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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다는 것21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장려
  • 창원대신문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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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뎌진다는 것

 

조행림/인문대 국어국문학과 4학년

 

2040. 12. 23. PM. 15:00.

오후 세 시. 이 시간이 되면 나는 시간 여행을 한다. 누가 시킨 일은 아니지만 2년 전 크게 아프고 난 이후로 생긴 습관이다.

오늘도 어김없이 1층 구석에 자리 잡은 작은 독방으로 향한다. 낡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이 방은 한 때 작은 딸이 지내던 방이다. 커다란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따뜻해서 작은 아이에게 이 방을 내어 주었으나 매번 춥다고 내 이불 속으로 들어오곤 했다. 지금은 곁에 없지만 이 방에 들어설 때면 작은 아이가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을 것 같아 가슴이 먹먹해진다.

작은 딸은 의과대학교수라는 큰 꿈을 안고 서울로 떠나갔다. 이렇게 작은 촌구석에서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며 성공하기 전까지는 절대 집에 내려오지 않겠다고 했다. 난 그때 처음으로 그 아이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집을 떠나본 적 없던 아이가 그런 결정을 내린 데는 큰 결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된다고 그냥 엄마 옆에 있어주면 안되겠냐고 애원했지만 작은 아이는 그럴 수 없다고 자기가 꼭 성공해서 엄마의 병을 고쳐주겠단다. 그렇게 나는 그 따뜻한 아이를 차갑고 날이 선 도시로 떠나보냈다.

 

끼이익....

 

한 쪽 벽면이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방 안은 따뜻한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굳어가던 심장도 녹는 기분이었다. 작은 딸이 떠나간 이후 방 안 물건을 그대로 두었다. 찬찬히 방 안을 둘러보다가 딸의 책상 의자를 끌고 와 창문 앞에 놓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겠다며 사달라고 하길래 큰 맘 먹고 산 의자이다. 당시에는 비싼 의자라고 제법 빛이 났었는데 이제는 다 낡아 칠도 다 벗겨지고 나무의 빛도 바랬다. 나는 매일 이 자리에 앉아 시간여행을 한다. 여기에 앉아 있노라면 매일 새로운 그림들을 볼 수 있다. 오늘은 창문 너머로 늦가을 풍경이 그려져 있다. 초록 빛깔로 물든 천 위로 메밀꽃들이 하얗게 수를 놓고 있고 그 사이로 빨간 장미가 빛깔을 뽐내고 있다. 배고픈 새들은 마을에 찾아 와 주변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먹기도 하고 배를 채운 새들은 한 폭의 그림에 담기고자 이리저리 메밀꽃 위를 날아다닌다. 푸르지만 그리 푸르지도 않은 하늘은 어정쩡하게 그려져 있지만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이 안에서 보는 세상은 참 평안하고 따뜻하다. 내가 바라보는 저 곳은 누군가에게는 사랑을 속삭였던 공간이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이별을 고했던 공간이었을 테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런 공간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이 곳은 내가 태어난 곳이며, 한 남자와 사랑을 속삭인 공간이며, 내 딸아이들이 태어난 공간이며, 내 병을 인지한 공간이며, 시간 여행을 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제는 시간 여행을 할 시간이다. 시간 여행에는 하나의 법칙이 있다. 짝수 일에는 좋은 일을, 홀수 일에는 좋지 않은 일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오늘은 홀수 일이니 좋지 않았던 일을 떠올려야 한다. 살며시 눈을 감으며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수능을 끝내고 고등학교 친구들은 만나는 자리였다. 아마 그때도 오늘이랑 날짜가 비슷했을 것이다. 거리에는 캐롤이 흘러나오고 지나가는 사람들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질 않았고 이번에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대해도 되냐며 다들 들떠있는 분위기였다. 나에겐 그 당시 많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 중 혜지에게서 크리스마스가 얼마 안 남았으니 만나자고 아침 일찍 문자가 왔다. 다들 그러자고 했고 거의 몇 시간 만에 만남이 이루어졌다. 갑작스러운 만남으로 한 친구가 나오지 못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우리 무리 중 가장 활발한 친구는 혜지이다. 우리 사이에서 행동대장이라고 부를 정도로 추진력이 대단한 친구인데 성격 역시 화끈하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확실하게 의사를 표현하던 친구였으며, 할머니의 영향을 받아 말이 좀 거칠었다. 때문에 상처를 받는 친구들도 제법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혜지의 그런 성격이 좋았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속은 깊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혜지는 부모님의 맞벌이로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러나 전혀 남에게 기죽거나 불평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할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 누구보다 컸다. 학교에서 밥 먹다가도 할머니 걱정을 하며 이 반찬 할머니가 좋아하신다며 말했었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절대 울 것 같지 않던 혜지가 눈물을 흘린 것도 10년 전 할머니의 장례식 장에서였다.

