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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려도 된다21회 창원대문학상 수필부문-당선
  • 창원대신문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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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어려도 된다

 

이근수/인문대 영어영문학과 3학년

 

물을 한 모금 들이켰다. 책상을 배까지 당기고 문제지를 펼치려던 찰나 별안간 문자가 왔다. 오랜 친구였다. ‘나 아버지 돌아가셨어 한 번 와줘.’ 숨이 멈췄다.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마다 술에 취해 친구를 발로 찔러대시던 그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그런 아버지를 친구는 항상 투덜댔다. 그만큼 친구는 아버지를 좋아했다.

창원에서 부산까지는 그날따라 멀지 않았다. 걱정이 시간을 다 채운 듯했다. 도착하니 친구는 상복을 입고 있었다. 옷과 친구의 표정이 겹쳤다. 빳빳하면서도 처량해 보였다. 절 올리는 모습을 곡소리로 지켜본 뒤 조용히 빈 상으로 안내했다. 문제지가 소주잔을 들고 있는 친구의 모습으로 바뀌었다. 갑작스러운 죽음은 친구로서 풀어야 하는 난제 같았다. 도움이 되기라도 할까. 친구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리라.

술기운과 향냄새가 새벽을 아른하게 했다. 그날따라 초등학교 소꿉친구가 잔을 사이에 두고 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생전 친구의 아버지의 얼굴이 계속 눈앞에 떠다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잔상이 우리를 다시 초등학생으로 만들었다. 우리는 수염이 듬성듬성 자라있었고 더 이상 호기심 없는 까무잡잡한 피부였지만 그날 친구의 벌건 눈은 그때 그대로였다. 나도 그랬을 것이다. 이질적이었다. 우리는 아직 어른이기가 낯설었었다. 간단한 안부를 안주로 한 뒤 친구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근수야. 사실 우리 아빠가 많이 아팠다. 처음에 진단받았을 때 의사가 뭐라는지 아나. 위가 아프다고 수술비가 일억 오천이라 드라. 근데 니도 알다시피 내는 그거 못 낸다. 근데 제일 힘든 게 뭔지 아나. 일억 오천 듣자마자 아빠가 걱정되는 게 아니고 돈 걱정부터 되더라. 내 진짜 미친놈이다.

다시 친구의 눈을 봤다. 역시 어렸을 때의 것이었다. 빠르게 굴러가던 눈. 세상에 적응하려 버둥거리던.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한테는 여전히 어려운 세상이었다.

억은 친구에게 불가능했다. 아니 억보다도 깊은 죄책감이 친구를 힘들게 했다. 우리는 서로 알고 있었다. 우리 이십 대의 부모님에 대한 자유가 책임과 죄책감으로 바뀌는 순간들을.

나는 어느 순간부터 아버지와 목욕탕에 가는 걸 피했다. 그럴듯한 변명을 만들어 내기에 바빴다. 이유는 하나다. 목욕탕은 전부 그대로이다. 6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회색빛 바가지. 싸구려 락스 냄새. 앞을 가리던 안갯 빛 수증기. 그 뿌연 냄새의 공기가 숨 막혀 허리를 비틀어 대던 치약. 쏴악쏴악 세신사의 자신감 넘치는 물줄기. 박수소리. 어쩜 이리 한결같을까.

하지만 딱 하나 아버지만 변해있었다.

모든 게 정지된 세상에서 아버지 한 명 만이 달라져 있었다. 모든 불변한 것들은 아버지를 더욱 초라하게 만들었다. 아버지는 더 이상 혼내 듯 아들을 부를 수 없으셨고, 때를 밀어줄 수 없었다. 벌겋게 달아오른 살은 이제 없었다. 아들이 아파죽겠다는 얼굴에 낄낄거리실 수도 없으셨다. 아들 역시 한없이 아버지가 머리에 박박 문질러 대던 비누냄새가 그리웠다. 그런 생각을 할 때면 비누가 눈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눈이 벌게졌다. 이윽고 고개를 돌리자 찢어 놓은 종이상자 같은 아버지의 등이 눈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이 한 것만 같았다. 죄책감이 밀려와 거울을 뿌옇게 매웠다. 닦아봤자 철없는 자신의 얼굴 밖에 나오지 않았고, 그게 싫었다.

거울 안의 나는 아버지를 부담스러워했다.

우리의 책임감은 부모님의 희생에 저울질되며 가볍게 높이 솟구친다. 그것마저 견디지 못하고 있는 꼴이 우스웠다. 부모님의 모습이 우리 어깨에 올려놓아야 할 것 같은 부담으로 느껴지고. 이내 그런 생각을 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으로 변모한다. 효(孝)라는 무거운 백팩을 짊어지고 있는 듯하다. 그 친구와 연락은 잦지 않았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단박에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우리 인생은 우리의 것만이 아니었다. 적어도 친구가 마지막 말을 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근데 있다이가. 우리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내한테 뭐라고 하신지 아나. 분명 아빠도 수술 안 하면 자기 죽을 걸 알고 있었을 거란 말이야, 그리고 돈이 많이 들어가는 것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만큼 아픈 상황이었으니까. 근데, 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내 손잡으면서 말하시드라. 자기 괜찮다고. 자기는 괜찮다고 빨리 집에 돌아가자고 하더라. 끝까지 그 말만 하시더라.

아! 내가 그때 깨달은 것처럼 친구도 그랬을 것이다. 그 아버지는 인생의 마지막에서도 아들을 걱정하고 가족을 보살피려 했다. 아버지는 그 순간이 목전에 닥쳐와도 절대 아들에게 구걸하거나 빌지 않으셨다.

우리의 아버지는 강했다. 어떤 것도 아버지를 이길 수 없었다. 죽음까지도.

이윽고 알았다. 우리는 아버지 앞에서 그냥 한낱 어린아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아직 아버지를 책임지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아직 약한 존재다. 이제 스무 살 갓 넘은 핏덩어리들이 이때까지의 아버지 풍파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일종의 오만이며 거대한 착각이다. 젊음과 걱정을 부모님께 헌신하지 않아도 그들은 굳건하다. 적어도 자식들에게 짐은 지우지 않으신다. 그게 그들이 살아온 방식이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어릴 땐 우리에게 너무 거대한 태양이여서, 허약해진 체격에 우리는 이내 연민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오산이다. 그들은 아직 붉다.

불량배들에게 맞고 흉터 난 어린 아들을 보고도 침착함을 잃지 않은 아버지의 표정을 왜 이때까지 잊고 살았을까. 퇴근하실 때 언제나 한결같은 아버지 트럭 소리를 왜 기억하지 못했을까. 아버진 네 식구를 20년이나 넘게 트럭 한 대로 끌어오신 분이다. 고작 조금 작아진 등과 어깨가 아버지의 전부라 생각한 내가 부끄럽다. 그들이 가정에 바친 청춘이 진정 모든 대한민국 아버지들의 가치이며 모습이다. 아직까지는 우리의 아버지들은 여전하시다. 그러니 어깨를 조금 가볍게 한 뒤 어리광을 부려도 괜찮다. 우리가 무어라고 그들을 판단하겠는가. 우리는 아직 어려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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