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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대신문의 타임머신창간 48주년을 기념하며 떠나는 창원대신문의 시간여행
  • 서영진 기자
  • 승인 2017.04.03 08:01
  • 호수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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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은 세계사의 초침이다” - 쇼펜하우어

올해로 개교 48주년을 맞은 우리대학의 역사를 함께한 신문이 있다. 바로 창원대신문이다.

창원대신문에는 48년의 세월 동안 많은 선배 기자의 기록들로 새겨진 시간들이 마치 타임캡슐처럼 남아있다. 이번 창간 기념호에서는 지난 신문들과 선배들의 게시판인 ‘용고뚜리’를 타고 시간여행을 떠나보자.

▲창원대신문 제614호 12면

학교와 그 시절 청춘들의 시간이 담긴 신문들

자료조사를 위해 1979년부터 90년까지의 신문을 모아둔 철을 꺼냈다. 제작 된지 30년은 훌쩍 넘은 종이답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부스러기가 후두둑 떨어졌다. 바래진 신문에는 세월을 드러내듯 세로쓰기와 중간 중간 한자의 등장이 잦았다. 세로로 읽는 것이 익숙해질 즈음 85년부터 대부분의 기사가 가로쓰기로 통일이 됐다. 이때 <마산대학보>에서 <창원대신문>으로 제호가 변경된 것은 교명 변경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격동의 80년대’라는 말을 증명하듯 농성을 하는 학생들의 사진과 “광주민주항쟁을 돌아보며”라는 사설이 지면의 반을 차지하는 등 80년대의 시대상이 생생하게 담겨있었다. 시대의 부조리와 대통령의 잘못을 비판하는 총학생회의 화동도 눈에 띤다. 당시 총학생회 회장이었던 송순호(환경공 89) 동문과 홍승준(경영 89) 동문이 국가보안법 위반이라는 죄목으로 경찰에 연행, 재판을 받는 등 오늘날의 민주사회로의 발전을 위해 땀 흘린 흔적도 찾을 수 있었다.

한편, 신문 속에서 학내 시설들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위 사진 속 본지 112호(1987년 1월 1일(화) 발행) 1면에서 확인 할 수 있듯 이 즈음 우리대학은 대학본부, 현재 인문대와 경상대인 1, 2호관 그리고 현재의 봉림관인 학생회관 등 전체 시설이 17개에 불과했다. 현재 97개의 시설이 있는 것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취재수첩, 그리고 용고뚜리

지난해 정리를 위해 서랍을 뒤져보다 놀라운 것을 발견했다. ‘용고뚜리’라는 이름으로 수십 권의 공책들이 한 가득 꽂혀있었다. ‘용고뚜리’라…. 범상치 않은 제목의 공책들을 펴보니 이곳은 신문사 생활의 노고와 자신의 감정을 익명으로 기록하는 아날로그 ‘자유게시판’이었다. 창원대신문 퇴임기자들의 모임인 ‘예봉’선배에 따르면 이 ‘용고뚜리’는 ‘지나치게 담배를 많이 피는 사람을 놀리는 말’이라고 한다. 당시 신문사에는 여선배, 남선배 할 것 없이 골초가 많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고.

한 장 한 장 읽을 때마다 밤을 새며 신문을 만들고 편집하던 그 시절의 모습과 현직 기자들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듯 했다. 익명이라고 하지만 각자의 개성이 담긴 필체가 여실히 드러났고 왼손으로 쓴 듯한 글도 적지 않았다. 이 공책들이야 말로 진정한 타임캡슐이다.

취재수첩, 기자생활을 얘기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물건이다. 검은 글자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수첩은 선배들이 얼마나 열심히 발로 뛰며 취재했는지를 알려줬다. 다 같이 작성하는 용고뚜리와는 달리 개인 소유다 보니 몇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변화하는 창원대신문

옛 신문들을 살펴볼수록 흘러간 시간만큼 창원대신문도 끊임없이 변화해왔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969년 마산대학보사가 발행하는 <馬山大學報(마산대학보)>로 출발한 본지는 마산대학신문사로 승격해 발행처가 변경됐다. 이러한 조치는 1981년 전국의 모든 국립대학이 81학년도부터 실험대학으로 변경, 우리대학의 학보사와 방송실이 신문사, 방송국으로 승격됨에 따라 이뤄졌다.

시간이 흘러 1985년, 교명변경에 따라 제93호 창원대학신문사의 <昌原大新聞(창원대신문)>으로 발행처와 제호가 변경됐으며 세로쓰기에서 가로쓰기로의 혁신적인 변화를 맞았다. 이후 1992년 한문이던 제호를 한글로 바꿔 <창원대신문>으로 변경했다.

신문지면 크기 변화도 눈에 띤다. 창간호부터 가장 큰 대판을 고수해오던 본지는 2011년부터 교차로 크기인 타블로이드 판형으로 변경됐다. 지면은 작아졌지만 다양한 면 레이아웃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이끌기 위한 노력이 돋보였다. 최근에는 지난해 1학기 개강호를 기점으로 중앙일보로 익숙한 크기인 현재의 베를리너판형으로 변했다.

선배가 기억하는 그 시절 창원대신문

 

“80년대 시린 현대사와 새파란 청춘이 씨줄과 날줄

로 만나 엮어낸 빛바랜 사진첩”

- 2기 허인수 선배

 

“부정과 비리를 바로 보는 눈을 갖게 한 곳.

그 가치관이 불의가 만연한 세상과 타협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지만

굳셈과 용기를 잃지 않고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동력이 됐다”

- 5기 이형록 선배

 

“내게 신문사는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이다”

- 11기 최종인 선배

 

“내게 신문사는 전설이 하도 많아 전설의 고향이었다!”

- 12기 김민석 선배

 

“내게 신문사는 마감 ‘데드라인’이다.

신문 만들고 방금 돌아서면 마감. 또 마감. 마감과의 전쟁이다”

- 13기 최재원 선배

 

“내게 신문사는 집이다. 가족 같은 동기 및 선후배들이 늘 자리하고 있고,

함께 밥 먹고(술도 마시고) 함께 놀고 때로는 함께 자기도 하며 부대끼던 곳이다”

- 19기 김기종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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