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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동아 은자동아21회 창원대문학상 소설부문-가작
  • 창원대신문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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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자동아, 은자동아

 

하진주/인문대 국어국문학과 3학년

 

 

혼자 병원에 앉아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주변을 꼭 둘러보게 된다. 남편과 함께 온 여자는 잔잔하게 미소를 띠고 남편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가 든 중년의 여인과 함께 온 젊은 여자는 처음 병원에 온 모양인지 불안함을 숨기지 않은 채 연신 중년 여인의 손을 잡고 주물럭대고 있었다. 다행히도 평일 오전의 병원은 그나마 사람이 없어서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끄러운 병원 의자에 혼자 앉아 있다 보면 나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보게 되는 것이다. 꼭 나처럼 온 사람이 있나 살펴보는 것처럼. 누군가 아이를 데리고 온 모양인지 응애응애, 아기의 울음소리가 귓가를 찔렀다. 앙칼진 울음소리를 피하기 위해 버릇처럼 테이블 위에 놓인 여성 잡지를 든다. 종이 위를 어지럽히는 글자의 나열을 빠르게 훑듯이 내 이름이 얼른, 불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 끝에 익숙한 목소리가 외는 세 글자가 들렸다.

 

“이은지님.”

 

들고 있던 잡지를 내려놓고 진료실로 걸어갔다. 진료실은 평소와 같았다. 미미하게 풍기는 병원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검사 시작하겠습니다. 사무적인 어투로 의사가 말했다. 올해로 서른이 된다는 담당 의사는 머리를 올려 묶어서 드러난 단정한 이마가 유독 눈에 띄는 아가씨이다. 익숙하게 옷을 걷고 침대에 비스듬하게 누웠다. 이제는 눈에 거슬릴 정도로 부푼 배 위에 차가운 젤이 뿌려졌다. 배에 진득하게 뿌려진 젤 위를 초음파 막대기가 슬금슬금 기어 다녔다. 곧이어 흑백의 화면에 조그마한 덩어리가 꼬물거리는 것이 보였다.

 

“태아 모습 보이시죠?”

“네.”

“심장도 제대로 뛰고 있고요. 등뼈도 곧게 서있고, 탯줄도 목을 감지 않았어요. 이제 4개월에 접어드시니까, 심박음도 들으실 수 있어요. 목둘레는 정상적인 범위 안이네요.”

 

화면을 보며 요목조목 설명하는 의사의 말이 꼭 라디오로 듣는 것 마냥 멀게만 느껴졌다. 내 모든 신경은 오로지 꼼지락대는, 점 같은 아이의 모습에만 집중 될 뿐이었다. 꼬물거리는 작은 점. 곧 화면이 꺼졌다. 배 위에 뿌려졌던 차가운 젤이 걷혔다. 등받이가 없는 동그란 의자에 앉자 의사의 설명이 이어졌다.

 

“산모님도 태아도 모두 건강한 상태예요. 이제 입덧은 많이 가라앉으셨죠?”

“네. 그런데 배가 조금 아파서….”

“자연스러운 현상이에요. 아랫배가 부풀면서 배가 당기는 거니까 크게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배를 따뜻하게 해주시면 괜찮아질 거예요.”

“알겠습니다. 그런데, 선생님. 저… 혹시 저번에 말씀드렸던 거 알 수 없을까요?”

“태아 성별 말인가요?”

 

진료 차트를 헤집으며 말을 하던 의사의 표정이 굳기 시작했다. 나도 안다. 곤란한 질문을 한 것쯤은. 필사적으로 변명 아닌 변명을 대본다. 시어머니가 꼭 알아오라고 했다고, 아이 옷이라든가 용품을 미리 준비하고 싶다고. 들어오는 선물이 성별에 맞지 않으면 바꾸고 싶다고. 응애, 꼭 고양이가 우는 것 같은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들어도 명백하게 변명인 말에 의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원칙 상 알려드릴 수 없는 거 아시죠, 산모님? 산모님께서는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으니까 말씀 드리는 겁니다. 핑크색 옷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 검진 때까지 안정 취하는 거 잊지 마시구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의사의 말을 뒤로하고 진료실을 나왔다. 아기한테는 아무 문제없다. 건강한 아기다. 이걸로 만족하면 된다. 무심코 주먹을 꽉 쥐어버렸다. 10만원이 아슬아슬하게 안 되는 진료비를 지불하고 병원을 나오는 길에 문득 시선을 돌리자 아기 옷을 파는 가게가 보였다. 아기 옷을 전문으로 파는 가게인지 투명한 유리문에는 앙증맞은 날개가 달린 아기천사 그림이 붙어있었다. 성별이 모호한 아기 천사의 두 뺨은 불그스레하게 물들어 있었고 예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자연스레 아기천사의 화살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눈이 돌아갔다. 화살 끝, 쇼 윈도우 너머로 보이는 분홍색 배내저고리가 눈에 띄었다. 한참을 그 앞에 서서 발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있었지만, 나는 유리문을 열지 못했다.