 

“얘들아~~!!!! 오랜만이다!!! 나 진짜 집에서 혼자 있으면서 너무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다. 너네 없었으면 내 동생이랑 인형놀이나 하고 앉아있었을 걸? 진짜 이게 얼마만이고.”

혜지가 상가 입구에 앉아 있는 우리를 발견하곤 뛰어오면서 말했다. 먼저 와 있었던 나랑 수진이는 그런 혜지가 웃겨서 한참을 웃었다.

수진이는 나랑 성격이 가장 잘 맞는 친구이다. 성격이 잘 맞아서 고등학생 때도 거의 자매처럼 지냈고 힘들었던 공부도 이 친구의 도움으로 잘 이겨낼 수 있었다. 대학교도 같이 가자고 원서도 똑같은 곳으로 넣었는데 과는 다르지만 같은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수진이는 같이 지내는 친구들 가운데서도 유일하게 내 사정을 다 아는 친구였으며 지금까지도 변함없는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ㅋㅋㅋ혜지야 니는 진짜 변한 게 없네. 혜연이랑 잘 놀아주면 되지 왜 또 우리를 부른거야!”

혜지가 자리에 앉자 내가 귀찮다는 듯이 웃으며 장난 섞인 말을 했다.

“내가 심심해서 안그나. 너네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다 모솔인데 크리스마스에 집에만 있으면 너무 우울할 거 같더라. 그래서 이 언니가 너네랑 놀아줄라고 그란다.”

“이럴 때만 언니래ㅋㅋㅋ. 좀 다른 때도 언니 노릇 해봐라.”

“나야 뭐 항상 언니 노릇하지. 그나저나 다른 애들은 아직이가?”

수진이랑도 인사를 나눈 혜지가 폰을 들여 다 보며 주변을 둘러본다.

몇 분 뒤. 저 멀리서 빨간 망토를 입은 민정이가 걸어오고 있었다.

“민정이 저기 오고 있네. 오늘을 빨간 망토인가봐. 역시 민정이답다.”

민정이는 우리 보다 몸이 뚱뚱했지만 그것을 감추기 위해서 옷 입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원색의 옷들을 좋아했었는데 그렇게 입으면 날씬해 보인다고 믿었던 것 같다. 학교에도 빨간 코트를 입고 왔다가 담임 선생님께 혼난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있고서도 다음 날이면 파란 코트를 입고 오던 민정이었다. 담임 선생님도 더 이상 안 되겠는지 민정이 부모님을 학교에 불렀더랬다. 이후 민정이는 관심 분야를 살려서 패션디자인학과로 진학했고 한동안 연락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10년 전 혜지 할머니 장례식 장에서 만났다. 그 날은 민정이가 살아있음에 놀라고 살을 쏙 뺀 모습에 두 번 놀랬다. 아직까지도 그 생각만 하면 웃음이 나온다. 민정이는 철부지였지만 우리 중에서 가장 애교 많은 친구였으며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친구였다.

 

“얘들아~ 많이 기다렸지? 미안해. 내가 버스를 놓쳐서 다음 거 탄다고 늦었어.”

민정이가 옆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ㅋㅋㅋ우린 니가 그 이유 때문에 늦은 게 아니란 걸 알지.”

나는 웃으며 민정이에게 말했다.

“헉...역시...너네는 못 속이겠다. 미안해. 사실 나 옷 뭐 입을까 고민하다가 늦었어.”

두 손을 모아 얼굴 앞에 갖다 대며 민정이가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거 같더라. 근데 니 오늘 좀 상큼한데? 크리스마스 분위기 제대로다.”

