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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의 미학
  • 황태영 기자
  • 승인 2017.03.20 08:00
  • 호수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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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 준다는 뜻이다. 그 사전적 의미는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지만, 알고 보면 위로만큼 허울에 갇혀 있는 단어도 없다. 위로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수많은 불확증이 이를 뒷받침한다. “힘내”. 어쩌면 가장 무난한 위로의 한 마디일 것이다. “이겨낼 수 있을 거야”. 그래도 그 의도가 선함은 알 수 있다. “그보다 더 안 좋은 상황도 있는데, 너 정도면 괜찮은 거야” 이렇게 불확증이 행해진다.

 

지금 내가 힘든데, 왜 타인의 힘듦을 운운하며 그를 위안 삼도록 하는 것인가? 나의 힘듦이 나의 동의 없이 한순간에 객관화된다. 그와 동시에 타인의 힘듦이 내 눈물을 닦기 위한 티슈 한 장처럼 이용된다.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다 보면 타인의 눈물, 슬픔, 절망을 심심치 않게 목격하게 된다. 그와 맺고 있는 관계의 깊이에 따라 직접적으로 위로의 말을 건네는 순간도 찾아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세 번째 위로의 말로 상대의 눈물을 닦아주고자 했고, 그게 최선이라 생각해왔다.그러던 중 그런 말들의 본질에는 상대에 대한 불확증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나는 꽤 큰 충격을 받았다. 내가 이때까지 건네왔던 많은 위로의 말들이 부끄러워졌고, 미안해졌다. 나는 허울 좋은 말들로 포장한, 그저 위로를 위한 위로를 하고 있었다. 상대의 감정이나 생각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도 불확증, 저것도 불확증. 생각나는 위로의 말에는 모두 불확증이 덕지덕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진정한 위로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봤다. 그 결과, 상대를 확증하는 모든 위로는 바람직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으며 의견 불일치와 불확증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의견 불일치는 사람들이 서로 다툴 만큼 서로에게 중요함을 의미하며, 그 결과 관계는 생산적이며 건강해질 수 있다. 이런 견해에서 나는 갈등을 긍정적으로 본다. 반면 우리가 상대를 불확증한다는 것은 상대가 잘못되었거나,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며 상대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진정 상대의 힘듦에 공감하며, 확증한 순간이 언제였는지 생각해봤다. 그와 함께 눈물을 흘리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아파했던 모든 순간이 가장 상대를 확증하며 위로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상대보다 더 열악하고 힘든 사례를 긁어와 봤자, 무작정 화제를 돌리며 상대의 힘듦을 잊게 해봤자 그는 진정 위로받지 못한다.

 

위로에는 거창하고 멋들어진 한 마디가 필요한 게 아니다. 그저 상대를 확증하고, 그 확증적 분위기를 상대가 느낀다면 그는 진정 위로받고 있다고 느낄 것이다. 상대의 힘듦을 온전히 확정해주는 것이 진정한 위로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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