 

남편의 퇴근시간까지는 이제 한 시간 남짓 남았다. 겨울의 해는 짧아, 거실의 구석에 얼핏 걸린 해는 벌써 베란다 너머로 도망가 버렸다. 거실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고풍스러운 시계는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포근하게 꾸민 신혼집에 어울리지 않게 앤티크한 분위기의 시계는 시어머니가 기어코 안겨준 선물이었다. 소파에 앉아 멍하게 시계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느다란 분침이 두꺼운 시침을 추월했다.

불도 켜지 않은 채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 보니 문득 시어머니의 말이 생각났다. 시어머니가 신혼집에 왔을 때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말했었다. 멍이라도 만들겠다는 양, 내 손을 꽉 쥐고 내 두 눈을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었다. 이 집에 살다 간 사람들은 모두 떡두꺼비 같은 아들 하나씩 낳고는 잘 돼서 나갔다더라. 남들 하는 것처럼 너희도 떡두꺼비 같은 아들 품에 안고 더 너른 집으로 홀가분하게 이사 가야지. 옴짝달싹 못하고 덫에 걸린 사냥감마냥 그녀가 말하는 모습을 쳐다보고만 있었다. 새빨간 루즈를 바른 입 사이로 혀가 날름, 뱀처럼 꿈틀거리는 그 모습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고개만 끄덕였을 뿐.

 

“여보. 불도 안 켜두고 왜 그렇게 앉아있어?”

 

탁, 스위치를 누르는 소리와 함께 거실에 빛이 돋아났다. 상념 속을 헤엄치다보니 남편이 온 것도 몰랐다. 소파에 멍하게 앉아있는 내 옆에 와 그가 앉았다. 소파 한 쪽이 가라앉았다. 다녀왔어? 라며 그의 어깨에 기대자 그가 작게 웃었다.

 

“오늘은 왜 어리광이야. 병원에 혼자 다녀와서 그래?”

“응. 혼자 온 사람은 나 밖에 없었어.”

“미안해. 주말이면 같이 가 줄 수 있는데, 평일이라 회사 빠지기가 조금 그랬어.”

“알지.”

“애는 어떻대? 잘 크고 있대? 우리 꼼꼼이 아빠한테 말 좀 해봐요.”

 

그가 능청스레 내 배에 귀를 가져다댔다. 그 모습에 잠깐 웃음이 나왔다가, 다시 사그라들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네. 아기가 말하기 싫은가봐. 입으로는 투덜거리면서도 표정은 푸근해 보이는 그의 머리를 슬 밀어냈다.

 

“무거웠어? 미안해.”

“공주님이래.”

“뭐?”

“…의사 선생님이 공주님이라고 하더라. 분홍색 옷을 준비 하셔야겠네요, 산모님. 이렇게 말하던데.”

“진짜? 잘됐다.”

 

자기 닮으면 예쁜 딸이겠네. 첫 아이는 딸이 좋다고 생각했어. 배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그가 내 손을 잡고 손을 주무르며 말했다.

 

“엄마한테도 말해줘야겠네.”

“…어머니한테?”

“응. 말해야지. 내가 말할게.”

 

그가 핸드폰을 꺼냈다. 어딘가에서, 또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6자매의 막내다. 위로 언니만 다섯. 미자언니, 순자언니, 득남언니, 말자언니, 말순언니. 막내로 태어난 나에게는 1년간 이름이 주어지지 않았다. 몸이 약하게 태어난 탓도 있을 테지만, 가장 큰 이유는 할머니의 반대 때문이었다고 한다. 출생신고를 하려 할 때마다 할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곧 뒈질 년한테 이름은 뭣하러 붙이노? 내비 둬라!”