빨간 망토를 빤히 쳐다보던 혜지가 자기도 입어보고 싶은 듯 말했다.

“진짜? 나 엄청 고민했거든. 초록망토가 더 나을까 싶어서.”

망토에 달린 솜방울을 만지작거리던 민정이가 그것을 벗어서 혜지에게 입어보라고 건내주었다. 망토를 받은 혜지는 그것을 입어보았다. 혜지는 가끔씩 민정이의 옷을 입어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민정이도 거침없이 내어준 것이다.

“ㅋㅋㅋ역시 너네 둘은 못 말린다. 혜지 니도 예쁘네.”

옆에서 가만히 보고만 있던 수진이가 한 몫 거들며 혜지를 칭찬했다.

한참 웃고 떠들었더니 아직 오지 않은 친구들이 갑자기 생각났다.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진영과 유정에게 연락을 했고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으니 먼저 놀고 있으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민정이가 옷 구경하러 가자며 우리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30분 쯤 뒤에 유정과 진영이 도착했다. 유정과 진영은 도시 변두리에 살았기 때문에 시내로 나오려면 시간이 좀 걸렸다.

 

유정은 찡그림이 없는 친구였고 항상 웃음이 가득한 밝은 친구였다. 아버지와 떨어져 살았으나 어느 것 하나 삐뚤어진 것 없이 모범적으로 잘 자랐다. 어떤 일이든지 자기보다 주변 사람들을 챙기려고 했고 힘든 일이 있어도 별로 내색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인 우리들도 유정이의 집안사정을 졸업하기 전까지 알지 못할 뻔 했다.

우리 중에서 가장 키가 컸던 진영은 공부를 잘해서 우리에게 많은 도움을 준 친구이다. 진영은 강아지를 무척이나 좋아해서 집에 강아지를 5마리나 키우고 있었다. 학교에 와서도 쟤가 전교 1등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강아지 이야기만 했었다. 우리도 한 번 진영이 집에 가 본 적이 있는데 그날 이후로 나는 그 집에 절대 가지 못했다. 커다란 몸집의 삽살개와 진돗개가 5마리 있었는데 그 중 훈련이 덜 된 진돗개 한 마리가 내 다리를 물었기 때문이다. 크게 깨문 건 아니어서 아프진 않았지만 놀라기도 하고 왜 하필이면 나인가라는 생각에 펑펑 울었던 날로 기억한다. 그날 이후로 개에 대한 공포증이 생긴 건 비밀이다. 진영은 뭐든 챙겨주는 걸 좋아해서 집에서 수확한 옥수수나 고구마를 삶은 날이면 학교에 들고 와서 우리와 나눠 먹었다.

 

“얘들아 미안해. 너무 늦었지. 우리 빨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진영과 유정은 입이라도 맞춘 듯 말했다.

“너네 왤케 늦게 왔노? 너네 기다린다고 목 빠지는 줄 알았다.”

혜지는 둘을 살짝 째려봤지만 동시에 입가에는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혜지야 다행히 목은 붙어있다. 가자. 내가 맛집 알아왔어.”

능청스럽게 진영이가 혜지의 말을 받아치자 모두들 웃었다.

“잠시만! 우리 스티커 사진 안 찍을래? 아까 옷 가게 둘러보다가 스티커 사진 찍는데 있던데 같이 찍었으며 해서.”

민정이가 같이 추억거리로 삼자며 스티커 사진을 찍자고 했다.

“오 그래? 그럼 사진 찍고 밥 먹으러 가지 뭐.”

모두 좋다며 사진을 찍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이 사진이 인생의 큰 후회를 남기게 할 줄 몰랐다.

사진관에 들어서자 우리와 같은 많은 학생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사진을 받아 든 학생들 한 편에서는 웃음소리가, 한 편에서는 탄식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사진 찍을 배경을 고르고 각자의 포즈를 취하며 단체사진을 찍었다. 사진관 아저씨는 학생들이 많이 와서 좀 기다려야 된다며 1시간 뒤에 사진을 찾으러 오라고 했다. 우리는 밥을 먹기 위해 상가에서 나왔다.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제법 났다. 줄 지어선 건물들은 형형색색의 불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거리에 울려 퍼지는 크리스마스 메들리는 사람들로 하여금 설레게 만들었다. 우리도 그 기분에 한껏 취해서 점심을 먹은 뒤 사진을 찾으러 다시 사진관으로 갔다.

