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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 영화는 흥행해선 안 된다
  • 구연진 편집국장
  • 승인 2016.10.24 03:47
  • 호수 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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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안전이 또다시 무너졌습니다”. <터널>에서 나온 어딘가 익숙한, 익숙해서는 안 될 말이다. <터널>은 집으로 가던 중 터널이 무너져 홀로 갇힌 한 남성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그린 재난 영화다. 또한 터널 밖에서는 사회 시스템의 부조리함과 모순 등을 비판하는 블랙코미디도 잘 버무려졌다.

이로부터 10년 전엔 <괴물>이 큰 인기와 사회적 파장을 끌어냈다. 괴물은 한강에 출몰한 ‘거대 돌연변이 괴물’에게 딸이 납치되면서 일가족이 목숨을 걸고 추격과 사투를 벌이는 모험물이다. 당시 사람들은 ‘어쩜 저렇게 현실적인가’ 하며 나라가 변화하길 촉구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터널>은 <괴물>과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 <괴물>은 세월이 지나서도 변하지 않는 현실 시스템에 대한 비판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나는 재난영화의 흥행 조건이 ‘얼마나 공감이 가는가’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재난영화는 항상 패턴이 일정하다. 재난, 무능력한 정부, 신파적 코드. 이 세 가지만 잘 지켜지면 대부분 흥행한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영화는 공감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무능력한 정부란 빠질 수 없는 요소임이 분명하다.

9월, 내내 발밑이 흔들리는 느낌에 시달렸다. 경주에서 일어난 무려 규모 5.1, 5.8에 달하는 지진의 여파는 아직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당시 13층에서 지진을 맞은 나는 갑작스러운 흔들림에 공포에 떨어야 했다. 게다가 전화와 메신저까지 불통이라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 이후 지진에 대비할 수 있는 내진 설계된 건물이 얼마나 있느냐에 대한 관심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전부터 많은 전문가가 ‘우리나라는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다’라고 주장했으나, 소 잃고 외양간 고치듯 이제야 부랴부랴 내진설계와 지진과 관련된 것들을 조사하는 것을 보니 어딘가 익숙하다는 생각이 든다.

본지 1면에 위치한 국립대 내진 설계율은 30%가 채 되지 못한다. 우리대학은 그마저도 미치지 못하는 20%의 건물만 믿을 수 있다. 우리는 그동안 지진이 나면 목숨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건물에서 수업을 들었고, 앞으로도 한동안 위험한 건물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것이다.

나는 재난 영화가 좋다. 지독하게 현실이 반영된 그런 영화. 그 이유는 내가 사는 불안한 현실이, 영화에서 행복한 결말이든 슬픈 결말이든 일단 결론이 났으면 하는 판타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재난은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재난에 대응하는 방법은 바꿀 수 있다.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재난 영화’라는 장르가 흥행하지 않는, ‘저건 판타지일 뿐이야’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올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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