 

이름을 받기 전까지도 시름시름 앓았던 나는 그럼에도 죽지 않고 꿋꿋하게 1년을 버텼다고 한다. 할머니가 이장님 댁에 불려간 사이, 어머니는 할머니 몰래 출생신고를 하러갔다. 이 딸이 마지막 딸이기를, 다음은 아들이기를 바라는 이름이 아니라 딸을 낳는다면 붙여주고 싶었던 이름이었다고 한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어머니를 노려봤고, 언니들이 나를 숨겼다. 그렇게 우리는 이것이 당연한 일인 줄로만 알고 자랐다.

첫 딸, 미자언니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는 굳은 표정으로 입꼬리만 실룩거렸다고 한다. 아들을 낳아야한다, 아들을. 첫 아이를 임신해 아무것도 모른 채 할머니가 하는 대로 따르는 어머니에게 쉼 없이 중얼거리며 아들 낳는 보약이니 뭐니 한가득 먹였다. 그러나 그렇게 태어난 첫 손주가 딸이었다. 굳은 표정으로 하염없이 꼬물거리는 핏덩어리를 보고만 있던 할머니는 곧 큰 한숨을 쉬고 어머니에게 고생했다는 말을 내뱉었다. 할머니의 표정에 바싹 긴장하고 있었던 어머니도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줄줄이 태어나는 것은 딸이었다. 태몽이 하얀 백돼지 일곱 마리를 품으로 받는 꿈을 꾸었다던 할머니는 태몽의 의미를 알고 그렇게 굳었던 걸지도 모른다. 첫 아이가 아들이면 줄줄이 아들이요, 딸이면 줄줄이 딸이 태어난다고 해몽을 받아온 할머니의 표정은 절망적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 어머니가 임신을 하면 할머니는 절에 가 불공을 드렸다. 칠성당에 가 두 손이 발이 되도록 빌었다. 다음은 제발 딸이 아니라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할머니에게 끌려 같이 기도를 드리러 갔던 미자언니는 그 시간이 가장 싫었다고 한다. 꼭 자기가 태어난 게 죄인 것만 같아서. 자기가 딸로 문을 열고 나온 것이 잘못인 것만 같아서 말이다.

 

“천지신명님. 첫 딸 이후로 줄줄이 죄다 딸입니더. 즈이 죄 많은 며느리가 꼬옥, 꼭 아들 하나 낳게 해주이소. 안되믄 삼신할매헌티 부탁이라도 드리게 해주이소. 그래가 우리 동식이 정신 차리고 똑 집에 붙어있게 해 주이소. 천지신명님….”

 

할머니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당신께는 외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온 40년일 테니까. 술과 노름에 빠져 제대로 된 남편 노릇도 하지 않고 일찍 세상을 뜬 할아버지와 당신의 아들은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할 테니까. 그렇지만 씨도둑질은 못한다는 말이 있던가. 삯바느질과 날품팔이로 겨우 기른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똑같은 인간으로 자랐다. 어렸을 때부터 동리 대장 노릇을 하던 게 커서까지도 그런다며, 제 애비와 똑같이 술 마시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이 늘어가더니 이제는 계집질까지 한다는 소리가 들려온다고 탄식하는 할머니의 한숨은 술 냄새와 함께 날이 갈수록 깊어갔다. 그러면 그럴수록 할머니는 어머니에게 아들 낳기를 강요했다. 네가 아들을 낳아라. 그러면 동식이도 집에 딱 달라붙어있을 거야. 막연한 기대감이 할머니를 감쌌다. 그러던 와중에 어머니는 일곱 번째 아이를 임신했다. 바깥으로 돌아다니는 것도 질린 모양인지 한동안 집에 아버지가 계셨기 때문이었다.

 

“뭣 하러 집에 있나. 바깥으로 싸돌아다니기나 하지.”