 

사진을 찾아 든 우리는 어떤 사진이 잘 나왔는지 고르기 시작했다.

“이거 셋 중에 뭐가 나아?”

민정이가 사진 세 장을 얼굴 앞으로 들어 올려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난 이게 나은 거 같은데?”

시력이 나빴던 혜지가 민정이 앞으로 가까이 다가와 사진 하나를 가리켰다. 하얀 배경 앞으로 두 줄 가지런히 서서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 웃고 있는 모습이었다.

“응, 나도 이 사진이 제일 괜찮은 거 같아!”

진영은 혜지가 가리킨 사진을 가리키며 말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친구들도 모두 동의했다.

“얘들아 그럼 우리 이 사진 프사로 해놓을까? 언제 또 모일지 모르는데 다같이 프사 바꾸자”

선택한 사진이 출력되어 나온 것을 하나씩 나눠주며 유정이가 말했다.

“그래 그러자 우리 프사로 해놓자.”

“좋지. 그럼 프사로 해놓고 우리 2차 갈까?”

나와 수진이가 예쁜 카페를 안다며 그곳으로 가기로 하고 사진관을 나왔다. “행복을 만들어 드립니다.”라는 이름의 카페가 SNS에서 한참 뜨는 곳이라는 소식을 전해 듣고 위치를 찾기 위해 혜지가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여기 케이크가 그래 잘 맛있데. 가자! 가자!”

검색을 끝낸 혜지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위치까지 다 파악하고 앞장서서 걸어갔다.

 

“어서오세요.”

키가 크고 앳된 얼굴의 남종업원이 가게에 들어선 우리를 향해 인사했다. 창가에 자리를 잡은 우리는 각자 마시고 싶은 음료와 디저트를 시켰다. 기다리는 동안 혼자서 셀카를 찍기도 하고 몇 명이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수다도 떨었다. 몇 분 뒤 우리가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가 나오고 다들 감탄하며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었다.

“역시 SNS에서 사람들이 추천하는 이유가 있네. 확실히 다른 집보다 맛있어.”

“마자. 오늘 같은 날 여기 오니까 크리스마스 분위기 나고 좋은데? 종업원들도 소문대로 잘 생겼고 눈호강 제대로다ㅋㅋㅋ.”

카운터 쪽을 흘깃거리던 혜지의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고 빨개진 귀를 가리느라 바빴다.

“아이고! 혜지 또 저런다. 혜지 니는 잘 생긴 종업원 볼라고 여기 오자 그랬쟤.”

“아니 뭐...그냥...”

혜지는 당황한 듯 얼굴이 잘 익은 홍시처럼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우리는 그런 혜지를 놀리느라 전화벨소리가 울리는 것도 듣지 못했다. 두 차례 울린 후에야 유정은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건 이는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 미진이었다.

 

미진은 키가 크고 눈코입도 커서 혼혈인이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외모에 걸맞게 성격이 시원시원했으나 매사에 불만이 많았다. 미진은 우리에게 자주 불평불만을 털어놓았다. 그럴 때 마다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것을 불편하게 여기는 친구들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알게 된 일이지만 유정이와도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수화기 너머로 미진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흘러나왔고 유정의 얼굴은 급격히 일그러졌다. 유정은 언성을 높이며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니가 아무 연락도 없었던거고 그걸 왜 나한테 따지는데!”

유정은 울먹이며 억울하다는 듯 크게 소리쳤다. 우리는 상황이 안 좋게 흘러가고 있음을 인지했다. 유정 옆에 앉아있던 진영은 유정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둘의 대화를 듣기 시작했다. 그러곤 미진의 말을 우리에게 실시간으로 전했다. 십 여 분간 통화가 이어지더니 유정은 신경질적으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우리 이제 미진이랑 연락 끊기로 했어.”

유정은 땅을 향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다시 고개를 들고 우리에게 말했다.

“뭐?????”

진영에게 대충 대화 내용을 전해 들었지만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몰랐다. 우리는 너무나도 당황한 나머지 크게 소리쳤다.

