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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잊지 말아 주세요#2 위안부 86년,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
  • 유희진 기자
  • 승인 2016.10.10 08:00
  • 호수 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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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6호에서는 위안부 10억 엔 출연금과 함께 위안부 문제와 관련된 큰 사건들을 역사순으로 정리해보았다. 이번호에서는 출연금과 소녀상 폐지의 초석이 됐던 박근혜 대통령의 ‘12·28 한·일 위안부 합의’(이하 12·28 합의)와 박정희 전대통령 때의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이하 1965년 한·일 협정)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12·28 합의, 논란의 시작

지난해 12월 28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서울 세종로 외교부청사에서 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밀실협상을 타결했다. 하지만 국민과 위안부 피해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회담 후 발표문을 통해 “위안부 문제는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상처를 입힌 문제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 밝혔다. 또 “아베 신조 총리도 총리대신 자격으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한다”고 전했다. 일본은 위안부 상처 치유를 위해 한국 정부가 설립한 재단에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약 96억7000만 원)을 출연하기로 했다.

얼핏 보면 한국 정부 말처럼 일본이 군의 관여도 인정했고, 아베 정부가 책임을 표명한 것 같아 보이지만 조금만 더 깊게 살펴보면 중요한 사실을 빗겨나간 것을 볼 수 있다.

“당시 군의 관여 하에 다수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라는 대목에서 ‘군의 관여’라고 언급했을 뿐 일본 정부와 일본군이 주도적으로 행한 국가적, 조직적 행위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았다. 또한 구체적인 범죄 사실(위안소의 입안과 설치, 관리와 통제),강제성과 피해의 지속성, 법을 위반한 중대한 인권 침해와 관련한 내용들은 문장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기시다 후미오 외무상은 아베 신조 총리를 대신해 사죄를 한다고 했으나, 꾸준히 요구해온 진상 규명, 역사교육, 재발방지 조치 등은 이번에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위안부 지원 기금에 일본 정부 예산을 출연하는 데 대해 “(법적)배상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는데, 우리 측 쟁점 요구사항이었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문제가 모호한 수준에 그쳤다는 점에서 비판 받았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곧바로 “위안부 문제를 포함한 한일 간의 재산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협정에서 최종적이고 완전히 해결됐다는 일본의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종전의 입장을 되풀이했다. 또한 “미래 세대에 사죄의 숙명을 남기지 않기 위한 결단”이라며 “더 이상 사과하지 않겠다”라는 입장을 밝혀 진정성에 의문을 갖게 만들었다.

그래프출처/데이터뉴스

 

엇갈리는 정부와 여론

12·28 합의 이후엔 주한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 철거 문제가 쟁점이 됐다.합의가 있기 이틀 전인 26일, 일본의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정부가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일본군 위안부 소녀상 이전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요미우리는 ‘28일 한일 외교정상회담에 진전이 있을 경우,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위해 시민단체 설득을 시작할 전망’이라고 밝히며 소녀상을 옮길 후보지로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서울 남산에 건설 예정인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 공원 등이 검토되고 있다고 전했다.

합의 전 외교부는 “소녀상 이전 검토는 터무니없는 억측 보도”라고 계속 주장했다. 하지만 합의 직후 윤병세 장관이 공동 기자회견에서 ‘소녀상’을 직접 거론, “적절히 해결되도록 노력한다”고 말했고 이로써 소녀상 이전에 관한 문제가 현실화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부는 이후 31일 청와대 발표에서 “소녀상 철거를 전제로 돈을 받았다는 것은 유언비어고 보도에 신중해달라.”고 밝혔지만 피해자와 국민들의 비판을 피할 순 없었다.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피해자는 뒤로 물러서 있게 해 놓고 돈 몇푼 쥐어주고 입을 막으려 한다. 분하다”고 밝히며 “소녀상은 누구도 손을 못 댄다. 우리를 죽일래, 소녀상을 없앨래 두 가지로 말하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우리 정부는 12·28 합의에 대해 1993년에 나온 고노 담화와 비교할 때 진전이라고 주장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반대했다.

전문가들은 “피해국이 가해국에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피해자들이 논의과정에 들어갔어야 했는데 갑자기 정부 수준에서 ‘위안부’ 문제를 끝장내려고 정리해버렸다. 절차 자체가 좋지 않았다”라고 합의 내용을 비판했다. 또한 고노 담화 때와 달리 ‘재발 방지’에 대해선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았다는 점과 고노 담화에선 업급됐던 ‘역사 연구, 역사 교육을 통해 이런 문제를 영원히 기억에 머무르게 한다’는 내용이 없다는 점에서 12·28 합의는 후퇴한 것이고 주장했다.