 

미자언니의 가시 박힌 말과 순자언니의 싸늘한 표정이 차라리, 아버지의 얼굴보다 더 기억에 달라붙어있다. 어머니의 배가 불러질 때쯤에는 다시 바깥으로 놀러나가기 시작했지만. 우리는 멀쩡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는 날 보다 술에 취해 돈을 내놓으라며 어머니에게 윽박지르는 얼굴을 보는 날이 더 많았기에 우리는 아버지가 집에 없는 편이 더 좋았다. 동네 할머니들과 놀러 간다며 할머니까지 자리를 비우는 날이면, 우리 자매는 어머니 주변에 오골오골 모여 떨어지려 하지 않았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의 배는 불러왔고, 그럴수록 어머니는 더 힘들어했다. 여전히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버지. 아들을 낳으라고 재촉하는 할머니. 넉넉지 않은 집안 사정 때문에 남산보다도 더 부른 배를 가지고도 어머니는 일을 하러 나가야했다. 하루 종일 쪼그려 앉아 밭을 가는 어머니가 예정일보다 빠르게 출산하는 것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예정일보다 보름이나 빠르게 어머니는 산통을 겪었다.

우리 여섯 자매를 받아낸 산파가 또 도와주러 왔다. 산파는 익숙하게 대문을 지나 아랫목으로 들어섰다. 산파가 지나가며 힐끔, 우리 자매와 초조한 듯 치맛자락을 구겨 쥐는 할머니를 쳐다봤다. 그 눈길에 연민이 가득 담겨있었다. 동정받는 것 같은 그 눈길이 너무나도 싫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순자언니의 다리 뒤에 숨은 채로 문이 닫힌 아랫목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머니와 산파, 그리고 그들을 돕기 위해 미자언니가 들어간 방 안은 한동안 조용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방 안에서 귀를 찢을 것 같은 신음소리가 났다.

 

“으윽! 아아악!!”

“조금 더 힘을 줘! 옳지, 옳지!”

“아악!!”

“머리가 보인다, 조금 더!”

 

아악. 아아악. 어머니의 비명소리에 가까운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꼭 잡은 순자언니의 다리도 후들후들 떨려왔다. 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하염없이 괜찮아, 괜찮아, 하고 중얼거렸다. 뭐가 괜찮은지도 모르고 나는 언니의 말에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잡았던 순자언니의 다리에 내 손자국이 남았으니 오랜 시간이 지났을 터였다. 무슨 일이 생긴 거 아니야? 그렇게 중얼거린 순자언니가 나를 떼어놓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방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응애, 응애. 아기의 울음소리였다. 귀를 찢을 것 같은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울렸다. 그 울음소리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할머니였다. 초조하게 서있던 것이 착각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누구보다도 빠르게 아랫목으로 뛰어 들어갔다. 타들어가는 속 대신 태운 담배 덕에 쌕쌕거리는 숨소리와 눈앞을 아른거리는 치맛자락이 거친 바람소리를 남기며 지나갔다. 곧이어, 할머니의 노성이 아기의 울음소리를 덮었다.

 

“또! 딸년이가!”

“어머니!”

“할매, 안 됩니더. 할매!”

“염병할… 이 우라질년이 또 가스나를 놓았나 이 말이다!”

 

산파가 허둥지둥 땅을 기듯이 빠르게 집을 벗어났다. 피도 제대로 닦지 못하고 지저분해진 몰골로 그녀는 대문을 빠져나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연민이 그득 찬 눈으로 우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꼭 우리가 딸이라, 이런 일이 벌어진다고 말하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칠 줄 모르고 높아지는 아기의 울음소리와 그에 맞서듯 높아져가는 할머니의 고함소리, 그리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절규가 집에 들러붙었다.

쿵쾅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장지문이 벌컥 열렸다. 벽에 쾅, 부딪힌 문은 다시 반쯤 닫혔다. 씩씩거리는 숨을 주체하지 못해 쿨럭하고 기침을 하는 할머니의 손에는 작은 강보가 들려있었다. 볼록하게 솟은 강보에서는 끊임없이,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천에 덮여 희미하게 막힌 울음소리는 지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졌다. 응애, 응애. 귀에 박혀오는 높은 울음소리에 방에 들어가 있던 자매들도 하나 둘 씩 마당에 모였다. 대체 무슨 일이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모인 우리의 시선은 기듯이 방을 나와 할머니의 다리에 매달리는 어머니에게 꽂혔다. 땀으로 범벅이 되고, 핼쑥해진 얼굴이 된 어머니는 미자언니가 붙잡아 말리는데도 불구하고 할머니의 다리에 매달렸다. 필사적으로 할머니의 다리에 매달린 어머니는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어무이, 어무이… 잘못했심더, 예?”