“갑자기 뭔데? 왜 그러는 건데?”

민정이는 얼른 말해보라는 듯이 유정을 재촉했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미진은 오늘 중요한 약속이 있었고 그 약속에 늦는 바람에 휴대폰을 챙기는 것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침에 약속을 잡은 우리의 연락을 받지 못했고 오후 늦게 집에 돌아와 우리의 문자를 보게 된 것이다. 미진은 늦게라도 우리를 만나러 오려고 했었다. 하지만 자기를 빼고 우리들만 모여서 사진을 찍고 밥을 먹고 또 그 사진을 전체 공개를 해버렸으니 기분이 상했던 것이다. 미진이의 말은 이랬다. 너희들이 나를 친구로 생각하느냐고, 어떻게 나를 빼놓고 사진을 찍고 그렇게 버젓이 전체 공개를 할 수가 있느냐고, 너희들한테 실망했다고. 이 말을 들은 유정은 순간 지금까지 미진이 자신을 대했던 태도가 떠올랐고 그것이 분해서 이번 일과 관련하여 다투기 시작한 것이다.

미진과 유정은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 나중에 민정이가 말한 거지만 중학교 때부터 미진과 유정의 사이는 틀어져 있었다고 했다. 그 시절 유정은 미진에게서 일방적으로 괴롭힘을 당했으며 티를 내기보다는 은근히 뒤에서 괴롭혔다고 했다. 그래서 그 당시 전학을 생각했었지만 집에서는 모르는 사실이었기 때문에 유정은 쉽게 전학을 갈 수가 없었다고 했다. 이후 둘은 같은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서 여러 친구들이 함께 어울리다보니 어쩔 수 없이 같은 무리에 포함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일도 유정이가 미진에게 있어서 가장 만만한 상대라서 전화를 한 듯싶다.

 

“그래! 잘 됐네! 어차피 걔는 항상 삐딱했었어. 매사에 부정적이고.”

유정이의 말이 끝난 뒤 한껏 격앙된 분위기에서 먼저 말을 꺼낸 건 민정이었다. 유정이 과거에 미진으로부터 어떤 수모를 당했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흥분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긴 했지. 사람 불편할 정도로 뒤에서 다른 애들 까고. 불만도 많고. 잘했다. 유정아. 그냥 오늘부터 걔랑은 연락도 하지 말자.”

잠자코 듣고 있던 진영도 아무리 미진이 화가난다해도 이런 식으로 전화하는 건 아니라며 거듭 말했다.

“아오! 내 그 년 언젠가는 이런 사단을 낼 줄 알았다. 김유정! 니는 그냥 나한테 바꿔주지 그랬노. 내 같았으면 진짜 욕을 한바가지 해줬을 텐데.”

아까부터 옆에서 계속 씩씩대던 혜지가 할머니에게서 배운 욕을 서슴없이 내뱉으며 달아오른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했다.

“혜지야 진정해. 같이 화낼 거 없어. 미진이가 그런다고 해서 우리도 미진이처럼 화내고 욕하고 그러면 똑같은 사람 되는 거야.”

나와 수진은 순식간에 일어난 이 일이 너무 당황스러워서 사태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심각성을 파악하고 난 후 나는 우리가 이렇게 행동하는 건 오히려 미진과 똑같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무리 미진이 잘못했다고 해도 그동안 잘 지내왔던 친구사이인데 이렇게 연락을 끊는다는 건 너무 슬픈 일이었다. 우리 둘은 이러지 말자고 말렸지만 유정이가 당한 걸 생각하면 계속 말릴 수도 없었다.

“야 니는 몰라서 그런다. 미진이 저 가스나가 얼마나 여우인지 아나? 고등학교 다니면서 아버지 뻘 되는 사람이랑 사귀었다는 소문도 있었던 애다. 걔랑은 연락 안 하는 게 우리한테는 더 도움될 걸? 이참에 그냥 연락 끊자. 유정아 니도 당한 거 많으니까 이참에 그냥 연락 끊어버려.”

