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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풀꽃21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장려
  • 창원대신문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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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풀꽃

 

서병수/인문대 불어불문학과 2학년

 

방학을 맞이한 지도 벌써 3주가 넘어가고 있다. 나도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학기 중에는 시간이 나지 않아 못했던 일들, 혹은 귀찮아서 미뤄둔 일들을 하나하나 해 나가고 있다. 아버지와의 주말 등산은 전자의 경우이지만, 어쩌면 후자의 경우일 수도 있다. 어쨌건 아버지께서 항상 혼자 등산가시는 모습이 괜히 쓸쓸해 보여 알량한 효도의 일환으로 내가 먼저 아버지께 함께 등산가자 말씀드렸다. 내색하진 않으셔도 기뻐하시는 게 눈에 보여 나도 내심 잘했다, 생각했지만 그 생각이 바뀌기까지는 2주도 길었다. 운동과는 거리가 먼 나에게 등산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고, 중턱에 다다르기도 전에 헉헉대는 나에게 아버지는 오히려 왜 이렇게 느리냐며 성질을 내셨다. 결국 정확히 2주차의 등산에서 아버지께 더는 못가겠다고 선언했고, 집에 돌아와 평소에 운동을 그렇게 안 하더니 결국 그럴 줄 알았다며 어머니께 잔소리만 들었다. 작은 양심에서 시작한 일이 괜한 화만 자초한 것이다. 게다가 고질적으로 운동부족에 시달리고 애초에 운동에 흥미도 없는 나이기에 애초에 등산에서 오는 보람이야 기대하지도 않았다지만, 등산하면서 마주치는 아름다운 풍경들이 요즘 취미를 붙인 그림에도 도움되리라 생각했건만 가까이서 본 산의 모습은 내가 생각한 산의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있었기에 결국 이것도 허탕만 쳐버렸다. 다들 산을 아름답다, 좋다고 하고 많은 자연풍경을 그린 그림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은데 내가 본 산의 풍경은 어째서 그랬단 말인가 생각을 해봐도 정답을 찾을 수는 없었다.

해답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찾아왔다. 약속이 있어 학교에 잠시 들른 일이 있었는데, 약속을 잡은 사람이 일이 생겨 30분 정도 늦겠다고 연락해온 탓에 인문대학 3층 엘리베이터 쪽 의자에 앉아 멍하니 시간만 죽이고 있었다. 저녁 약속이었던 탓에 해는 스멀스멀 지고 있었는데, 그때 창밖은 보다 문득 깨달은 사실이 있었다. 도처를 둘러보면 어딜 가나 시선이 가로막히는 지점이 있었다. 바로 산이다. 하긴 이 도시로 말할 것 같으면 사방이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있어 어디로 시선이 가든 언제나 배경은 산이다. 이상하게 빠져들어 계속 보다보니, 어찌 보면 산이라기엔 언덕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겠다 싶을 정도로 느긋하고 완만한 곡선을 그리는 게 마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에서 묘사한 남도의 산들이 꼭 이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까이 있는 뚜렷한 산도 산이지만, 멀리 있어 흐릿하게 비치는 산의 모습은 몽환적이기까지 했다. 그런 풍경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져, 해가 막 떨어져가는 지금이 절정이었다. 화염에 휩싸여 불타오르는 듯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가 점점 주황빛으로, 또 다시 분홍빛으로 변했다가 종국에는 어두운 푸름으로 끝맺어지는 동안 산은 그 흐릿한 인상을 변함없이 유지하면서도 파스텔 톤으로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의 색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인상을 주는 것이 정말로 아름다웠다. 이 아름다운 산이 왜 가까이서는 아름답지 않았단 말인가, 생각하다 깨달았던 것이다. 이전에 내가 등산하면서 본 산은 온갖 좋은 정보들로 환상을 가득 품고 본 산이고, 지금의 산은 이미 실망한 채로 아무런 기대 없이 본 산이라는 것을 말이다. 내 나름대로 조사랍시고 아름다운 산의 풍경화나, 정보들을 알아가는 동안 사실 나는 산이란 것에 대한 환상 혹은 망상을 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풍경화에 나오는 그 산과 이 산이 같을 수 없고, 산이 항상 같은 모습일 수도 없는 것을 나는 무의식적으로 외면한 채로 산을 대했으니 당연히 안 좋은 모습만 부각되어 보이고, 그러니 당연히 실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한 풀 꺾인 기대와 함께 만난 산의 모습에서 이전에는 망상에 가려 보지 못하고 지나쳐온 아름다운 모습을 발견했던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를 만날 때, 외모로, 혹은 첫인상으로, 또는 주변인들의 말로 우리는 상대를 판단하고, 상대가 어떠하리라는 것을 기대하지만, 사실 그것은 헛된 망상인 것이다. 겪어보지도 않은 사람에 대해 우리는 이미 일종의 벽을 쳐놓은 셈이다. 당연하게도 내가 직접 만나고 있는 상대는 어쩌면 우리의 망상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 수도 있다. 결국 상대가 내 환상에 부합하지 않는 모습을 보일 때에 우리는 그 외의 어떤 장점이나 그런 것들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 단점만 부각하여 보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남는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환상과 관계의 파멸뿐이다. 나태주 시인은 ‘풀꽃’이라는 시에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고 했다. 시적으로는 그대로 두는 것이 낫겠지만, 나는 굳이 여기에 한 줄을 추가하고 싶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더 잘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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