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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은이야기찾기] 드러난 존재의 은폐된 정체성
  • 강동후 수습기자
  • 승인 2017.06.12 08:00
  • 호수 618
  • 댓글 1

위인전을 읽던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자. 정치가, 예술가, 과학자 등 수많은 위인이 당신의 심금을 울린다. 그들 중 하나를 롤모델로 삼기도 한다. 그런데 그 위인들에게 숨겨진 면이 있다고, 위인전이 왜곡됐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있는가?

토베 얀손(1914~2001)은 스웨덴계 핀란드인 동화작가다. 1914년 헬싱키에서 태어나 다양한 삽화와 소설 작품을 남긴 그는 2001년 생을 마감했으며 그가 그린 캐릭터 ‘무민’은 최근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 ‘무민’을 동화책으로 번역·출간한 국내 출판사 ‘작가정신’은 “토베얀손은 작고 외딴 섬에 집 한 채를 짓고 ‘홀로’ 살아가다 2001년 6월 27일, 86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라고 그를 소개한다. 하지만 이 설명에는 작고도 큰 왜곡이 있다. 그는 레즈비언이었으며 파트너 툴리키 피에틸라와 수십 년간 함께하다 세상을 떠났다. 이러한 왜곡이 논란이 되자 작가정신은 ‘홀로’ 살았다는 것을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로 봐달라 고 답했다. 사회적으로 받아들이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그의 정체성을 ‘은폐’한 것이다. 나이팅게일의 경우도 이와 같다.

현대 간호학을 창시한 나이팅게일은 흔히 ‘간호사의 대명사’, ‘백의의 천사’라고 불린다. 하지만 그가 실은 억세고 냉철한 성격을 가졌으며, 통계학, 행정학에 능통했고, 또한 레즈비언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 나이팅게일은 크림 전쟁 전사자의 사망 원인을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전사자의 수를 줄이는 데 공헌한 최초의 여성 영국 왕립통계학회 회원이었다. ‘백의의 천사’라는 별명은 한국과 일본에만 남아있는 것으로,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간호사의 특성인 온순함, 자상함을 그에게 덧씌워 ‘모성’으로 환자를 보살피는 간호사의 이미지를 갖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여성에게 부과되는 성 역할과 간호사에 대한 고정관념에 들어맞게 그의 정체성을 왜곡한 것이다.

위인전은 사회 구성원들이 마땅히 따라야 할 인물들을 다룬 책이다. 위인전에서 성소수자, 사나운 성격의 여성을 지우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성소수자, 사나운 성격의 여성을 지우려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당신이 위인전에 오른다고 했을 때 누군가 당신같은 사람들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이유로 당신을 숨기고 왜곡한다면, 아마 당신은 분노하고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있는 당신, 역사적 인물, 더불어 주변인들이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그들의 ‘숨은 이야기’에 귀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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