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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사람이 되기 위한 한걸음
  • 장동규 수습기자
  • 승인 2016.11.06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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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네이버 책

 

흔히 사람들에게 러시아의 문호를 물으면 <안나 카라레나>의 저자 톨스토이와 <죄와 벌>의 저자 도스토예프스키라고 답한다. 하지만 그들과 함께 러시아의 3대 문호로 칭송되는 작가가 있다. <첫사랑>, <귀족의 보금자리> 등 주옥같은 소설을 집필한 대문호 이반 투르게비치가 그 주인공이다.

그가 집필한 소설 <무무>는 러시아 농노 제도에 큰 변화를 일으켰다. <무무>는 당시 러시아 황제에게 농노제의 비인간성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를 제공했고, 이후 황제는 농노 해방령을 발포했다. 몇 세기 동안 유지됐던 사회시스템을 바꿀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소설, <무무>를 소개한다.

<무무>의 주인공 게라심은 자유가 없는 농노의 신분으로 여지주의 집에서 빨래를 하는 티타니야를 사랑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사랑은 여지주의 방해로 결실을 보지 못한다. 여지주는 게라심이 가진 사랑의 감정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 여지주에 말에 반하는 행동을 가져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티타니야를 보낸 후 게라심은 진흙에서 빠져 있는 강아지 무무를 발견한다. 무무를 자신의 보금자리에 데려온 게라심은 무무에게 헌신과 사랑을 쏟지만 여지주는 이번에도 게라심의 사랑에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결국 여지주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던 게라심은 무무를 제 손으로 죽이고 여지주를 떠나 남은 삶을 살아간다.

이 소설에서 투르게네프가 주목한 것은 ‘자유 없이 주인에게 종속된 노예도 사랑할 수 있는가’ 라는 점이었다. 자유가 없는 개인은 자신을 사랑할 자유도 없으며,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은 다른 이에게 사랑을 줄 수도 없다. 만약 게라심에게 자신의 의견을 내세울 자유가 있었다면 과연 티타니야를 여지주의 뜻대로 순순히 다른 남자에게 보냈을까? 그리고 자신이 아끼고 사랑한 무무를 자신의 손으로 죽였을까? 나는 게라심에게 자유가 있었다면 결코 그렇게 쉽게 사랑하는 것들을 보내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21세기인 지금, 대한민국에 공식적인 노예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여지주에게 묶여있는 게라심처럼 자신이 세운 높은 기준과 사회적 통념의 노예로 살고 있다. 이 점은 무무가 여전히 많은 연극과 영화 등에서 소재로 이용되는 이유다. 도달하지도 못할 턱 없이 높은 기준과 누가 정했는지 모를 사회적 통념에 자신을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21세기 게라심보다는 나 자신에게 자유를 주고 그 자유로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자유인이 더 행복한 인생을 사는 사람이지 않을까? 자신을 둘러싸는 기준에 얽매어 진정한 사랑을 하지 못하는 ‘나’를 발견할 때 도서관에서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에서 ‘무무’를 찾아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장동규 수습기자 777e44@ch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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