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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일언]마지막 고래
  • 황태영 기자
  • 승인 2017.09.25 08:00
  • 호수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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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혹 지나가는 길에 있던 작은 놀이터의 놀이기구가 모두 없어졌다. 알록달록한 미끄럼틀도, 시소도 있던 놀이기구가 모두 사라졌다. 딱 한 가지만 빼고. 매캐한 흙만 들어찬 부지에 파란 고래 한 마리만 남았다. 그 이름도 낯선 ‘바운서’. 굵직한 스프링이 밑에 달려 있는 1인용 놀이기구다. 그 놀이터 아닌 놀이터에 남은 마지막 고래는 그렇게 한동안 타는 이 없이 홀로 그곳을 지켰다.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온 고래는 지나가며 볼 때마다 ‘왜 놀이기구를 단 하나만 남겼을까’하는 그저 그런 의문만 가지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작은 고래에 서너 명이 모여 있는 걸 봤다. 그들은 얼핏 봐도 아이는 아니었는데, 고래를 탈 때의 표정만은 아이의 웃는 얼굴만큼이나 맑아 보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래에 대해 곱씹어봤다. 그리고 나는 그 고래를 마지막 남은 이 시대의 낭만이라 정의하기로 했다. 각종 시험에, 취업에, 인간관계에 치인 시대에 낭만이라는 것은 그저 허울이다. 매캐한 사회는 잿빛 모래바람을 일으키면서 말한다. 살아남기 위해서 낭만은 허울이 돼야만 한다고.

 

요즘 사람들, 특히 대학생들은 진지함을 극도로 거부하곤 한다. 0과 1로만 이뤄진 디지털 사회에서의 진지함이란 지루한 이야기, 오글거리는 이야기라는 취급을 받는다. 사회가 팍팍해질수록 낭만은 설 자리를 잃는다. 어느새 꿈과 낭만을 얘기하는 것조차 사치라 일컬어진다. 역시 요즘 사람인 나도 낭만을 마음속에 품고 살지만 절대 얘기하지 않는다. 사실 누구나 꿈이 있고, 낭만이 있다. 문제는 누구나 꿈을 좇지 못한다는 것이다.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과제가 낭만을 가지지 못하게 하고, 취업준비는 하고 있느냐는 물음이 꿈을 추구하는 것을 두렵게 만든다. 낭만이 허울이 되어간다.

나는 낭만주의자가 아니다. 낭만을 좇고자 하지만 결국 현실이라는 곳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현실주의자도 아니다. 늦은 밤까지 과제를 하다가 문득 밤하늘이 마음에 들어서 오래도록 들여다보기도 하고, 기분 좋게 일렁이는 바람이 좋아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 있기도 한다. 찰나일지라도 나름의 낭만을 좇는다. 그렇게 나의 놀이터에 적어도 마지막 고래 한 마리는 남아있는 것이다. 그 파란 고래 한 마리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팍팍한 나의 삶을 유연하게 해준다. 매캐한 현실이라는 파란(波瀾) 속에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조심스레 권해본다. 마음속 마지막 고래 한 마리씩은 남겨두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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