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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와 해학, 웃음으로 나라를 비판하다
  • 하수민 수습기자
  • 승인 2016.12.05 08:00
  • 호수 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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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풍자와 해학의 민족이라고 불릴 정도로 예로부터 시대에 대한 비판을 아끼지 않았다. 탈을 쓰며 양반을 비꼬던 탈놀이에서부터 시작해, 최근에는 익명성을 보장하는 인터넷의 특성과 SNS의 발달로 네티즌들의 풍자가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사를 흔들고 있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에서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는 풍자와 해학. 그렇다면 풍자와 해학이란 무엇이며 언제부터 시작됐으며, 우리나라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풍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웃음으로 비판하는 풍자와 해학

풍자란, 사회적 현상이나 현실을 과장, 왜곡, 비꼬아 나타내는 것이다. 즉,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 비꼬아서 표현해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비판적 웃음이다. 작품 속에서 풍자를 이용할 때는 현실적인 권력과 권위를 가진 주인공을 부정적으로 제시하고, 그의 모습을 과장하거나 왜곡해 우스꽝스럽게 나타내 현실의 권력을 뒤엎고 결국 이상적 세계의 승리를 이끌어낸다.

해학이란, 주어진 사실을 곧이곧대로 드러내지 않고 과장하거나 왜곡하거나 비꼬아 표현해 표현하려는 것을 우스꽝스럽게 나타내고 웃음을 유발하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풍자가 비판적 인물을 공격함으로써 작가가 생각하는 이상을 밝히며 읽는 이에게 웃음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해학은 그런 비판적 인물에게 공격받는 대상에 대한 동정으로 읽는 이에게 그런 상황을 공감하게 한다는 것에서 차이가 있다.

이런 풍자와 해학의 문화는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전통 해학은 주로 설화나 고소설, 판소리 사설, 탈놀이 대본, 미술 작품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먼저 탈놀이 속 풍자와 해학에 대해 살펴보자.

비판정신에 기초한 판소리

탈놀이는 당시의 특권계급과 형식적인 윤리에 대한 일종의 비판 정신을 구체적으로 연출하는 민중극이며 현실주의와 비판 정신에 기초하고 있다. 즉, 양반이나 승려 등 당시의 지배층에 대한 반항의식과 고루한 봉건적 가족제도에 대한 비판 정신으로 일관돼 있다. 또한 탈놀이는 파계승, 몰락한 양반, 무당, 하인, 기타 남녀노소 서민들의 등장을 통해 현실폭로와 웃음탄식 등을 나타낸다. 그 주제는 파계승 놀이와 양반 놀이 등이라고 할 수 있다. 더 세분화하면 벽사의 의식 무와 굿, 파계승에 대한 풍자, 양반에 대한 모욕, 남녀의 대립과 갈등, 서민 생활의 실상과 애환 등을 보여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풍자성 짙은 탈을 쓰고 본 모습을 감춘 채 행해지는 탈놀이는 지역적 편차를 가지고 있으며 공개된 장소에서 민중을 대상으로 행해진다는 점에서 당시 사람들의 생각과 의식이 담겨있는 기층문화의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단순한 춘화가 아니다?

당시 사회에서 입에 담으면 안 되는 문제를 그림으로 표현한 미술 작품도 있다. 조선 후기에 그려진 김홍도, 신윤복의 춘화가 대표적인 예이다. 춘화는 노골적인 성적묘사에 그치지 않고 화려했던 젊은 날을 재현해보려는 노부부의 안타까운 몸짓, 집주인과 하인의 사랑을 훔쳐보는 하녀의 호기심 어린 표정 등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 즉 인간사의 단면을 보여주기도 한다. 신윤복의 <운우도첩>에는 당대 문란한 성 풍속의 단면을 보여주는 그림도 있는데, 양반댁 남성과 하녀의 성교 모습이 그중 하나다. 하지만 이 작품은 성행위 자체에 집중하지 않고 오히려 양반집 내부임을 보여주는 배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이는 성행위에만 집중하는 단순한 춘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춘화 속에 나타난 양반의 일탈 행위는 성리학을 최고의 이상으로 표방한 당시 지배층에 대한 비판의식이 깔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또 승려와 여인들의 성 풍속도 그렸는데 이것은 당시 사회의 퇴폐성과 불교의 타락상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춘화에 투영된 메시지는 당시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풍자기법을 사용해 진솔하게 표현한 사회적 소산이라 할 수 있다.

고전소설에서도 풍자가!