“니 안 놓나!? 또 기집년 낳은 우라질년이 만다꼬 매달리는데?”

“어무이…! 아무리 그래도 아인 건 아입니더. 부모가 멀쩡히 두 눈 뜨고 살아있는데 양녀라니. 안됩니더, 안됩니더!”

 

필사적으로 매달려 잘못했다고, 안 된다고 중얼거리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 화를 돋우는지 할머니의 눈이 벌겋게 충혈 되기 시작했다. 몸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는 어머니를 발로 걷어차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악에 받힌 소리를 내지르느라 할머니의 목에 핏대가 툭툭 불거졌다. 할머니의 발에 채여 숨을 헐떡거리는 어머니의 앞에 우뚝 선 할머니가 원망을 가득 담아 쏘아붙였다. 할머니의 입에서 나오는 원망의 말은 오롯하게 어머니와, 우리 자매에게 향해있었다. 그 말을 듣는 언니들의 표정이,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언니들의 숙인 고개만이 내 기억 속에 박혀있다.

 

“내 놓으라 그 캤재? 니가 뭔 입이 있다고 씨부리노!! 집에 꼬추 하나 없이 기집만 덜렁 여섯이다, 여섯. 소를 사가 이래 새끼를 치바라! 돈이라도 되지. 돈도 안 되는 애물단지를 줄줄이 여섯이나 놓고 또 놓은게 딸이다!”

“어무이….”

“부잣집에 양딸로 간다 아이가, 어? 어데 팔아 묵는 거도 아이고, 감나무집에서 양딸로 어화둥둥 곱게 키운다고 내가 안 카드나! 이놈의 기집, 키워서 뭐할라꼬? 아들도 아닌 이 망할 기집을!”

“….”

 

할머니를 말리지 못한 것은 그녀의 말 대로 우리가 딸이기 때문이었다.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가슴에 가시가 되어 박혀들었다. 우리 자매는 모두 숨도 쉬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었다. 할머니의 숨이 거칠어졌다. 할머니의 원망에 어머니가 눈물을 뚝뚝 떨궜다. 아이를 막 낳은 직후의 아픈 몸에 쏟아지는 원망. 설움이 북받치는지 울음기를 참지 못해 헐떡이는 어머니가 끊어지는 것 같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캐도예, 어무이… 우째 인두겁을 쓰고 내 딸을 내가 버립니꺼…”

 

자식을 버리는 것이 사람이 할 짓이냐 말하며 엎드린 어머니의 울음에 할머니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는지 아기의 울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응애, 응애! 아기의 울음소리 사이로 섞이는 할머니의 쌕쌕거리는 숨만이 우리를 긴장시켰다. 땅에 붙박여 흐느끼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보던 할머니의 목에 울컥, 핏대가 솟았다. 씩씩거리는 숨과 함께 가슴이 들쑥날쑥했다. 끊이지 않고 울리는 아기의 울음소리도 그녀의 분노를 부추기는 것에 한 몫 하는 것 같아 보였다.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리던 할머니의 팔이, 아기를 들어있는 강보를 든 팔이 하늘로 향했다. 그리고 이내 벼락같은 고함소리와 함께 할머니의 팔이 땅으로 내리꽂혔다.

 

“이기, 이기 인간이가?! 짐승만도 못한 딸년이 사람새끼냐고!!”

“어무이, 어무이… 제발…! 아, 안 돼!”

 

끄륵, 끄르륵…. 바닥에 내리꽂힌 강보 안에서 더 이상 울음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대신 빨갛게 젖어오는 천 아래에서는 마치, 짐승이 내뱉는 마지막 숨과 닮아있는 소리가 아주 잠시간 들렸다. 순식간에 집안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며 눈물을 뚝뚝 흘리는 어머니와, 그런 어머니가 강보에 다가가지 못하게 붙잡는 미자언니,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치는 할머니. 아수라장이었다. 완전히 젖어 축축해진 강보와 피가 들러붙어 뻘겋게 달아오른 땅을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보던 할머니는 이내 미친 사람처럼 고개를 도리질 치더니 대문으로 내달렸다. 우리 자매는 할머니가 간 곳을 허망하게 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울다 지쳐, 그리고 맞아 아픈 몸 때문에 기절하듯 잠에 빠졌다. 그런 어머니를 순자언니가 돌보고 나와 미자언니는 바닥에 내리꽂힌 아기의 시체를 수습했다. 척척해진 강보를 보자기로 감싸 들고, 언니는 집을 빠져나왔다. 다른 자매가 아니라 왜 나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는 미자언니의 치맛자락을 잡고 함께 산을 올랐다.

