[독자투고] 목표하는 삶
  • 박현석/경영대·경영 13
  • 승인 2018.03.05 08:00
  • 호수 626
  • 댓글 1

느닷없이 그럴 때가 있다. 기숙사를 내려가는 도중 은행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왜 나뭇잎이 떨어질까?’라며 생각했다. 그 이유를 찾는 것이 먼저겠지만, 나는 노랗게 불타는 초등학교 하굣길이 먼저 생각났다. 그렇게 야트막한 기억의 둔덕을 버스로 가다 보면 여러 역이 나온다. 은행잎처럼 끝없는 기억의 정류장 속에서 내가 내릴 역 이름은 ‘초등학교 시절 나의 목표’. 이미 내 방에 도착한 터라 별생각 없이 그만두었다. 그냥 요깃거리가 필요했나 보다. 그런 느닷없는 날이 어제였다.

컵라면에 물을 붓고 저녁을 먹으려는데 누나에게서 전화가 왔다. 별다른 이야기 없이 서로의 안부만 묻고 대화를 이어가는데, 문득 초등학생 시절 나의 장래희망이 궁금해 누나에게 부탁했다. 노란색 체육복을 입은 사진 속 나의 장래희망, 대통령. 이 세 글자의 의미를 그때는 알았을까. 시간이 꽤 흘렀는지 라면은 퉁퉁 불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앨범 속 수많은 삶 속엔 초등학생 시절 세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달려나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또는 나처럼 아니, 나 혼자 방향을 잃고 상황에 맞추어 이리저리 자신과 타협하며 사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를 분류하는 작업은 단순노동에 불과하겠지만, 사람을 분류한다는 것은 예외라고 생각한다. 감히 내가 사람을 두 가지 부류로 분류해 보려고 한다. 한 부류는 인생의 큰 목표를 세워두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삶. 나머지는 상황마다 목표가 있을지언정 큰 목표는 없는 삶.

첫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소위 ‘성공하는 삶’의 범주에 속한다고 본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 그 세부항목을 정하고 또 그것을 이루는 것이 잘나가는 자기계발서에서 항상 얘기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 사람이 두 번째 부류에 속한다고 본다. 고3 때는 대학입학이 나의 목표가 되었고, 대학 입학 후 다가오는 시험 기간에는 좋은 성적이 나의 목표가 됐다. 지금은 졸업과 취업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에는 결혼, 육아, 노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전자를 택하고 노력하는 것이 당연하다. 전자가 아닌 후자를 택한 삶을 되돌아보면 ‘이것을 목표로 왜 삼지 않았을까?’라며 생각할 때가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건 큰 가지 없이 잔가지만 무성한 나의 삶을 후회할 자격과 만족할 자격은 모두 나에게 있다고 본다. 그 선택은 각자의 판단에 맡기며 하지 못한 말을 하고 싶다. “두 번째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은 실패하는 삶일까?”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1
전체보기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