혜지가 분을 삼키지 못해 카페가 떠나 갈 듯 크게 소리쳤다. 다른 친구들도 한동안 이 일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분위기가 고조 되어 있었다. 여기서는 더 이상 민폐라는 생각이 들어 일단 카페를 나가기로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자연스럽게 미진과 멀어지게 되었고 친구들에게서 길을 지나가다 우연히 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인사를 했냐는 물음에는 하지 않았다는 대답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로 미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누가 먼저 미진에게 연락하는 것도 사실상 힘들었다. 다들 그것에 대해서라면 예민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에 암묵적인 약속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의 생각을 잘 모르겠지만 난 그날 일이 너무나 후회된다. 미진이가 너무 보고 싶다.

 

 

똑똑똑......

똑똑똑......

쾅쾅쾅!!!...

 

“엄마 문 좀 열어봐. 안에 없어? 엄마!”

 

작은 딸이 찾아왔나보다. 깊은 숨을 내쉬며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몇 십 년이나 흐른 일이지만 기억은 생생하다. 심장 한 가운데 가시가 깊게 박힌 듯 오랫동안 찌릿찌릿 거렸다.

며칠 전 극심한 두통과 불규칙한 호흡에 급하게 병원을 갔었다. 나이가 제법 있어 보이나 화장을 짙게 한 간호사가 다가왔다. 내게 말을 걸었지만 커다란 파도에 휩쓸려 요동치는 듯 머리가 아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 때 잠깐 의식을 잃은 듯하다. 한 동안 주변이 시끄러웠고 간호사가 혈압, 맥박을 재어주기 시작했다. 스치는 손길이 참 따뜻했다. 어디선가 느껴본 듯해 눈을 떠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흔들리는 시야 탓에 자세히 볼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깊은 잠을 취했다. 수술 이후로 가끔씩 심장이 쥐어짜는 듯 아프고 극심한 두통증세가 나타났기 때문에 일주일 중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다. 내가 인생을 살면서 잘못한 일들에 대해 벌을 받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 중 하나가 그때의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코웃음 치게 만드는 아주 코딱지만한 일이다. 하지만 이 일로 내 평생 한 사람을 잃었다. 왜 그때는 몰랐을까. 왜 그 일이 있은 이후로 미진에게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을 걸까. 나도 정말 나쁜 년이구나. 그 당시 우린 모두 어렸다. 하지만 그 일 이후로 연락을 했어야 했다. 지금 와서 연락한들 서로의 오해만 깊어져 더 이상 회복하긴 어려울 것이다.

정신이 어느 정도 돌아왔을 때 눈을 힘겹게 떠 보니 눈앞에 그녀가 있었다. 시간이 몇 십 년이 흘렀지만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내 이름을 보고서 긴가민가하다가 생년월일을 보고서 알아챘다고 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친구가 아닌가. 눈물이 눈앞을 가렸다.

“미진아......”

무슨 말을 먼저 꺼내야 할까 수없이도 고민하다 힘겹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오랜만에 부르는 그녀의 이름은 참 따뜻했다. 미진은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내 손을 살며시 잡아주었다. 너무 따뜻해서 얼어붙은 심장이 떨려 왔다. 미진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예전에 비해 많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손과 얼굴에서 느껴지는 세월의 흔적을 보며 참 힘든 삶을 살았나보다 생각했다.

회복하기 어려울 것 같은 우리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이어붙이고 싶었다. 손을 붙잡고 우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의 진심, 나의 진심, 그리고 우리의 진심. 친구들도 아마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한 달 전 우리 모임에서 혜지가 꺼낸 말이 있었다.

“얘들아, 나 사실 어제 밤 꿈에 미진이가 나왔거든. 걔가 나오자마자 눈이 떠지더라고. 근데 그 때 느껴지는 감정은 분노가 아니라 슬픔이었어. 그렇게 앉아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 때 그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더라. 이 이야기를 너네한테 말 할까 말까 수도 없이 고민했어.”

혜지는 그때 정말로 그날 일을 후회하는 듯 한 눈빛이었다. 함께 모인 친구들도 동의한다는 듯 서로의 생각을 꺼내놓았다. 금기시 되던 이야기가 몇 십 년 만에 풀린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도 이제 늙었구나 생각했다.