산 중턱에 있는 소나무 근처에는 돌무덤이 가득하다. 소원을 빌기 위해 쌓은 돌무덤이 아니라, 아기가 묻혀있는 돌무덤이다. 수를 세기 어려울 정도로 쌓여있는 돌무덤 사이,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불쌍한 아기. 이름도 없는 아기. 위로하듯, 넋을 달래듯 돌 하나하나를 쌓는 동안 언니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반쯤 돌을 쌓아, 보자기가 보이지 않게 되었을 무렵 언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무한다, 그제?”

“뭐가?“

"내가 딸로 태어나고 싶어가꼬 태어났나… 누구는 나고 싶어 났나. 놓으니까 났지.”

 

딸로 태어난 게 무슨 죄냐 말하던 언니의 목소리에는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때 언니는 울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돌을 올리며 코를 훌쩍거리던 소리가 기억에 남는다. 아마 언니는 내게만 눈물을 보이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돌무덤을 다 쌓은 뒤 언니와 나는 산을 내려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할머니는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할머니가 발견된 것은 사흘 째 밤이었다. 애기 무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놀란 사람들이 서둘러 산에 올라가보자, 무덤을 파헤치며 울부짖는 할머니를 발견할 수 있었다. 쌓여있던 무덤이 다 파헤쳐져 조그만 뼈와 돌이 이곳저곳 널부러져 있었고 할머니는 연신 중얼거렸다고 한다. 미안하다고. 하염없이 미안하다고.

 

“미안타, 미안해… 내 좀 용서해도, 어? 미안타….”

 

그녀가 무엇에게 용서를 구했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집에 돌아온 할머니는 정신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막연하게나마 무엇에게 용서를 구했는지는 알 것 같았다. 정신을 놓은 할머니의 행동은 꼭, 손주를 돌보는 노인의 모습과 비슷하게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자매의 손을 거친 낡은 인형을 등에 업고 아기가 떨어졌던 그 자리를 하루 종일 오락가락하며 자장가를 부르는 그 행위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금자동아 옥자동아 만구강산에 보배동아. 니 어디갔다 인제와. 동남풍 건들하니 바람에 붙이서 나왔나, 구름에 쌔여서 나왔나, 비에서 묻혀 나왔나. 어와둥둥 내 사랑이야. 니 어디갔다 인제와. 하늘에서 쑥빠졌나, 땅에서 푹솟았나. 낮은 남게는 전가지, 높은 남게는 할가지. 어와둥둥 내 사랑이야. 체이 끝에는 싸래기, 옹구전에 바내기. 싸래기받아서 닭주고 딩기 받아서 개주고, 온쌀받아 밥하고. 어와둥둥 내 사랑이야. 모래밭에 수박겉이. 둥글둥글 잘크거라. 어와둥둥 내 사랑이야.”

 

다음 해, 눈을 감기 전까지 할머니는 하루도 빠짐없이 자장가를 부르며 울지도 않는 어린아이를 달래는 시늉을 했다. 할머니가 걸어 다닌 마당은 반질반질하게 닳아있었다.

 

한참을 상념에 빠져있어서일까, 남편이 내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 그래도 반응이 없었던 모양인지 괜찮아? 라며 그가 내 어깨를 조금 흔들었다.

 

“자기야,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아니. 별 거 아냐. 어머니한테…전화 할 거야?”

“어. 해야지.”

“그렇구나.”

 

남편이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손만 봐도 짐작이 가는 모양새에 정신이 잠깐, 아득해졌다. 어, 엄마. 남편의 전화에는 빠르게 응답하는 시어머니가 전화를 받은 모양이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여전히 싱글벙글 웃음을 매달고 있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이니. 남편이 내 배를 힐끔 보고 다시금 입을 연다.

 

“엄마한테 제일 처음 말해주려고. 오늘 집사람이 병원 다녀왔대. 딸이래. 잘 됐지?”

 

응애, 응애. 어디선가 아기 우는 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들었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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