 

박정희 1965년 한·일 협정 vs 박근혜 12·28 합의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아픈 과거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91년 위안부 피해자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위안부의 존재가 처음 드러난 뒤에도 일본은 박정희 정부 때의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며 위안부 강제 동원의 ‘법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1965년 한·일 협정이 대체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일본이 지금까지 언급하며 보상을 피해왔을까.

박근혜 대통령 3년차인 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박정희 전 대통령 3년차인 1965년 6월 22일 한·일 협정과 닮았다. 국민 특히 피해자의 목소리가 무시됐고, 일본 정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이며, 공동의 합의문을 만들지 않아 각국 정부와 언론의 입맛대로 해석할 여지를 남겼다. 해당 합의로 문제를 덮는 효과도 비슷하다.
 

국민·피해자 목소리 외면

1961년부터 당시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이 비밀리에 진행한 한·일 협상 내용이 알려지자 1964년부터 국내에서는 한일회담반대운동이 시작됐다. 당시 김 전 부장은 “제2의 이완용”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내 3억 달러를 받으며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 문제를 끝냈다.

12·28 합의 후 한일 외교장관은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으로 해결될 것을 확인한다”고 발표했다. 1965년 한국이 발표한 합의문에서 양국이 피해자 청구권 문제에 대해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해결한다’고 한 것과 닮았다. 피해자의 목소리가 충분히 반영되지 않았는데 ‘최종적으로 해결한다’는 것은 피해자의 목소리를 묵살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일본정부, “배상 아니다.”

1965년 한·일 협정 때도 박정희 정부는 일본 정부의 책임을 묻지 않았다. 1960년 일본 극비문서에는 회담 이전부터 과거에 대한 보상없이 경제기술협력으로 해결하겠다는 전략이 담겨있다. 일본은 결국 ‘독립축하금’ 3억 달러를 한국 정부에 지급했다.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위해서는 ‘보상’이 아닌 ‘배상’을 해야 한다. 1965년 당시 피해자에 대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일본정부가 한국에 3억 달러를 주면 국내에서 개인 피해자가 발생했을 때 해결하겠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일본은 1993년 강제징용 피해자 관련 기록을 한국에 보내 60년대 당시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공동합의문 없이 마음대로 해석

1965년 한·일 협정은 공동합의문이 없었고 한일정부가 각각 기자회견을 통해 각 국민에게 소식을 전했다. 한국정부는 당시 강제징용피해자의 미지불임금, 사망자 부상자에 대한 보상에 대해 앞으로 이를 더 이상 청구할 수 없다는 항목(청구권 8항목)을 빠뜨린 채 발표했다. 일본은 현재까지 이 항목을 근거로 개인청구권을 부정하고 있다. 이번 12·28 합의 역시 공동합의문 없이 각 외교장관이 기자회견을 통해 합의문을 전했다.

사진출처/허밍턴포스트코리아

 

12·28 합의, 그 이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비롯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 시민단체가 주축이 된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은 지난 8월 31일(수) 주한일본대사관 앞에서 ‘12·28 한·일합의 강행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법적 배상이나 보상금이 아닌 10억 엔을 받는 것은 위안부 문제의 해결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피해 당사자인 김복동 할머니는 “박근혜 정부는 일본으로부터 공식 사죄와 법적인 배상금을 받지 못할 거면 차라리 위안부 문제에서 손을 떼어 달라”며 “우리는 위로금 10억 엔은 필요 없다. 일본정부는 10억 엔을 낼 바에야 아베 총리가 공식적으로 사죄해 우리 명예를 회복시켜주는 것으로 배상하라”고 말했다. 할머니는 “소녀상은 앞으로 후손이 자라나면 우리나라에도 이런 비극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세운 것”이며 “돈 줄 테니 소녀상 철거하라는 것은 안 된다. 100억이 아닌 1,000억을 줘도 역사를 바꿀 수는 없다”라고 주장했다.

일본은 지금도 10억 엔이란 돈이 배상금이 아니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공식적으로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사업을 행하기 위한 지출’이라고 말할 뿐 책임 인정과 배상은 인정하지 않고 있다. 결국 이 문제는 돈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갈등이 더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이다.

아베 총리가 양국 장관의 공동 회견 후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국 내각총리대신으로서 모든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마음으로부터의 사죄와 반성의 마음을 표명한다”고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사죄와 반성을 재차 밝힌 것은 평가받을 일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12·28 합의는 한일 양국 정부가 단합해 피해자들에게 ‘더 이상은 어떠한 것도 요구하지 말라’고 억누르는 구도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 단체가 요구해온 내용은 크게 2가지다. ‘사실과 책임 인정’ 그리고 ‘사실과 책임 인정에 기반을 둔 조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중 생존자는 모두 팔순 이상의 고령으로 생전에 진실 규명과 사죄의 순간을 접할 시간이 그리 길지 않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 정부는 할머니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지 깨닫고 일본 정부의 진정성 있는 사죄와 적법한 조치를 이끌어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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