미진은 내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더니 자신도 많이 후회하고 반성한다고. 특히 유정에게 참 많이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정의 번호를 알려줄 수 없겠느냐고 물었다. 난 흔쾌히 유정의 번호를 알려주었다. 미진과 유정의 사이는 내가 끼어들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정이 왜 미진에게 자신의 번호를 알려주었냐며 나에게 따질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길 빈다. 너무 오랜 시간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냈기 때문에 더 이상 놓치고 싶지 않다. 심장에 박혀있던 가시가 빠지려는지 간질거렸다.

 

“엄마!”

작은 딸은 내가 문을 열지 않자 집 외관 테라스를 따라 작은 방 창문 앞으로 왔다. 창문을 두드리며 나를 애타게 불렀다. 그제서야 작은 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눈물 범벅이 되어 화장이 다 지워져 있었다. 아마 며칠 전 내가 병원에 간 것이 걱정이 되어 급하게 내려온 듯 하다. 나는 손으로 현관을 가리키며 ‘현관’이라고 입을 오물거렸다. 알아들었다는 듯 작은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현관 문을 열자 작은 딸이 내 품으로 안겼다.

“엄마! 왜 전화도 안 받고. 오니까 문도 안 열어주고.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몸은? 괜찮아?”

“응 괜찮아. 아이고, 우리 작은 딸 걱정 많이 했나보네. 엄마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

나는 쉽게 울음을 그치지 않는 작은 딸의 눈물을 닦아주며 등을 토닥였다. 이 아이가 걱정했을 걸 생각하면 미안했다. 난로 앞에 앉히고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을 타 주었다. 작은 딸은 어렸을 때부터 따뜻한 코코아 한 잔이면 울음을 그쳤었다. 울음을 그친 작은 딸은 내 증상에 대해 세세한 것 까지 물어보았다. 난 괜찮다고 몇 번을 말했지만 작은 딸은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자기가 사는 곳으로 이사 와서 함께 살자고 했다.

“이사를 오라고? 작은 딸. 엄만 여기가 좋아. 여긴 엄마 친구들도 있고 가끔씩 찾아오는 손님들 보면서 사는 것도 꽤 좋아. 딸. 엄마 걱정은 너무 하지 마. 엄마는 이 곳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 다 놓고 갈 수 없어.”

“그래도 엄마, 이렇게 혼자 둘 수는 없어. 며칠 전처럼 또 그런 일이 있으면 어떡해. 큰 언니도 해외 나가 있으니까 올 수도 없는 거고. 그냥 나랑 같이 가자.”

딸은 애원하듯 내게 말했다. 작은 딸의 심정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집에는 많은 추억이 담겨져 있었고 무엇보다도 아직 친구들과의 문제도 정리되지 않았다.

“딸, 사실 엄마 며칠 전 병원에서 오랫동안 연락 끊고 살던 친구를 만났어. 그 친구가 거기 수간호사로 있더라고. 몇 십 년 만에 만난 친구라 그리움도 그만큼 컸나봐. 거의 3시간 넘게 이야기 나눴어. 다음 주에 다른 친구들과도 함께 만나기로 했고. 이제 겨우 오해 풀었는데 나 혼자 떠나 버리면 서로 정말 슬플 것 같아. 딸 엄마한테도 시간을 좀 줄래? 엄마도 딸 마음 아프게 하는 거 싫어. 좀 더 생각해 볼 테니까 나에게도 시간을 좀 주렴.”

“정말이야? 엄마가 보고 싶어 했던 그 이모? 정말 잘 됐네. 그래 나도 이제 겨우 자리 잡은 거라서 사실 힘들어. 그래도 엄마가 아프다고 하니까 올라오라고 한 건데. 엄마 마음이 그렇다면 엄마가 편한 대로 해요. 대신 매일 나한테 꼭 연락하고! 전화가 안 되면 문자라도 꼭 남기고! 알겠지 엄마? 그리고 엄마 병은 사실 외로워서 더 아프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 그 이모들과도 자주 만나서 수다도 떨고. 마음 편하게 가져요. 알겠죠?”

“그래 알겠어. 나도 그렇게 우연히 그 친구를 만나니까 참 좋더라. 하루 빨리 오해 풀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작은 딸도 너무 조급하게 여기지 말고 건강 잘 챙기고. 알겠지? 너 밥은 먹었어?”