고전소설에서도 풍자와 해학이 나타난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는 같은 신분에서도 분화가 일어났다. 경제력, 양반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 의식을 기준으로 양반들의 분화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치관은 문학 속 풍자의 대상 또는 풍자한 목적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새로운 가치관, 의식을 가진 양반인 박지원의 소설이 그 예이다. 박지원은 문치주의가 만연한 조선사회, 변화를 거부하는 기존 조선사회와 다른 가치관과 의식을 가졌다. 박지원이 쓴 양반의 무기력하고 위선적인 생활을 비판한 <허생전>, 나라의 잘못된 인재 등용을 비판한 <우상전>에서 풍자와 해학을 찾아볼 수 있다.

포털사이트를 뜨겁게 달군 이 시대의 풍자는?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최근 풍자와 해학은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한 비판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창에 풍자를 검색하면 ‘박근혜 풍자’, ‘박근혜 패러디’가 제일 처음 연관검색어로 뜰 정도로 이 사태에 대한 다양한 풍자가 이뤄지고 있는데, 이 중 몇 개의 풍자를 살펴보자.

1. “내가 이러려고 OOO이 됐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 들고 괴롭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개그맨 김제동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러려고 친구했나 자괴감이 든다”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다. 이 발언을 바탕으로 연설문 문장 만들기 게임도 탄생했다.

2. “말타고 ‘이대’로 가면 안돼요”

최순실 씨의 딸 정유라 씨가 이화여대에 부정 입학했고, 승마 선수라는 점을 지적한 드라마도 있었다. tvN 월화극 <막돼먹은 영애씨 시즌15>에서는 정유라 씨가 승마 특기생으로 이화여대에 부정입학했고, 수업에 제대로 참석하지 않고도 높은 학점을 받은 것을 풍자했다. 극 중 주인공 이영애가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사기꾼을 추적하는 장면에서 ‘말 타고 이대로 가면 안 돼요’라는 자막이 떴다.

3. 하야하그라

사진출처/스포츠 경향

청와대가 구매한 의약품 목록에서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정이 발견됐다. 이에 청와대는 아프리카 순방 시 고산병 치료를 위해 혈관 확장을 지속적해서 유지하기 위해 하루 한 정씩 세 번, 4~5일 동안 복용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비아그라 제조업체인 화이자 관계자가 “실데나필 성분의 비아그라는 현재 국내에서 발기부전 치료를 목적으로만 적응증을 받은 전문의약품이다”며 “비아그라를 발기부전 치료목적 외에 고산병 치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혀 청와대가 비아그라를 구매한 사실은 국민에게 비판을 받고 풍자의 대상이 됐다. 비아그라라는 약의 이름을 이용한 풍자는 “하야하그라”, “청와대를 비우그라”등이 있다.

4.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풍자

10월 29일(토) 방영된 <무한도전>의 우주여행특집에서 박명수가 기계를 타고 공중에 뜨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서 출발”,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이라는 자막이 걸렸다. “상공을 수놓는 오방색 풍선”은 최순실 씨의 태블릿 PC에서 발견된 ‘오방낭(희망복주머니) 파일’을 풍자한 것이다. 최순실 씨가 주도했다고 알려진, 2013년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당시 축하행사에 등장한 오방낭의 색깔이 그것이다. 이날 방송에선 이 밖에도 “끝까지 모르쇠인 불통왕”, “요즘 뉴스 못 본 듯”과 같은 현실 정치 상황을 풍자하는 듯한 자막을 통해 사태를 풍자했다. 그뿐만 아니라 <SNL코리아 시즌8> ‘2016vs1980’ 코너에서 김민교 씨가 최순실씨 분장을 하고 “정말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는 장면, 곰탕을 먹는 장면 등을 삽입해 풍자를 하기도 했다.

이 밖에도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에 대해 고전소설 형식으로 풍자한 <공주전>이 페이스북 페이지인 연세대학교 대나무 숲에 개재돼 눈길을 끌었다.

페이스북 페이지인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게시된 '공주전'의 도입부

풍자라고 해서 거대권력을 향한 엄청난 행위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역시 해학이라고 해서 모든 사람의 배꼽이 떨어지도록 만드는 유머 감각이 요구되는 것도 아니다. 허영과 이기심, 편법과 비윤리가 판치는 세상과 미묘하게 닮은 그림 한 점, 글귀 한 줄, 노래 한가락이면 충분하다.

풍자를 접한 순간은 웃음이 나지만, 곱씹어보면 마냥 우습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는 역설적인 상태에 부딪히고 만다. 그러나 우리는 그 상태에서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다.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하고, 소리쳐야 한다. 비상식 속에서 고통받았던 우리마저, 그리고 우리의 정의마저 우습게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충분히 웃었는가. 그렇다면 이제 그 ‘웃음’을 쏟아낸 입을 모아 ‘옳음’을 외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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