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여론 사설 보도자료
코코샤넬의 비밀
  • 김지현 기자
  • 승인 2017.04.03 08:00
  • 호수 614
  • 댓글 0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샤넬’의 창시자 가브리엘 샤넬. 20세기 여성패션의 혁신을 선도한 디자이너다. 간단하고 입기 편한 옷을 신조로 답답한 속옷과 장식이 많은 옷에서 여성을 해방하는 실마리를 만들었다. 샤넬의 시그니처 디자인 블랙 미니 드레스와, 트위드 재킷 등 편하지만, 여성미가 넘치는 샤넬의 옷은 오늘날 현대까지도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샤넬은 12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에게 버림받아 보육원에서 자랐다. 이곳에서 샤넬은 바느질을 배웠으며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생활을 보냈다. 그러던 중 가수 시절 만난 첫 번째 남편의 도움으로 본격적인 디자이너 활동을 시작했고 1916년 비아리츠에 ‘메종 드 쿠튀르’를 열고 정식으로 첫 컬렉션을 발표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샤넬의 의상은 사교계 여성들에게 고가에 판매가 되며 큰 부와 함께 명성을 얻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샤넬의 행보다.

2011년 미국의 한 언론에서 샤넬이 나치라는 보도가 나타났다. 세계 제2차대전이 시작된 후, 파리가 나치에겐 넘어간 상황에서 샤넬은 독일의 장교와 교제하며 나치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했다. 독일이 비공식적으로 영국 처칠 총리에게 휴전 제안을 했을 당시 이를 보낸 이도 샤넬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도 파리의 고급 호텔에서 유유자적한 생활을 이어나갔다.

샤넬은 나치에 협력하고 동조하면서 지금까지도 유명한 향수, 샤넬 no. 5를 점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no. 5는 샤넬의 이름을 넣어서 만든 향수이지만, 판매권은 유대인이 가지고 있었다. 여성잡지인 <라파지엔>에 의하면 유대인의 손에 있는 no.5를 나치의 힘을 통해 가져오려 했고, 나치의 법까지 동원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치는 금방 힘을 잃었으며, 지금까지도 샤넬은 유대인 집안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샤넬은 프랑스 국민에게 매국노라는 비판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뒤 그녀는 스위스로 망명했다. 하지만 패션계를 잊지 못해, 1954년 71세의 나이로 다시 돌아와 “내가 곧 스타일이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1971년 1월 10일 87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그녀는 나치 설을 부인했다고 한다. 샤넬의 패션 업적은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그녀의 성과와 도덕성의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뭐가 옳고 그른지에 관해서는 판단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저작권자 © 창원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지현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