예전에 미진과 관련된 이야기를 작은 딸에게도 한 적이 있었다. 작은 딸은 그 이야기를 듣고서 실컷 웃었다. 엄마 친구들 너무 유치하다고. 뭐 그런 걸로 다 싸우냐고. 그때 이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나도 헛웃음을 지었던 것 같다. 근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서 다시 다 같이 모인다는 말을 들었으니 작은 딸도 기뻤나보다.

부엌으로 들어가 저녁상을 차렸다. 급히 또 올라가봐야 된다는 딸의 말에 부랴부랴 상을 차렸다. 찌개를 끓이고 딸이 좋아하는 반찬들을 꺼냈다. 접시에 반찬을 덜어서 식탁에 정갈하게 올려놓고 딸을 불렀다.

“딸 맛있어? 거기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지? 이거 너가 좋아하는 반찬이니까 나중에 갈 때 싸줄게. 가져가서 꼭 밥이랑 같이 먹어야 해.”

딸이 좋아하는 어묵볶음과 계란을 숟가락 위에 올려주며 말했다. 딸은 한 입 가득 집어넣고 오물거렸다. 나는 흰 쌀밥 위로 다른 반찬을 올려주었다. 딸은 그것을 잠자코 보고 있었다.

“거기서는 너무 바쁘니까 밥도 눈치껏 먹어야 되고 못 먹을 때도 많아. 선배들도 동기들도 다들 너무 열심히 하니까 오히려 무섭고. 나는 뭐하는 건가 싶고. 환자들은 나만 바라보고 있는데 어느 순간 그게 무서워지는 거 있지. 그래서 하루에 수천 번도 더 그만두고 내려오고 싶었어. 너무 힘들어서 화장실에서 몰래 울기도 했었어. 그런데 그 감정도 익숙해지더라고. 그냥 무뎌졌어. 참 사람이라는 게 신기해. 영원히 슬프다는 법도 없더라. 엄마도 점점 기억 속에서 잊혀지게 되고 거기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 그 순간에 집중하게 되더라고. 그러고 있을 때 엄마가 상태가 안 좋다는 연락을 받았어. 그 순간 정신이 바짝 들더라고. 가장 중요한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는 걸. 엄마, 미안해요. 내가 너무 내 생각만 한 것 같아서. 그 때 나 올려 보낼 때도 울면서 나보고 가지 말라고 했었는데 매정하게 가버린 거 항상 마음에 걸렸어. 그래서 나 이왕 서울에서 시작한 거 거기서 실력 키워서 엄마 병 고쳐줄게. 그때까지 엄마 아프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고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요. 친구들이랑도 잘 화해하고. 나이 먹어서 그게 뭐야.”

작은 딸은 나에게 핀잔 아닌 핀잔을 주었다. 딸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아이도 그 동안 참 많이 힘들었나보다. 집을 떠나갈 때 보다 더 말라 있었다. 나는 고개만 살짝 끄덕인 뒤 얼른 먹으라며 밥을 향해 눈짓했다. 말을 하지 않아도 서로 마음이 통했을 것이다. 작은 딸은 밥을 두 공기나 해치운 뒤 이제는 가야된다며 서둘러서 짐을 챙겨 떠났다. 커다란 공간에 다시 혼자 남았다. 거실 한 벽면을 차지한 창문 앞으로 다가가 커튼을 젖혔다. 벌써 밤이 되어 온 세상이 어두웠다. 어제와는 또 다른 풍경에 자세히 밖을 들여다보았다.

“어!”

손톱달이 비추는 빛 아래로 때 이른 하얀 눈이 살포시 내리고 있었다. 올해 첫 눈이었다. 메밀 꽃 들은 하얀 모자를 뒤집어 쓴 채 기분이 좋은지 몸을 살랑 살랑 흔들어댔다. 지나가던 연인들은 서로 부둥켜 앉고 사진을 찍는데 여념이 없었고 혼자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긴 이들도 있었다. 한참을 바라보다가 커튼을 닫았다. 그러곤 작은 딸 아이 방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아까의 기억이 떠올랐다. 애써 잠을 청하고자 딸아이 침대에 누워 보았다.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참 길고도 긴 밤이 될 것 같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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